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세유 관리감독 행정체계 '거대 구멍'
국세청의 면세유(免稅油) 관리감독 체계의 허점이 경찰 수사결과 밝혀지면서 충격을 주고 있다. 주한미군에 공급되는 면세유 쿠폰을 위조한 일당들은 지난 10년 동안 아무런 거리낌 없이 1000억원이 넘는 세금을 부정환급 받아 가로챈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이 사건과 관련해 경찰이 GS칼텍스 등 정유사 직원 및 국세청 직원들까지 수사범위를 확대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국세청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수사 확대를 떠나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국세청의 면세유 유통 관리감독 체계에 커다란 구멍이 나 있었다는 사실.
1, 2년도 아니고 무려 10년 동안 부정행위가 벌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경찰 수사결과가 나오고 나서야 뒤늦게 문제점을 파악했다는 사실은 실로 충격적이다.
□ 희대의 '세금 사냥꾼'들 = 경찰 수사망에 적발된 면세유 사기일당은 10년 동안 1억7000만 리터의 면세유를 가로챈 것으로 드러났다. 국고에서 빠져나간 혈세만 1100억원에 달한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이들이 사용한 방법이 너무도 간단했다는 점이다. 주한미군이 발행한 면세유 교환권을 타자기와 화학약품으로 위조, 정유사를 통해 교환권을 세무서에 제출하고 세금을 돌려 받은 것으로 경찰 수사결과 드러났다.
정유사 직원과 미군 군무원, 주유소업자를 끌어들인 것은 기본. 심지어 이들은 직접 주유소를 세워, 빼돌린 면세유를 팔기까지 했다.
주한미군이 발행하는 면세유 쿠폰은 SOFA(주한미군지위협정) 규정에 따라 주한미군과 계약을 체결한 업체에 발행되는 '면세석유류 구매증서'.
이 증서를 받은 업체들은 지정 주유소에서 석유류를 공급받고 주유소는 정유사에 쿠폰을 제출하면 정유사는 관할 세무서에 보내 면세액 만큼 환급(교통에너지환경세, 교육세, 주행세 등)받는 시스템이다.
주한미군은 면세유 쿠폰 발급시 정유사 및 관할 세무서에 '면세석유류 구매 사전통보서'를 발송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경찰 수사결과 정유사가 많은 양의 면세유 쿠폰을 모아 관할 세무서에 신고하는 방식이 관행으로 자리잡다 보니 세무서 직원들이 면세석유류 구매 사전통보서와 면세유 쿠폰을 크로스 체킹하는 일을 제대로 하고 있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결과적으로 이 부분이 세무행정의 '허점'인 셈이다.
세금환급과 연결된 부분이라는 측면에서 세심한 관리감독이 필요했음에도 불구, 국세청은 관심을 두지 않고 있었던 것. 결국 세무행정의 허점을 이용한 범죄자들에 의해 거액의 혈세가 국고에서 빠져 나가버렸다.
□ 국세청 '책임론' 대두…국세청은 '네 탓' = 이 사건과 관련해 일각에서는 허술한 관리감독으로 혈세 누수를 방조한 국세청에 대한 '책임론'을 제기하고 있는 모습이다.
면세유 쿠폰 수량의 많고 적음을 떠나 10년이라는 오랜 기간 동안 국고누수 현상이 빚어지고 있었음에도 진상파악 조차하지 않은 점에 대한 책임론이다.
만약 경찰 수사가 없었다면 더 오랜 기간 동안, 더 많은 세금이 부정환급 됐을 공산 또한 크다.
국세청은 책임론의 예봉을 피하기에 급급한 모습이다.
주한미군과 정유사 등에 책임을 전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정유사들로부터 들어오는 면세유 쿠폰의 양이 너무 많고 인력이 부족해 일일이 확인하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며 "따라서 쿠폰을 모아 환급받는 정유사가 제대로 확인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라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면세석유류 구매 사전통보서를 제공해야 할 미군이 군사기밀 등의 이유를 들어 제때 정유사와 세무서에 통보서를 제공하지 않는 점도 관리부실로 이어진 측면이 있다"고 책임을 돌렸다.
결과적으로 이번 사건과 같이 사기범들이 정유사 직원, 미군 군무원들과 치밀하게 공모할 경우 현재의 국세청 인력구조로는 잡아내고 싶어도 잡아낼 수가 없다는 주장이다.
□ 수사폭 넓히는 경찰 = 경찰은 이 사건과 관련한 수사의 범위를 점차 넓히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해외로 도주한 GS칼텍스 직원 P씨 이외에도 정유사 내부에 또 다른 공모자가 있는지 여부와 함게 관리감독을 제대로 하지 않은 국세청도 수사대상에 포함시킨다는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로 경찰은 1차 수사과정에서 국세청 직원들을 불러 SOFA규정상 매뉴얼이나 지침을 제대로 따랐는지 여부를 집중 추궁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국세청 직원들이 교체과정에서 인수인계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 진술하고 있는 점, 과거 메뉴얼이나 지침을 따랐지만 현재는 세무서에 들어오는 쿠폰을 어떻게 점검하는지도 모르고 있었다"고 전했다.
경찰은 이에 따라 가짜 쿠폰을 정유사에 제출하는 과정에 가담한 추가 공모자 존재 여부를 포함해 미흡한 관리감독 체계를 운영한 국세청에 대해서도 내부 공모자 존재 여부를 밝혀내기 위한 2차 수사를 진행할 방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