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5월 0.25%p 인하 이후 4년 5개월 만에 첫 기준금리 ‘인하’
전문가 “금리인하 시점 失期…향후 물가상승률 안정화 흐름 지속”
“가계부채 증가·부동산 가격 상승세 우려에도 물가안정 상황에서 동결 어려웠을 것”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1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에서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한국은행 제공
한국은행이 긴축적인 통화정책 방향 전환(피벗, pivot)에 나섰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는 11일 기준금리를 연 3.25%로 0.25%p 인하했다. 2021년 8월 0.25%포인트(p) 금리인상 이후 3년 2개월 만이고, 2020년 5월 0.25%p 인하 이후 4년 5개월 만에 첫 기준금리 인하다.
물가상승률이 목표수준을 하회했고 부진한 내수회복을 지원하기 위한 결정으로 풀이된다. 가계부채 증가세, 부동산 PF 등 금융안정 위험은 여전하지만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제약적 금리수준을 너무 오래 유지해 실기(失期)한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대내적으로 9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6%를 기록하며 1%대로 낮아졌다. 생활물가 상승률도 1%대 중반 수준으로 큰 폭으로 둔화됐다. 무엇보다 근원물가 상승률은 2% 수준에서 안정된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의 8월 경상수지는 66억달러 흑자로 나타났다. 전월(89억7000만달러 흑자) 대비 흑자폭은 축소됐으나 전년동월(54억1000만달러 흑자) 대비 흑자폭은 확대됐다.
다만 8월 은행 가계대출은 2021년 7월(+9조7000억원) 이후 3년 1개월 만에 가장 크게 늘었다. 주택담보대출은 수도권 중심으로 주택 매매거래가 증가하고 입주물량도 늘면서 통계편재 이후 최대치 증가했다. 기업대출(+7조2000억원)은 전월 수준(7조8000억원)의 증가세가 지속됐다.
대외적으로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빅컷(정책금리 50bp 인하, 1bp=0.01%p)을 단행했다. 지난 9일(현재시각) 공개된 9월 FOMC 의사록에서 다수의 연준위원들은 인플레이션의 하락 속도를 따라잡기 위해서는 큰 폭의 금리인하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다만 일부 위원들은 0.25%p 인하를 주장했다. 의사록 발표 이후 CME Fedwatch(페드워치)상 11월 동결 가능성은 24%(기존 13.7%)로 올랐다.
금통위의 이번 결정은 무엇보다 '물가'가 목표하는 수준에 도달했다고 판단한 것으로 분석된다. 9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6%로 낮아졌고 근원물가 상승률은 2% 수준에서 안정된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한은은 지난 2일 개최된 '물가 상황 점검회의'에서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석유류가격의 큰 폭 하락 등으로 1%대(1.6%)로 낮아졌고 근원물가 상승률은 전월보다 소폭 둔화되며 2%를 기록했다"라며 "9월 소비자물가 상승률 하락은 국제유가의 큰 폭 하락 등 대부분 공급 측 요인에 기인한다. 9월 소비자물가 상승률 하락(0.42%p)에서 석유류가격 하락이 약 80%(기여도 0.33%p)를 기여했다"라고 밝혔다.
이어 "향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당분간 2%를 밑돌다가 연말로 갈수록 기저효과 등이 작용하면서 2% 내외 수준에서 등락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다만 중동사태 전개 양상에 따른 유가 불확실성이 큰 상황"이라고 부연했다.
또한 금통위의 결정은 견조한 경상수지 개선 흐름이 이어지고는 있지만 부진한 국내소비 활성화를 위한 것으로도 풀이된다. 우리나라의 8월 경상수지는 66억달러 흑자를 달성했다. 전월(89억7000만달러 흑자) 대비 흑자폭은 축소됐으나 전년동월(54억1000만달러 흑자) 대비 흑자폭은 확대됐다.
한은은 지난 8일 '2024년 8월 국제수지(잠정)' 설명회에서 "8월 경상수지 흑자 규모 66억달러는 올해 1월부터 7월 중 월평균 수준에 근접하고 8월에 발표한 하반기 전망치의 월 평균을 상회하는 수준"이라며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8월에도 견조한 경상수지 흑자 흐름이 지속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라고 밝혔다.
이어 "향후 경상수지 전망에 대해서 수입이 2개월 연속 증가했지만 IT품목 중심의 견조한 수출 호조세에 힘입어서 경상수지 흑자 확대 흐름은 계속 이어지는 모습일 것"이라면서 "하반기 전망치인 353억달러 흑자도 무난히 달성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덧붙였다.
◆…사진=한국은행 제공
이와 함께 금통위의 인하 결정은 '금융안정' 상황이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고 판단한 결정으로 해석된다.
한은은 지난달 26일 금융통화위원회 정기회의(금융안정회의)에서 최근의 금융안정 상황을 점검하며 우리나라 금융시스템이 부동산 PF의 질서있는 구조조정과 금융기관의 양호한 복원력을 기반으로 대체로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한은은 "9월 들어 주택가격 상승세가 주춤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지금 시점에서 완전한 추세 전환인지 확실히 판단하기는 굉장히 어려운 상황"이라며 "다만 가계부채 증가세가 점차 둔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데 정부는 가계부채를 GDP 증가에 맞춰 어떻게든 관리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고 주택시장이 과열되거나 가계부채가 빠르게 증가할 경우 추가적인 관리 수단을 적기에 과감하게 시행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론적으로나 실제적으로 중앙은행이 금리를 인하하게 되면 이는 주택가격 상승 요인, 가계대출 증가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며 "가계부채 수준이 높다는 것은 금융안정 위험, 취약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통화정책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거시건전성정책과의 조합이 굉장히 중요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정부는 거시 정책에 대한, 또 추가적인 다양한 수단들을 검토하면서 부동산 시장과 가계부채 상황에 따라서 적기에 대책을 준비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한국은행도 계속해서 정부와 논의를 해 나갈 것"이라고 거듭 강조한 바 있다.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한양대학교 겸임교수)은 "첫번째 금리인하가 필요하다라는 무게 추는 물가안정 상황이라고 볼 수 있겠다"라며 "헤드라인 물가상승률은 1.6%까지 내려온 상황이며 수입 물가지수를 보더라도 향후 물가상승률 안정화 흐름은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물가상승률이 목표수준 아래로까지 내려왔다는 것은 과도한 제약적 금리 수준을 너무 오랫동안 유지했었다라는 지적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물가안정을 위해서 금리인상을 했었다면 물가안정 목표를 이루는 과정에서 금리인하 시점이 조금 늦었다는 평가를 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실장은 "두 번째는 바로 내수경기 침체"라며 "높은 금리를 오랫동안 유지한다면 지금과 같은 내수부진이 더 장기화될 수밖에 없고 내수 경기침체로 이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금리를 더 오랫동안 제약적으로 운영할 수가 없는 입장이지 않을까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이어 "다만 금리인하 시 나타날 금융불안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을 수는 없었을 것"이라며 "하지만 가계부체 증가세를 잡기 위한 노력은 금융위원회의 금융규제를 더 강화하는 정책, 주택가격 정상화를 위한 노력으로는 국토교통부의 부동산 규제나 공급 대책 등 강화 정책 등이 추가적으로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라고 부연했다.
김광석 실장은 "금통위원들은 가계부채 증가와 부동산 가격 상승세 등 우려에도 물가안정 상황에서 우리 경제가 디플레이션으로 접어들거나 내수 경기침체를 지켜만 볼 수는 없는 상황이지 않았을까 판단할 수 있겠다"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