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각에서 고소득 전문직에 해당하는 의사나 변호사들이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기 위해 세무검증제 도입을 반대한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지만, 사실 세무검증제가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근본적 이유는 제도의 허점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자영업자들의 세무신고 정확성을 높이고 소득탈루를 차단한다는 확실한 명분에도 불구하고, 명분을 실현시키기 위한 방법은 부실하기 짝이 없다.
국회 논의과정에서 일부 수정되긴 했지만, 제도의 문제점을 보완하기보다는 명칭을 바꾸는 등 겉치레에 치중하거나, 검증대상을 확대하고 세무조사 혜택은 없애는 등 오히려 납세자의 부담을 키우는 방향으로 흘러버렸다.
□ "세무대리인에게 신고검증 맡기는 자체가 문제" = 기획재정부가 마련한 세무검증제도의 가장 큰 문제는 세무대리인에게 신고내용의 성실성 검증을 맡기는 것 자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세무검증제는 애초 사업자와 세무대리인의 유착에서 비롯되는 '탈세동맹'을 끊어내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그러나 정부의 도입방안은 오히려 또 다른 유착의 소지를 만들어 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세무대리인 스스로 '자기검증'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한 부분이 논란이 되고 있다.
특정 납세자의 세무업무를 대리하고 있는 세무대리인이 해당 납세자의 세무신고 등에 문제점이 없는지 '검증'하는 것은 정부가 제도 도입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이미 세무신고대리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1차적으로 납세자와 유착돼 있는 세무대리인이 스스로 2차적인 검증을 수행하면서 자신이 잘못한 일을 찾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대한의사협회 장현재 이사는 "지금까지 세무대리를 한 사람이 누구인가. 세무사이다. 그 세무사가 그 세무사인데, 뭘 검증하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부정하게 탈세를 하는 것은 잡아야 하지만, 적어도 이 방법은 탈세차단보다는 납세협력비용만 늘릴 뿐이다"라고 말했다.
□ 외부조정은 뭐 하러 하나-'옥상옥' 규제 전형 = 세무검증제는 세무신고를 정확하고 성실하게 이행했는지를 점검하는 제도.
그러나 세무신고의 정확성을 점검할 수 있는 제도는 이미 다양하게 마련돼 있다. 납세자는 국세기본법에 따라 납세의 의무를 성실히 이행해야하고, 이를 어길 경우 불성실가산세 등을 부담할 수 있으며, 조세범처벌법에 따라 형사처벌도 받을 수 있다.
납세자들이 세무신고의 정확성을 확인하기 위해 실시하고 있는 제도 중 대표적인 것은 '외부세무조정'. 현행 소득세법과 소득세법시행령은 성실한 납세를 위해 필요한 경우 일정 사업자에 대해 세무사나 공인회계사를 통해 세무조정을 받고, 조정계산서를 작성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법인들뿐만 아니라 세무검증 대상자인 자영업자들 역시 일정 수입금액 이상이 되면 외부세무조정을 의무적으로 이행하고 있으며, 세무대리인을 통해 외부조정을 하지 않으면 20%의 가산세까지 부과 받는다.
검증대상이 되는 납세자들로부터 "이미 만들어져 있는 제도조차 제대로 시행하지 못하면서 새로운 제도만 찍어내듯 만들면 탈세가 막아지느냐"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국세청 관계자는 "일반 기업들이 공인회계사로부터 재무제표 등에 대해 외부감사를 받는 것처럼, 사업자들도 세무사로부터 세무조정계산서를 검증 받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 납세자 부담 급증, 세액공제하면 OK? = 세무검증제도의 또 다른 문제점은 납세협력비용을 불필요하게 증대시킬 소지가 크다는 점이다. 정부는 납세협력비용 절감을 위해 세액공제라는 인센티브 방안을 내 놨지만, 추가비용의 발생은 불가피해 보인다.
정부는 100만원 한도로 검증비용의 60%까지 세액공제를 해주고, 의료비와 교육비 공제를 허용하는 인센티브 방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정작 검증주체가 될 세무사들 사이에서는 검증비용으로 500만원까지 입에 오르내리고 있는 실정이다. 세무대리인들의 요구수준을 볼 때 100만원 공제로는 납세협력비용 증가는 불 보듯 하다.
의료비와 교육비공제에 대해서도 불만이 제기되고 있다. 의료비 지출이 없거나 교육비가 투입되는 자녀가 없는 자영업자들에게는 세무검증을 받아도 전혀 혜택이 가지 않을 수 있다.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특히 일정 수입금액 이상의 납세자는 모든 업종에서 무조건 의무적으로 세무검증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그동안 탈세와는 상관없이 성실히 세무신고를 해 왔던 납세자도 이번 제도도입으로 납세협력비용을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는 문제는 심각하다.
□ 세무사들 도덕성은 어떻게 신뢰할 수 있나 = 세무검증의 주체가 되는 세무대리인들의 신뢰도를 어떻게 담보할 수 있느냐도 큰 문제다.
세무대리인은 납세자로부터 돈을 받고 세무서비스를 제공해주는 서비스업자다.
상당수 경력세무사들은 이미 수년 혹은 수십년간 같은 납세자로부터 일거리를 받아 수임해 왔고, 세무검증제도가 도입된다고 하더라도 납세자가 새로운 세무대리인을 고용할 가능성은 상당히 낮다.
불성실 납세자일수록 자신과 친분이 있는 세무대리인에게 일을 맡겨야 검증이행 불성실 가산세를 부담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세무대리인이 납세자와 유착되어 불성실한 검증을 했다가, 후일 세무조사를 통해 적발된다고 하더라도 징계가 제대로 이행될지도 의문.
정부는 세무검증 위반시 세무사의 징계양정규정을 별도로 마련할 계획이지만, 세무사의 징계 자체가 세무사회나 국세청으로부터 징계요청이 있어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 개인사업자 법인화 하면 무용지물 = 세무검증제도가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하면서 법인화를 부추길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변호사의 경우 대부분의 고소득 변호사는 법무법인 등에 소속되어 월급쟁이로 일하기 때문에 세무검증 자체에 해당이 되지 않지만, 변호사 한 두 명만 마음이 맞으면 일반 개업변호사도 법무법인으로 전환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다.
서울에서 법무법인에 소속돼 근무하고 있는 한 변호사는 "법인으로 전환하면 문제될 것이 없으니, 변호사들은 세무검증을 받기 싫어서라도 법인화 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납세자가 수입금액을 고의적으로 낮출 수 있다는 문제도 있다.
서비스업종의 경우 7억5000만원이 검증 대상이 되는 기준이지만, 수입금액이 이 기준선에 위치한 자영업자들의 경우 검증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그 이하를 유지하려고 수입금액 '마사지'를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
실제로 매출액 등을 기준으로 하는 중소기업 기준, 외부감사기준을 피하기 위해 기업들이 보이지 않는 노력을 하고 있으며, 일부 자영업자들이 간이과세자로 남기 위해 수입금액을 줄이는 노력을 하는 것도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