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에는 개봉하지도 않았지만 극장 개봉작 못지 않은 열혈관객을 보유하고 있는 영화들이 있습니다.
에로영화보다는 음란물에 가까운 '삼류' 에로영화(이하 에로물)가 바로 주인공인데요. 모든 영화가 그렇지만 특히 이런 영화에는 없어서는 안될 구성요소가 '배우'입니다.
배우가 없는 에로물을 상상하기도 어렵겠지만, 최근에는 국가기관에서 이런 에로물에서 배우의 중요성을 공인(?)해준 사례가 있어 눈길을 끕니다.
에로물 제작사가 출연 배우들에게 지급한 출연료 등에 대해 객관적인 증빙자료를 갖고 있지 못하고 있다며 국세청은 세금을 부과했고, 이에 제작사가 억울하다며 조세심판원의 문을 두드리자 조세심판원은 "해당 영상물에는 출연배우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인다"며 출연료 지급이 실제로 있었던 것으로 판단을 내린 것입니다.
□ 자료상이 발급한 세금계산서는 모두 가짜? = 2001년부터 에로물을 제작해 온 A씨는 2005년 관할 세무서로부터 뜻하지 않던 800여만원의 부가가치세 고지서를 받았습니다.
A씨가 2005년 2기 부가가치세 과세기간 중 B사로부터 5000만원 상당의 매입세금계산서 2매를 받아 매입세액을 공제한 것이 허위로 작성된 것이고, 이에 따라 부가가치세를 경정해서 고지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B사는 에로배우나 엑스트라 배우들을 공급하는 엔터테인먼트 회사로 A씨는 B사로부터 모두 5명의 배우들을 출연시키는 계약을 맺고 영상물을 제작했습니다.
A씨는 B사로부터 출연료 등에 대해 세금계산서를 받았지만, B사가 허위세금계산서를 사고 파는 '자료상'으로 국세청에 적발되면서 A씨가 거래한 세금계산서도 가공된 것으로 판단한 것입니다.
특히 B사의 사주인 Y씨가 국세청 조사과정에서 "A씨와의 거래금액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5000만원은 아닌 것 같다. 실제 거래가 있었다면 통장에 찍힌 것이 전부일 것"이라고 진술하면서 세금계산서의 허위 가능성에 무게를 실어줬습니다.
국세청은 "출연계약서는 계약기간, 출연료 및 출연자가 명시되어 있는 것이 일반적이나 A씨가 증빙으로 제출한 계약서는 형식적인 것으로 가공거래로 나타난다"고 밝혔습니다.
계약서 자체가 '가짜'로 판단되기 때문에 이를 근거로 A씨가 부가세 신고시 매입세액을 공제했던 5000만원짜리 세금계산서 2장을 '전액'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겁니다.
그러나 A씨는 억울했습니다. 분명히 배우들을 출연시키고 그에 대한 출연료로 B사에 현금을 지불했고, 그에 따른 세금계산서를 발부 받았을 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 현금으로 지급된 에로배우 C씨의 1회 출연료 60만원 = 문제는 에로물 제작현장에서 관행처럼 돼 있는 현금의 지급방식에 있었습니다.
A씨는 B사와 5000만원에 배우 공급계약을 맺은 후 1100만원은 B사 대표 Y씨에게 송금하고, 나머지 금액은 업종 관행상 현금으로 현장의 배우들에게 직접 지급했습니다.
현금으로 지급된 부분은 기록도 남아 있지 않았고, 계좌로 송금한 부분도 출연료인지가 명확하지 않았습니다.
A씨는 이를 증명키 위해 배우들의 출연계약서사본, 소속배우계약서 및 지불내역, 은행송금증명서, 배우의 진술서, 은행거래원장 및 직접 제작한 에로물동영상 CD까지 심판원에 증거로 제출했습니다.
특히 에로물의 주연배우(?)에 해당하는 배우 C씨의 경우 2005년부터 2년간 A씨가 제작한 에로물에 14회 출연해 1회 60만원의 출연료를 받았고, 이 중 현장에서 B사 매니저 수당 30∼40%를 제외한 나머지 금액을 현금 혹은 통장으로 받았다는 진술로 지원사격도 했습니다.
□ "에로물에는 출연배우가 꼭 필요하다고 인정" = 결과적으로 심판원은 A씨의 주장을 일부 수용했습니다. 5000만원 중 계좌로 송금한 1100만원만 실물거래로 보고, 1100만원을 과세표준에서 제외한 후 세액을 다시 고쳐서 고지하라고 결정했습니다.
증빙이 명확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A씨가 만드는 에로물과 같은 영화에는 출연배우가 꼭 필요하기 때문에 출연료 지급은 있을 수 밖에 없다는 점이 인정된 겁니다.
심판원은 "A씨가 영위하는 영상제작업은 출연배우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판단되며, 출연배우들의 진술에 비춰볼 때 적어도 B사에 송금한 1100만원 상당액은 실물거래가 있었던 것으로 봐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몸을 던지는(?) 열연의 대가가 얼마인지를 공개하면서까지 지원사격을 해 준 C씨의 진술이 그리 큰 힘은 되지 못했습니다.
계좌로 송금된 것 이외에 현금으로 오간 부분들은 실물거래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심판원은 심판과정에서 배우 C씨가 14회나 출연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직접 에로물을 시청해봐야 했겠지만, 이를 눈으로 확인하고도 '현금'으로 지급한 출연료는 인정할 수 없다고 못을 박았습니다.
자료 없는 현금거래가 과세당국의 눈을 피할 수 있는 방법도 되지만, 부메랑이 되어 세금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는 점은 에로물을 제작하는 뜨거운(?) 현장에서도 피할 수 없는 진리인 것 같습니다.
[참고심판례 : 2010중117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