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정의 실천과 공정사회 구현을 위해 31일 정부가 내놓은 방안 중 눈에 띄는 것이 적지 않다.
그 중에서도 기업들의 일감몰아주기에 대한 과세방침과 체납세액 징수업무의 민간위탁 방침은 오랜 기간 정부에서 문제의식을 갖고 있으면서도 뾰족한 수를 내지 못했던 사안들이다.
공정사회라는 이념적 틀에서 '접근법'이 검토됐다는 측면에서 제도 도입에 대한 정부의 의지가 상당한 것으로 풀이해 볼 수 있다.
특히 대기업들의 계열사에 대한 일감몰아주기와 그에 따른 편법증여에 대한 과세방침은 확고해 보인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합동브리핑에서 "일부 대기업에서 내부 계열사간의 일감 몰아주기로 부당한 상속과 증여를 하고, 탈세하는 관행이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며 "이를 방지하기 위한 제도개선을 추진중이다. 내용이 구체화되면 다시 말하겠다"고 밝혔다.
주영섭 기획재정부 세제실장도 "현재는 일감몰아주기에 대해 과세를 할 수 있는 확실한 근거가 없다"라며 "아직 확답을 줄 수 있는 단계는 아니지만, 법률적으로나 실무적으로 검토를 해서 올해 정기 세제개편 때까지 규정을 만들 것"이라고 전했다.
□ 알면서도 손 못댄 일감몰아주기 편법증여 "이번에는?" = 현대 글로비스 사건으로 일감몰아주기를 통한 편법증여문제가 사회적인 관심을 끌었던 지난 2006년, 참여연대가 공개한 국내 대기업들의 일감몰아주기 사례는 충격적이었다.
삼성, 현대차, LG, SK 등 38개 재벌총수 일가의 주식거래에 대해 조사한 결과 시가총액 상위 38개 기업집단인 이들 대기업 그룹에 속한 250여개 기업 중 1/5인 50개 기업에서 일감몰아주기가 만연했다.
문제는 이러한 일감몰아주기와 편법증여에 대한 뾰족한 과세방안이 없다는 것.
지난 2004년 상속·증여세 완전포괄주의가 도입됐지만, 세법상 과세를 할 수도 있고, 동시에 과세하지 않을 수도 있는 애매한 규정 때문에 법부터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과, 국세청이 과세의지만 있으면 과세할 수 있다는 지적이 팽팽하게 맞섰다.
당시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와 국세청이 '기업을 봐주기 위해' 서로 책임을 떠넘긴다는 지적도 나왔다.
실제로 2006년 국세청 국정감사에서는 현대차와 글로비스, SK그룹과 SK C&C, 신세계 그룹과 광주신세계, 효성그룹과 효성건설, 태광그룹과 태광시스템즈 등의 사례를 들며 국세청이 과세의지를 갖고 대기업의 일감몰아주기에 대한 적극적인 과세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이에 대한 국세청의 답변은 달랑, "과세에 신중해야 한다"였다.
그러나 공정사회 대책의 일환으로 정부 스스로 이런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선만큼, 앞으로의 진행상황은 주목받을 수밖에 없게 됐다.
정부는 일감몰아주기에 대한 과세요건, 이익계산방법 등 합리적인 과세기준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현행 세법상 계열사간 합병차익이나 감자 등을 통한 편법증여는 과세근거가 마련돼 있는 만큼, 여기에 더해 일감몰아주기를 통한 부(富)의 이전 혹은 증식에 대한 과세근거를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예를 들어 그룹 총수가 아들이 운영하는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주면서 해당 계열사의 주식이 급등하고, 이를 통해 아들이 보유하고 있는 계열사 주식의 가치도 상승하는 경우 그 주식가치 상승분에 대해 과세하는 방식 등이 고려될 전망이다.
그러나 실제로 이런 과세방침이 실행되기가 쉽지는 않을 전망이다.
대기업들의 반발이 적지 않고, 창출된 수익이 일감몰아주기를 통해 이뤄진 것인지, 정상적인 영업활동을 통해 이뤄진 것인지를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이 까다롭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와 함께 공익법인을 이용한 상속·증여세 회피도 차단하기 위해 공익법인의 사후관리 강화와 제도 보완도 추진키로 했다.
□ 체납정리 민간위탁-납세자 반발 축소가 관건 = 체납세액의 지속적인 증가도 공평과세를 저해하는 요소로 꼽힌다.
이번에 체납세액 징수대책으로 민간위탁이라는 방안을 들고 나왔지만 사실 정부는 그동안 체납세액징수업무의 민간위탁방안을 반대해 왔다.
체납세액의 징수업무를 민간에 위탁할 경우 징수비용이 급증하게 되고, 납세자의 권익침해나 납세자 정보유출 등의 단점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민간위탁이라는 강수를 꺼내든 것은 체납세액문제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
국세부문 체납 발생 총액은 2007년 18조7100억원에서 2008년 19조3600억원, 2009년 20조6700억원, 2010년 22조2200억원으로 크게 증가했고, 체납액을 걷지 못하고 결손 처분하는 규모도 2007∼2010년 사이 연평균 7조원에 달하고 있다.
또한 지방세 미정리체납세액도 2004년 이후 2007년까지 3조2000억원대를 유지하다 2008년 3조4096억원으로 늘었다.
정부는 현재 체납세액징수업무를 일부 민간에 위탁하고 있는 미국, 호주, 일본 등 해외사례를 바탕으로 구체적인 위탁방안을 모색하고, 당장 일정액 이상의 고액상습 체납자부터 징수업무의 민간위탁을 시작하고, 추후 범위를 확대할 방침이다.
그러나 국민의 4대 의무 중의 하나인 납세의무와 관련된 행정업무를 민간에게 위탁할 경우 발생하는 납세자의 인권침해 등 다양한 위험요소는 제도 시행의 걸림돌이 될 전망이다.
익명을 요구한 세법전문가는 "체납징수사무를 민간채권추심업체에 위탁할 경우 개인정보 유출 등으로 인한 납세자 피해가 발생할 수 있고,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운영되는 추심회사의 과도한 재산조회 및 추심으로 납세자의 기본권을 해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