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다.
총리직에 대한 얘기다.
장삼이사 만인의 우러름을 받아야 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역대 대통령들은 인품과 국정운영의 역량 등 모든 면에서 두루 공감할 수 있는 명망가를 총리로 영입하려고 힘을 쏟았다.
그런 점에서 대통령이 이명박 정부 세 번째 총리로 경상남도 지사를 지낸 김태호씨를 내정한 건 '파격'이었다. 그에겐 경남지사 외에 내세울 만한 정치이력이 없었고, 국정을 이끌 지도자로서의 품성은 아예 검증조차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청와대는 올해 48세인 김 후보자의 젊음을 언급, "미래지향적인 국정운영과 각종 국정과제의 효율적인 조정·추진이 가능할 것"이라며 기대감을 부풀렸다.
'친서민 중도실용 정책'도 한층 원활히 추진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후보자는 "소장수의 아들로 태어나서 오직 용기와 도전으로 시작해 총리까지 왔다"는 말로 신화의 첫 장을 쓴 다음 "(내가 총리에 발탁된 것은) 20~30대에게 주는 희망의 메시지"라고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며 흥분된 모습을 보였다.
이에 국민들도 관심을 갖고 김 후보자에 대한 검증을 지켜봤다. 그러나 국민들의 기대와 관심이 실망으로 바뀌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국회 인사청문회가 시작되자마자 그를 둘러싼 각종 의혹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박연차 게이트 연루의혹은 시작에 불과했다.
건설업자 등과의 미심쩍은 돈거래, 선거자금 불법대출, 소득에 비해 과다한 지출, 부당한 재산증식 의혹 등도 불거졌다. 도청직원 가사도우미 활용과 부인의 관용차 사적 이용도 논란이 됐다.
제기된 의혹들에 대해 김 후보자는 "터무니없다"며 검증에 나섰던 의원에게 사과를 요구하는 모습을 보였다. 야당 의원들을 향해 고성을 내뱉으며 맞서기도 했다. 그렇지만 정작 중요한 일, 다시 말해서 의혹 해소에는 힘을 쓰지 못했다.
자신의 형수에게 돈을 빌리며 써줬다는 차용증 원본 등 각종 의혹을 풀어줄 만한 증거는 내놓지 않았다.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과 처음 만났던 시점을 두고 2007년이라고 했다가 의원들의 추궁에 말을 바꾸는 등 거짓말도 했다.
김 후보자의 이런 모습에 한 의원은 "국민들은 죄송총리, 현금총리, 양파총리, 떴다방총리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른 의원은 "대통령이 불렀을 때 행정안전부 장관이나 하겠다고 해야지 왜 국무총리를 수락했느냐"고 꼬집었다.
'여러 측면서 봤을 때 총리가 될 자격이 없다'는 생각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취임도 하기 전 중상을 입은 김 후보자가 "기회를 달라. 국민의 사랑을 받는 총리가 되어 보겠다"며 아직 버티고 있다는 사실이다.
결국 이 문제는 청와대와 집권 여당인 한나라당이 함께 풀어갈 수밖에 없다.
최근 임기의 절반을 넘긴 이명박 대통령은 "임기 마지막 날까지 초심을 갖고 흔들림없이 나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서는 '공정한 사회' 건설을 다짐했다. 임기말을 향해가는 대통령의 의욕적인 모습이다.
그러나 의욕만 갖고 있다고 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를 위해선 진정성을 보이며 국민들의 지지를 먼저 구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소통과 화합의 길이다. 이런 마당에 흠결투성이 총리를 계속 앉히려 한다면 누가 정권과 끝까지 함께 하겠는가.
이래저래 김 후보자에 대한 청와대와 한나라당의 선택이 중요해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