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복' 사태마저 우려..김해공항 확장론엔 한목소리 "반대"
정부와 지방자지단체, 정치권 모두 이미 너무 멀리 와 버린 탓일까. 동남권 신국제공항 입지 선정을 둘러싼 갈등이 시간이 갈수록 증폭되고 있다.
경남 밀양과 부산 가덕도 2곳의 입지를 놓고 영남권이 분열하는 가운데 정치권을 중심으로 신공항 무용론과 김해공항 확장론 등이 제기되면서 갈등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형태로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신공항 유치에 나선 지자체들은 혹시나 신공항 건설 자체가 무산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고 정치권은 내년 총선과 대선 등의 일정을 앞두고 정치적 득실 판단에 골몰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자칫하다가는 지역 간 갈등의 골이 너무 깊어져 단기간에 치유할 수 없는 후유증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올 상황이다.
6일 연합뉴스가 신공항 유치전의 중심에 서 있는 영남권 양측의 광역단체장과 국회의원, 지역 상공회의소 회장 3명씩 모두 6명에게 공통 질문을 주고 답변을 받은 결과, 한결같이 뒤로 물러날 수 없는 싸움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부산시장은 신공항 유치에 실패할 경우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단호한 태도를 보였고 다른 응답자들도 전제조건을 달거나 승복 여부에 대한 답변을 유보해 정부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임을 예고했다.
◇유치실패 때 불복 가능성 언급 = 허남식 부산시장은 "가덕도가 아니면 신공항 건설은 없던 일로 하는 것이 오히려 낫다"고 말했다. 가덕도, 밀양 중 어느 한 쪽으로 결론이 나든 승복하겠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그는 또 "김해공항은 부산을 비롯해 김해, 거제, 창원, 양산 등 550여만명이 이용해 온 공항인데 이런 공항을 밀양으로 옮겨가는 것에 대해 동의할 부산 시민은 없다"고도 했다.
부산에 맞서 경북.경남.울산과 함께 밀양을 신공항 후보지로 희망하는 김범일 대구시장도 "신공항은 먼저 투명한 절차에 의해서 후보지가 결정돼야 한다. 승복 문제는 그 다음이다"라며 투명한 절차에 의한 결정을 승복의 전제로 달았다.
김 시장은 또 정치적 접근법으로 신공항 문제가 결정되는 것에 대해서도 경계심을 나타냈다.
한나라당 김정훈 부산시당 위원장은 이와관련, "정치적 관점에서 판단할 때 신공항을 빼앗기는 쪽은 정치적으로 결정적 타격을 받는다. 정치적으로는 제로섬 게임이다"라며 같은 목소리를 냈다.
그는 "지역 간 대립과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정부의 평가기준을 공개하면 새로운 불씨가 될 수 있겠지만 공개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이를 공개하는 등 신공항 문제는 공개적이고 투명하게 진행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김해공항 확장론 등엔 한목소리 '노(NO)' = 한나라당 유승민 대구시당 위원장은 "김해공항 확장 이야기는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이 '전혀 검토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밝힌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유 위원장은 "또 신공항 무용론이나 재검토는 한나라당 내 수도권 의원들이 정치적 목적에서 하는 말로 무시되어야 한다"면서 "장관이나 총리가 신공항을 안 한다고 하면 그것은 큰 문제이지만 결정권이 없는 국회의원들이 제기하는 무용론이나 재검토 논의는 무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대구시장은 "김해공항 확장은 이미 정부가 두 차례 검토한 끝에 폐기한 것"이라면서 수용불가 태도를 보였고, 허 부산시장은 "현재 김해공항이 가진 안전문제와 소음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 아니기 때문에 수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신정택 부산상공회의소 회장은 "김해공항 확장 결정이 나면 민자 유치를 해서라도 가덕도로 공항을 옮기겠다"고 했다.
최충경 경남상공회의소협의회 회장은 "대통령이 결론을 내겠다고 한 것은 입지 결정을 차기 정권으로 연기한다든지, 아니면 김해공항 확장 등 다른 결정을 하겠다는 의미가 포함돼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탈락한 쪽' 배려한다면? = 허 부산시장은 "신공항이 가덕도로 결정된다면 대구에 공항터미널을 건설하고 가덕도 신공항까지 최첨단 고속교통수단을 설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그는 "공항터미널에서는 입출국 수속과 수화물 발송 등을 할 수 있어 활주로만 없을 뿐 공항이 하나 있는 것과 같다"고 주장했다.
최 경남상의 협의회 회장은 "밀양으로 결정된다면 부산에 금융허브센터를 설치해 금융 서비스 기능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이고 만약 가덕도로 결정된다면 창원 등지에 과학 벨트가 조성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유 대구시당 위원장은 "가덕도로 결정이 나면 대구경북 지역민들이 앞으로 한나라당에 표를 줄 이유가 없어진다"고 전제하고 나서 "탈락 지역민들에 대해서는 후유증을 달래기 위한 특단의 방안이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왜 이 지경까지 왔나 = 동남권 신공항은 오는 2027년이면 김해공항의 항공 수요 처리능력이 한계에 다다를 것이란 전망에 따라 추진하는 사업.
지난 2007년 대선과정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동남권 신공항 건설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정부는 당초 지난 2009년 9월 신공항 입지를 발표할 계획이었으나 각종 정치 일정과 지역 간 갈등 등의 영향으로 지금까지 3차례 발표 일정이 미뤄졌다.
이 같은 정부의 뜨뜻미지근한 자세가 사태를 악화시켰다는 지적들이 곳곳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유 대구시당 위원장은 "정부가 진작 약속을 지켰으면 지금과 같은 지역 갈등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 경남상의 협의회 회장도 "지자체가 서로 과열 경쟁을 하게 된 데는 정부의 책임이 크다. 입지 결정을 진작에 했어야 한다"라고 가세했다.
상대 지역에 대한 섭섭함도 표시됐다. 김 부산시당 위원장은 "대구.경북 지역이 과열되다 보니 부산에서도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고 말했고, 신 부산상의 회장은 "일부 지역에서 포상금을 내건 서명운동을 하는 등 도를 넘은 행동도 있었다"고 지적했다.
반면 김 대구시장은 "수차례 부산 쪽에 대화를 제의했지만 답변이 없었던 것은 그쪽"이라면서 "신공항은 영남권의 미래를 위한 인프라 구축 사업인 만큼 지방의 발전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