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조세일보 칼럼에서 박훈 교수께서 흥미로운 논제를 제시했다.
소득세와 법인세의 최고세율을 올리자는 세법개정안(의원발의)에 대해 마이클 샌델(정의란 무엇인가? 감영사, 2010)이라면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것이다.
그의 정의관에 입각한다면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최고세율은 올라야 하는가?
샌델은 저서에서 벤담, 밀과 같은 공리주의자, 프리드만이나 노직같은 자유지상주의자, 롤스, 칸트, 아리스토텔레스 등 많은 시대적 차이를 둔 사상가들을 인용하며 자신의 정의 개념을 설명한다. 그리고 그 중 가장 많이 인용하는 사람은 롤스(John Rawls, A Theory of Justice, 1971)이다.
샌델은 롤스와의 사고 차이를 부각시키고자 한다. 그러나 거리는 멀지 않아 보인다. 오히려 롤스의 사고에서 많은 요소를 수용하고 있다.
롤스를 사회적 평등을 요구하는 자유주의자(자유주의적 평등주의자)라고 보고 자신의 공동체주의와 구분하고 있다. 그러나 공리주의자와 자유지상주의자들에 대해서는 롤스와 함께 (강한) 비판적인 입장을 공유한다.
자유주의적(평등주의) 입장은 개인은 자유롭고 독립적인 존재이며 선택하지 않은 도덕에 구속되어서는 안된다고 본다. 결과적으로 공동체와 전통이 미리 규정해둔 도덕을 달가워하지 않으며 정의의 원칙은 이에 대하여 중립적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샌델의 공동체주의는 사람은 공동체가 부여하는 도덕에서 자유롭기 어려우며 자신을 '부담을 감수하는 자아'로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동체의 도덕적 중요성을 인식하면서 인간의 자유를 인정하는 방법으로는 '서사적 탐색'으로서의 삶을 예로 든다. "나는 과연 어떤 (커다란) 이야기의 일부인가?"
이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경제와 분배에 대해서 샌델은 롤스의 입장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다.
공동체주의를 강조한다면 오히려 자유주의자인 롤스보다 분배에 더 적극적인 것이 보통이지만 자신의 저서에서 그는 분배문제에 있어서 롤스의 입장을 적극 옹호하면서 그 보다 더 분배적으로 나아가지는 않았다.
(조세정책과) 분배에 대한 롤스의 입장은 어떤 것인가?
롤스의 정의관은 '무지의 장막', '차등의 원칙' 그리고 '재능의 도덕적 임의성' 세 가지 요소로 압축해 볼 수 있다.
'무지의 장막'은 만약 사람들이 어떤 조세제도를 본인이 이 사회 내에서 자신이 어떠한 위치에 처하게 되는지(큰 자산의 상속자가 될 지, 무주택자, 장애자, 혹은 미혼모가 될 지)에 대하여는 전혀 모르는 상태(무지의 장막) 안에서 기꺼이 선택할 수 있다면, 그것이 정의로운 조세제도라는 것이다.
사회적인 위치가 이미 정해진 후에는 자신에게 미칠 경제적 영향에 대한 고려 때문에 사람들은 정의에 대한 판단을 올바르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사람들은 자신의 생존과 관련된 경우에는, 유전적으로, 위험기피적이므로 비효율적인 요소를 감수하면서 재분배모델을 선택한다고 확신한다.
'차등의 원칙(Difference Principle)'은 최빈자의 최대행복 원리(Maximin Principle)로 불린다. 사회에서 제일 경제적으로 열악한 자의 경제적 상황을 가장 높게 만들어 주는 조세(부조)제도(Tax-Transfer-System)가 가장 정의로운 제도라는 것이다.
롤스는 '재능도 행운'으로 파악한다. 이는 시장경제와 경쟁사회에서 우리가 당연시하는, 성공한 사람(Winner)에 대한 보상 원리의 근간을 흔드는 사고이다.
경쟁사회에서 업적을 만들어내는 개인의 재능을 행운이라고 한다는 것은 이런 업적을 스스로 쌓은 것이 아니라 계급사회에서의 신분, 부자의 상속받은 재산처럼 외부에서 받은 도움(유전적인, 그리고 사회적인)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따라서 재능(지적인 능력, 도덕성, 인내력, 무던한 성격, 좋은 체력 등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생각하자)에 기인한 시장에서의 보상이 해당 개인에게 귀속된다면 도덕적 정당성이 훼손된다.
재능이 행운임을 인정하면 롤스가 왜 최빈자의 최대행복원리를 정의의 원칙이라고 하는지 자연스럽게 설명이 된다. 우리가 현실에서 만나는 커다란 소득 격차는 도덕적으로 임의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롤스가 시장경제에서 발생하는 소득의 격차를 완전히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는 그 격차가 최빈자의 소득에 긍정적으로 기여하는 정도까지만 도덕적 정당성을 가지는 것으로 본다.
격차의 존재로 인해 사회전체의 생산력 수준이 증가, 최빈자의 생활수준조차도 상대적으로 높아지는데 기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재능도 행운이라는 사고는 (성공한)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기 쉽지 않다. 샌델이 강의실에서 학생들에게 (롤스가 주창한) 이 내용을 이해시키려고 애쓰는 모습은 한국에 많이 퍼진 동영상에서도 볼 수 있었다.
그의 하버드대 강의실에 모인 학생들의 3/4 이상이 형제 출생순서에서 앞의 서열임을 확인하면서 형이 동생보다 노동윤리가 강하고 성공적이라는 심리학 연구결과를 인용한 뒤, 형제 중에 첫째로 태어난 것이 노력의 결과라고는 말할 수 없음을 지적했다.
좋은 머리나 체력은 몰라도 내가 스스로 기울인 노력의 결과로서의 성공(의 부분)은 적어도 온전히 내 몫이 아닌가?
롤스는 아니라고 말한다. "노력하고 도전해서 소위 자격을 갖춘 사람이 되려는 의지조차도 행복한 가정과 사회적 환경의 영향이다."
샌델은 세금을 거두어 저소득층에게 직접 나누어주기 보다는 공동시설에 대한 투자를 선호하는 입장을 보였다.
공립학교, 대중교통체계, 보건소, 운동장, 공원, 체력단련장, 도서관, 박물관 등에 부자와 가난한 자가 같이 이용하고 싶어하도록 투자해 민주시민이 공유하는 시설로 하자고 하였다.
샌델과 달리 롤스는 직접적인 재분배를 옹호한다. 롤스는 (공교육을 통하여) 교육기회를 균등하게 하여 시장경제에서 출발선상의 평등함을 확보한다 하더라도 재분배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하였다.
바로 재능의 행운성, 도덕적 임의성 때문이다. 다만 완전한 평등화를 주장하지는 않았고 차등의 원칙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샌델은 이에 대하여 어떠한 반대 논리도 제시하지 않았다.
세금을 거두어 공공시설에 투자하는 것이나 저소득층에 직접 나누어 주는 것이나 재분배 효과를 가진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차이는 없다.
단순한 예로 비교하자면 전자의 경우 저소득층 자녀가 학비가 없는 공립학교에 다닐 수 있고 후자의 경우 저소득층이 정부에서 받은 보조금을 자녀의 사립학교 학비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정도가 차이가 될 것이다.
재분배의 심도에는 어느 정도의 폭으로 이 정책을 수행하는가가 더 중요하다. 샌델이 바라는 것처럼 부자와 가난한 자가 같이 이용하고 싶어할 정도가 되기 위해서는 공공시설에 대한 투자가 광범위하게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소득 및 자산의 격차, 부와 교육기회의 세습, 그리고 현재와 같은 세제의 역할을 본다면 또 그들의 정의개념에 따르면, 롤스와 샌델은 한국에서 소득세와 법인세율의 대폭적인 인상을 지지할 것이 확실해 보인다.
[약력] 독일 Hamburg 대학교 경제학 석/박사, 한국조세연구원 연구위원, KPMG 독일 프랑크푸르트 Branch 근무, 계명대학교 경영대학 세무학과 교수, 중부지방국세청 납세지원국장, 홍익대학교 경영대학/세무대학원 교수(現), 서울지방국세청 납세자보호위원회 위원장 (現)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