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서민정책'임을 강조하며 야심 차게 내 놓았던 '영세사업자 체납결손세액 소멸특례제도'가 제도 도입단계부터 제기됐던 실효성 문제의 부각과 함께 '서민'(庶民)을 내세운 전시행정(展示行政)임을 스스로 자인할 상황에 처했다.
사업실패를 겪은 사람들에게 체납세금(500만원 한도)이라도 소멸시켜주고, 재기의 기회를 준다는 의미에서 이른바 '패자부활제'로도 불렸지만, 부활(?)을 기대하고 소멸특례를 받겠다는 지원자가 정부의 기대만큼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
제도가 처음 세상에 알려진 2009년 8월 세제개편안 발표 당시 기획재정부는 이 패자부활제를 이용하게 될 결손처분 사업자수가 5년간 40만명에 달할 것이고, 이들의 납부의무 소멸금액만 44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14일 국세청에 따르면 제도 시행 첫해인 2010년 한해 동안 결손처분 소멸신청자는 1만명에도 훨씬 못 미치는 1430명에 불과하다.
납부의무 소멸금액은 집계되지 않았지만 1인당 최고 500만원까지 결손처분이 소멸될 수 있으니 최대액으로 환산하더라도 71억원 수준에 그친다.
□ 세금 떨어준다는데 왜 신청 안 할까? = 집행부서인 국세청은 일단 제도가 아직 덜 알려진 것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홍보 확대에 주력하고 있다.
국세청 홈페이지를 통해 제도를 알리는 한편, 일선 세무서마다 홍보물을 비치하고, 예상되는 결손처분 소멸신청 대상을 선별해 전국 1만2800여명에게 패자부활제 안내문을 발송하는 등 제도 알리기에 힘을 쏟고 있다.
당초 2009년 12월말 이전에 폐업한 사업자를 대상으로 2010년 1년간만 시행하려했던 재정부가 지난해 세제개편을 통해 2011년 12월말 이전의 폐업자 대상으로 2012년까지 2년 더 시행을 연장한 것도 너무 신청자가 적었기 때문에 좀더 해보자는 취지였다.
그러나 신청자가 저조한 이유는 정부의 판단대로 홍보가 부족해서이기보다는 제도의 허점이 많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이와 관련 한 조세법 전문가는 "정부가 서민정책을 홍보하기 위해 내 놓은 대책이지만, 실효성도 없을뿐더러 애초에 내 놓은 제도 적용 대상 자체가 심하게 부풀려져 있었다"고 지적했다.
□ 어차피 소멸될 체납, 신고하면 오히려 긁어 부스럼? = 영세사업자 패자부활제는 폐업한 영세사업자가 사업을 다시 시작하거나 취업으로 재기할 경우 과거에 체납했던 세금에 대해 500만원 한도로 세금을 면제, '없었던 일'로 해주는 제도다.
500만원의 한도가 설정돼 있어서 500만원이 넘는 체납세액을 보유하고 있는 폐업자라면 500만원까지 납부의무를 면제받더라도 나머지 체납세금 때문에 재기가 어려운 상황에는 변함이 없게 된다.
특히 국세청의 체납관리 체계상 납부독촉, 재산조회 등의 체납관리를 하다가 2∼3년 정도 후에나 무재산으로 결손처분을 하기 때문에 패자부활을 신청할 시점에는 체납세액이 500만원이 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울러 패자부활을 통하지 않고서도 현행 세법상 체납소멸시효 5년이 지나면 체납세금 결손처분을 받게 되기 때문에 체납자가 먼저 과세관청의 문을 두드려 체납세금을 보고할 가능성이 낮다는 점도 문제다.
이미 체납한지 2∼3년이 지난 시점에서 체납세금의 일부에 불과한 500만원을 덜기 위해 국세청에 소득을 신고했다가, 나머지 세금의 소멸시효가 새롭게 5년으로 갱신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세청 관계자는 "5년 내에 재산이 발견되어 압류가 진행되지 않으면 시효는 유지되지만, (국세청에 신고해서) 500만원에 대한 소멸을 받고, 사업을 시작해서 소득이 발생하면 압류가 들어갈 수 있고, 그렇다면 소멸시효(5년)가 다시 새롭게 적용된다"고 말했다.
체납자 입장에서는, 가만히 앉아 있어도 소멸시효가 도래하는데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을 것이다.
□ 문제 투성이 제도의 예견된 결과 = 패자부활제의 문제점은 신청자가 적어서 효율성이 낮다는데 그치지 않는다.
체납된 세금을 폐업했다는 이유만으로 없던 일로 해준다는 것 자체가 조세형평성에 어긋나며, 성실납세의 정신을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2009년 제도도입 당시에는 2009년 12월말 이전까지 폐업한 영세사업자에게만 딱 한번의 '부활'의 기회를 주자는 의미에서 시행된 것이라 형평성 시비가 적었지만, 제도가 2년이나 연장되면서 형평성에 대한 우려는 더 가중될 수 있게 됐다.
아울러 폐업과 취업을 반복하면 세금을 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잘못된 메시지를 납세자에게 제공, 제도를 악용하는 사례가 없다는 보장도 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러한 문제점이 국회 입법과정에서 제기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지난해 세제개편안의 심의과정에서도 입법검토보고서를 통해 조목조목 문제를 지적하고 제도의 연장에 신중을 기할 것을 주문했으나, 너도나도 '서민'을 외치던 상황에서 관련 법안은 별 문제 없이 통과됐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관계자는 "변칙적인 예외를 지속적으로 인정하다 보면 세금의 소멸사유를 납부 및 소멸시효 완성 등으로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는 국세기본법과 국세징수법의 원칙을 훼손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