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신고확인제의 출발에서 국회 통과까지

성실신고확인제의 출발은 2009년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청와대 내부에는 의사와 변호사 등 일부 고소득 전문직 사업자들의 탈세가 심각하며, 이 과정에 사업자와 세무대리인간의 '탈세동맹'이 깊게 형성돼 있다는 문제가 제기된다.

특히 세무대리인이 장부기장과 세무조정을 중복 수행하는 과정에서 탈세가 조장되고 있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었고, 이를 차단하기 위한 제도 마련이라는 임무가 기획재정부에 하달된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에서 이런 움직임이 있다는 소식을 접한 세무사들은 정부가 추진하는 '장부기장과 세무조정의 중복업무 금지'를 막기 위한 대안으로 '신고검증제' 도입을 제안, 지속적으로 건의해왔다.

당시 제안된 '신고검증제'는 수십년간 국세청의 세무조사를 받지 않았던 자영업자들을 대상으로 세무사들이 요청을 받아 검증을 한 후 국세청에 신고하고, 국세청은 이들 검증통과자에 대한 세무조사를 면제해주는 내용이 골자였다.

정부는 세원투명성 확보를 통해 그동안 걷지 못했던 세금을 거둬들이고, 세무사들은 탈세조장이라는 의혹도 벗는 일석이조의 방안이라는 게 세무사들의 판단이었다.

그러나 이 방안대로라면 세무사들의 신고검증을 받은 납세자에 대해서는 국세청이 세무조사권을 발동할 수 없다는 문제 때문에 국세청이 완강하게 반대했고, 제도마련은 수개월간 답보상태에 머무르게 된다.

□ 세무검증제도의 고안과 빗발치는 반대의견=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던 기획재정부가 2010년 8월 꺼내든 카드는 '세무검증제'라는 이름의 새로운(?) 제도.

고소득 현금수입업종과 의사, 변호사 등 전문직 사업자를 대상으로 세무검증을 하되, 검증 내용이 불성실할 경우 검증의 주체가 되는 세무대리인에게 '징계'라는 책임을 묻겠다는 내용이다.

공적인 업무를 수행하게 해달라고 요구하면서도 '책임' 문제는 간과했던 세무사들은 즉각 반발, 검증대상이 되는 사업자들과 함께 반대의 편에 서면서 제도 도입은 '난항'을 예고했다.

특히 의사업계와 변호사 업계 등 전문직 사업자들은 자신들만을 탈세집단으로 보고 특정한 규제를 탄생시킨다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제도 도입의 핵심 관문인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에서의 반대의견도 적지 않았다. 국회에서는 세무검증제의 정당성과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민주당 이용섭 의원은 세무검증제도에 대해 "아무리 목표가 좋아도 뒷받침하는 수단이 정당하지 못하면 나쁜 정책"이라고 평가했고, 같은 당 오제세 의원은 "세무대리인에 대한 징계가 유명무실한 상황에서 누가 누굴 검증한다는 것이냐"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여당 의원들의 반대도 적지 않았다. 한나라당 권경석 의원은 "국가 과세권의 일부를 민간에 위탁하면서 세정체계의 혼란과 부작용이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결국 2010년 12월 국회에서 세무검증제의 도입은 상임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의 벽도 넘지 못하고 무산됐다.

□ 세무사회의 입장변화, 그리고 재정위 전격 통과= 소위조차 통과하지 못한 법안이 5일 국회 본회의까지 통과하게 된 배경에는 올 초 입장을 바꾼 세무사회의 역할이 적지 않았다.

조용근 세무사회장은 연초 공식석상에서 전자세금계산서 시행으로 세무사들의 용역이 줄어들 것이라며 대안으로 '세무검증제'의 시행이 필요하다고 역설하기 시작했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세무대리업계에서 먹고 살길을 찾아 나선 세무사들이 세무검증 업무를 '블루오션'으로 평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적절한 타이밍에 나온 청와대의 지원사격도 힘을 발휘했다.

2월 국회가 한창 진행중이던 2월 17일 이명박 대통령 주재로 열린 첫 번째 공정사회 추진회의에서 '납세'분야는 국민의 4대 의무 중 가장 공정하지 않은 분야로 꼽히며, 공정사회를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할 과제로 제시됐다.

2011년 중점추진 업무계획에 '세무검증제 재추진'을 포함시킨 기획재정부는 이런 배경을 등에 업고, 2월 임시국회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의원들을 공략했다.

세무조사 같은 느낌을 주지 않기 위해 제도의 이름을 '성실신고확인제'로 바꾸고, 특정 업종에 대한 규제라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위해 모든 자영업종으로 대상을 확대했다.

결국 조세소위원회에서 반대입장을 견지하던 여당 의원들이 정부의 편을 들기 시작했고, 격론 끝에 세무검증제 도입법안은 '성실신고확인제'로 이름을 바꾼 후, 야당의원들의 반대의견만이 속기록에 남겨진 채 조세소위원회와 기획재정위원회를 통과했다.

□ 법사위 한차례 고비 넘긴 후 본회의까지 일사천리= 가장 중요한 첫 번째 관문을 통과했지만 다음 관문인 법제사법위원회를 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법사위에 대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변호사단체들이 제도도입을 반대하고 있기 때문.

실제로 2월 국회에서 법사위가 성실신고확인제 관련 법안을 '상임위를 통과한 법은 닷새가 지나야 법사위에 상정한다'는 규정을 이유로 상정시키지 않자, 변호사 출신의원들이 '제 밥그릇 챙기기' 때문에 반대한다는 비판이 제기된 것도 이런 배경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4월 국회가 열리자마자 법사위는 일사천리로 법안을 처리, 본회의로 넘겼다.

율사출신들의 제 밥그릇 챙기기라는 비판을 우려해서인지 법사위 소속 의원 대부분이 성실신고확인제 도입에 반대하지 않았다.

미래희망연대 노철래 의원만이 "세무사들이 자영업자들에게 유리하게 기장해서 세액을 결정하는데, 스스로 자기가 한 것을 검증해서 부정하겠냐"며 "징계도 중요하지만 사전에 안전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반대의견을 제시하는 데 그쳤다.

납세자의 성실신고확인 비용에 대해 60%(100만원 한도) 소득공제를 해주는 등의 인센티브방안이 담긴 조세특례제한법이 다른 개정안과 함께 묶여 법사위 법안심사소위로 넘겨졌지만 법사위 의원들간의 이견이 없어 4월말 본회의 통과가 유력한 상황.

결국 성실신고확인제 도입 법안은 5일 열린 본회의에서 재석의원 227명 중 찬성 185명, 반대 22명, 기권 20명(소득세법 개정안 기준)으로 가결 처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