매해 되풀이 되는 세제개편안은 기본적으로 수년전부터 추구했던 중장기 세제개편의 방향과 기본적으로 맥을 같이하면서 동시에 그해에 경제사회적으로 중요하게 부각된 이슈에 대한 정부의 처방이 담겨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시점의 우리 경제는 세계적인 경기침체의 국면을 잘 벗어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러한 경기상승이 수출대기업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어서 고용창출, 중소기업 및 서민에 대한 경기회복으로는 이어지지 못하고 있는 심각한 상황이다.
또 경기침체기에 감행한 감세와 지출확대에 기인한 재정적자를 적절하게 털어내면서도 경기회복세에 찬물을 끼얹지는 않아야 하는 조심스러움을 유지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그 중 앞자리에 위치한 일자리창출과 서민·중산층의 지원에는 상당한 세수감소나 재정지출을 감내하면서 강력한 지원책을 제시하여야 하며, 이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하여 다른 분야에서 감면을 줄이거나 세수증대를 도모하여야 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그러나 이번 세제개편안에서 제시된 내용을 들여다보면 구체적인 내용은 상당히 다르다. 예를 들어 서민· 중산층의 지원이라는 큰 정책목표를 설정해 두고는 투입되는 세제적 수단은 일용근로자 원천징수세율인하, 근로장학금 소득세 비과세 등 매우 미약한 조치들이다.
일용근로자원천징수세율이 8%에서 6%로 인하된다고 하여 현재 거의 세금을 내지 않고 있는 일용근로자들에게 돌아가는 순 지원효과가 과연 얼마나 될까?
세금을 내려고 해도 낼 세금이 없는 정도의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은 적극적으로 재정을 통해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저출산·고령화에 대한 정책적 지원분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저출산이라는 우리사회의 미래를 결정짓는 아마도 가장 중요한 장기적 요인에 대한 대책에서 다자녀추가공제의 소규모 확대와 직장보육시설의 세액공제율의 소폭 확대 등은 그야말로 언 발에 오줌누기이며 정말 아무런 효과가 기대되지 않는다.
재정을 통한 공적인 보육시설의 대폭적 확대와 공교육 정상화를 통해 경제적 고민없이 자녀를 양육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이 마련되어야 저출산문제는 비로소 해결될 기미가 보일 것이다. 저출산 문제는 이렇게 지원할 만큼 중요한 사안이다.
재정을 동원하지 않고 세제를 통하여 소규모의 지원만 행하는 경우 결국에는 기대되는 효과도 거둘 수 없고 정부는 그저 지원하는 시늉만 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이번 세제개편안의 다른 몇 가지 중요한 개별 분야를 살펴보자.
투자금액에 대하여 일률적으로 지원하는 임시투자세액공제제도에서 고용기준을 추가한 고용창출투자세액공제제도로의 전환은 의미가 있는 정책적인 변화로 평가된다. 기업의 성장과 고용의 창출이 연계되면서 기업의 성장과 가계 분야의 소득증대가 동시에 이루어지고 다시 내수증대로 이어지는 선순환구조가 만들어지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다만 이러한 선순환구조는 고용창출투자세액공제제도를 기업이 적극적으로 이용하여야 가능한 것이다. 고용의 증가를 비용의 증가로만 인식하고 기업이 이를 이용하기를 꺼리면서 투자를 주저한다면 효과는 없다.
다른 한편 고용의 규모만을 기준으로 고용창출투자세액공제도의 공제한도를 둔다면 물적자본 중심의 투자지원제도에서 인적· 지적자본 중심의 세제지원제도로의 전환이라는 큰 그림에는 다소 못미치는 점이 있다.
기업의 국제경쟁력의 장기적 유지를 위하여는 고용의 질적 수준이 지속적으로 경쟁국가들의 기업에 비하여 상승하여야 한다.
이에 대한 지원책은 이번 세제개편안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중소기업판단시 인원기준 등을 폐지하고 고용친화적으로 전환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리고 가업상속공제 대상을 확대하면서 '정규직근로자수'라는 고용기준을 첨가한 것은 향후 국세청의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미래 어느 시점에 고용요건을 폐지하면서 완화된 가업상속공제수준은 그대로 유지하는, '제도 남용'이 생기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협력은 우리나라 경제에서 해결해야할 중요한 과제이다.
상생보증펀드에 출연한 출연금에 대한 세액공제제도나 중소기업에 대한 현금성결제에 대한 세액공제 등은 매우 제한적 역할을 수행할 수밖에 없다. 정부가 이러한 제도 도입으로 제 역할을 했다고 안주하지 말고 세제 외적인 보다 적극적이고 효과적인 정책을 마련할 것을 촉구한다.
정부는 이번 세제개편안에서 재정건전성 확보를 위하여 세무검증제도와 추계과세에 대한 제재조치 도입을 통한 과표양성화를 도모하고 다른 한편 비과세감면제도를 대폭 정비하고 있다.
의사, 변호사, 학원업 등 고소득 서비스업종의 기장내용을 세무사가 의무적으로 검토하도록 하고 검증된 자료에서 부실이 발견되면 세무사에게 책임을 묻도록 하는 제도를 통해 납세자와 세무대리인이 과세표준을 축소하는 방향으로의 협력을 어렵게 만드는 것은 바람직한 제도 개선이라고 보여진다.
복식부기의무자가 추계과세를 받는 경우 기타 경비에 대한 비용인정비율을 1/2로 낮추어 세부담을 높이는 제도 변경에서도 과표양성화에 대한 정부의 의지가 보여진다.
비과세· 감면제도의 정비 분야에서는 임시투자세액공제제도를 고용창출투자세액공제제도로 전환하고 생산성향상시설 투자세액공제제도 적용대상을 축소하며 개별소비세제도, 배당소득관련 비과세· 감면제도와 기타 비과세․· 감면제도도 대폭 정리하고 있다. 어느 정도의 타당성이 인정되는 조처들이다.
그러나 임시투자세액공제 제도의 주된 수혜대상은 결국 대기업이다. 특히, 10개 대법인이 전체의 세액공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법인세율 수준에서 작년에 이미 폐지하기로 했던 임시투자세액공제를 폐지시키는 대신에 고용창출투자세액공제제도로 전환하면 결국 대기업에 대한 지원은 거의 줄어드는 것이 없다. 이는 현재 재정적자 감소를 위한 전국가적 노력에서 대기업만 제외시켜주는 결과가 된다.
우리 정부가 지난 수년간 고환율정책으로 수출대기업에게는 유리하고 내수기업과 가계소비자에게는 불리한 정책을 지속하여 왔다. 이로 인하여 수출대기업이 자신들의 실제 경쟁력에 비하여 해외에서 더 많은 소득을 거둔 반면에 이 부담은 고스란히 내수기업과 가계소비자에게 원가상승과 소비자물가인상으로 전가되었다.
설혹 수출대기업에 대한 지원이 국가전체의 경쟁력 확보를 위하여 필요한 측면이 있다고 인정하더라도 세제는 이러한 정책의 분배적 귀결에 대하여 어느 정도 보정해 주어야 하는 책임이 있다.
2010년 세제개편안은 일자리 창출, 서민·중산층의 지원, 지속성장, 그리고 재정건전성 확보라는 균형적이고 적절한 정책목표를 표방하는 반면에 그 구체적인 내용에서는 여전히 대기업 위주의 정책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사회적인 균형점에서 심각하게 이탈하고 있다.
[약력] 독일 Hamburg 대학교 경제학 석/박사, 한국조세연구원 연구위원, KPMG 독일 프랑크푸르트 Branch 근무, 계명대학교 경영대학 세무학과 교수, 중부지방국세청 납세지원국장, 홍익대학교 경영대학/세무대학원 교수(現), 서울지방국세청 납세자보호위원회 위원장 (現)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