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대로 행정을 집행하는 과세당국에서 납세고지서가 본인에게 전달됐는지 확인도 하지 않을까, 고개를 갸웃거릴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그런 어이없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과세당국으로부터 세무조사를 받고 부가가치세와 법인세를 경정·고지 받았지만 납세고지서 전달이 잘못되면서 과세처분이 '무효'가 되어 버린 흔치 않은 사례를 소개할까 합니다.
납세고지서는 원주인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사람에게 배달이 됐고(거액의 세금이 찍힌 고지서를 받은 이도 황당했을 것입니다), 국세청은 꼼꼼하지 못한 일처리로 체면을 구기게 된 사례입니다.
□ 엉뚱한 사람에게 전달된 납세고지서 = 무역업을 하는 A씨는 지난 2009년 3월부터 9월까지 지방국세청으로부터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받았습니다.
조사 과정에서 2008년 제1기 과세기간 중 공급가액 20억원 상당의 가공매입세금계산서를 수취하고 같은 해 제2기 과세기간에는 5억8000만원 정도의 가공매출세금계산서를 발행한 정황이 포착됐습니다.
또한 대북 수출입과 관련해 12억원 상당의 영세율 가공매입세금계산서 수취, 수출계약을 체결하지 않고 A씨 회사 명의로 수출신고서를 작성해 북한 무역업자에게 15억원 상당을 수출한 것으로 신고한 것도 확인이 됐습니다.
이 같은 부정행위를 적발한 과세당국은 2008년 제1기 부가가치세 4억원과 2008년도 법인세 180만원을 경정·고지합니다.
그러나 뜻밖의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A씨가 납세고지서를 받지 못했다며 세금을 낼 수 없다고 배짱을 부리고 나섰기 때문입니다. 납세고지서가 자신과 관련이 없는 회사 직원에게 전달돼 구경도 못해 봤다는 것입니다.
과세처분이 유효하다고 해도 과세당국이 과세근거로 제시한 탈세 혐의 자체를 부인했습니다. 과세당국이 명백한 근거를 제시하지 않은 채 모두 가공거래 또는 위장거래로 단정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주장이었습니다.
납세고지서 송달여부와 관련, 과세당국이 내놓은 변명은 궁색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과세당국은 "납세고지서를 수령한 사람이 다른 회사 직원이긴 하지만 A씨 회사와 출입문이 같고 칸막이 등으로 경계만 돼 있어 실질적인 A씨 회사의 지배범위 내에 있다"고 항변했습니다.
또한 과세와 관련해서도 지방국세청이 A씨 회사의 거래상대방 등에 대한 조사를 통해 가공거래 또는 위장거래 한 사실을 확인했지만 A씨는 정상거래를 했다는 주장만 할 뿐 객관적인 자료를 제출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도 지적했습니다.
□ "과세근거보다 절차에 문제 있어" = A씨가 제기한 과세불복에 대해 조세심판원은 과세당국의 과세 자체에 문제가 있다기 보다는 납세고지서가 전달된 절차에 더 주목했습니다.
지방국세청이 A씨 회사에 대한 세무조사를 착수할 당시 사업장에는 현판만 달랑 걸려있었을 뿐 직권으로 폐업처리 된 사실도 확인했습니다.
특히 심판원은 과세당국이 A씨 회사에 납세고지서를 적법하게 전달했다고 하지만 이미 폐업한 상황을 알면서도 그 사업장으로 고지서를 발송한 점, 고지서를 수령한 사람이 A씨 회사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직원인 점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심판원은 "납세고지서가 적법하게 송달됐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며 "납세고지서의 적법한 송달을 전제로 한 이번 과세처분은 무효에 해당되므로 취소되는 것이 타당하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어 "과세 처분이 취소된 마당에 과세근거에 대한 국세청과 A씨의 다툼은 심리의 가치가 없어 생략한다"고 심판원은 덧붙였습니다. 절차적 문제가 발생했으니 과세의 정당성 여부는 논외라는 판단입니다.
평소 일 잘하는 조직으로 소문난 국세청이 얼렁뚱땅 일처리로 다 잡은 고기를 놓친 안일함이, 못내 아쉬움을 남겨준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참고심판례 : 2010중22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