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 시중은행 '팔목 비틀기'
주가 급락…금융시장 반응 '냉담'
올 들어 시중은행들이 관(官)의 압박에 눌려 설설 기는 형국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대책반장'으로 불리는 김석동 금융위원장과 '금융종결자'를 자처한 권혁세 금감원장의 등장이 시장의 우려를 더욱 키우는 형국이다.
□ 만만한게 시중은행? = 21일 정부 및 금융권에 따르면 올 들어 금융당국은 국내 금융시장의 잠재 불안요인을 해소하기 위해 대형 시중은행들을 잇따라 '구원투수'로 내세우고 있다.
무려 10조원 규모의 은행 출자를 통해 설립이 추진되는 'PF배드뱅크'가 대표적이다. 이를 위해 김석동 위원장은 지난 18일 이른바 '5대 천왕'이라 불리는 강만수 산은지주 회장과 어윤대 KB금융 회장, 이팔성 우리금융 회장, 한동우 신한금융 회장, 김승유 하나금융 회장 등을 한자리에 불러모으기도 했다.
그러나 이미 은행들은 지난 2009년 국민·우리·신한·하나·기업·농협 등이 참여해 설립한 '유암코'를 두고 있다.
유암코는 금융사들로부터 부실채권(NPL)을 사들여 처분하는 민간 배드뱅크이다. 사실상 기능 측면에서는 PF배드뱅크와 다르지 않다.
여기에 금융당국이 기업구조조정 및 부실채권 정리업무를 담당하는 자산관리공사를 배제하면서 '만만한 게 은행이냐'라는 불만섞인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공적자금 투입에 따른 비난의 화살을 피하기 위해 시중은행들의 팔목을 비튼다는 지적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정부가 금융위기 때 투입한 공적자금을 이유로 사사건건 민간은행 경영에 간섭하고 있다"며 "PF 배드뱅크 설립추진에 따른 출자규모 때문에 한해 경영계획을 다시 짜야할 판"이라고 꼬집었다.
특히 대다수 은행들의 경우 PF대출에 대해 충분한 담보를 확보하고 있어 충당금 규모가 크지 않다는 점에서 실효성에 대한 의구심도 높은 상황이다.
PF배드뱅크 설립이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이다.
이에 앞서 추진된 예금보험료 '특별계정' 역시 저축은행 부도사태를 막기 위해 여타 금융사들을 '희생양'으로 삼은 사례로 꼽힌다.
금융당국은 시중은행을 비롯해 증권, 보험업계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업권별 예보료를 일부 갹출해 사실상 저축은행 계정을 보전해주는 데 합의를 이끌어낸 바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금융지주사 회장에 현 정부 '실세'로 채워지면서 경영자율성이 보장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지만 반대로 관치리스크가 심화되는 것 같다"며 "오히려 정부 출신이라 금융당국과 협조가 잘 이뤄지고 있다는 평가까지 나온다"고 말했다.
□ 규제 리스크로 은행주 '털썩' = 이같은 '관치 리스크'는 '대책반장' 김석동 위원장의 등장에서 이미 예견돼 왔다.
대책반장의 등장은 지지부진한 기업구조조정과 과도한 가계부채 해결을 위한 정부의 안전판 마련 의지와도 맥을 함께 하기 때문이다.
이같은 정부의 기대와 달리 김 위원장과 권 원장의 등장이 오히려 금융시장의 불안을 심화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올초까지 지속돼온 금융사 내분사태는 물론, 저축은행의 잇딴 영업정지, 초유의 농협 전산사태, 일부 건설사들의 법정관리행은 과거 2~3년간의 관리감독의 실패 뿐만 아니라 '시장 조율사'로서의 미숙함도 영향을 미쳤다는 지적이다.
특히 금융당국의 정책실패에서 비롯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민간금융사, 특히 대형 시중은행들을 희생양으로 삼는 행태가 반복될 경우 금융시장 발전은 물론, 국내 시장에서의 글로벌 플레이어 탄생도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겉으로는 국내 은행들의 해외진출을 적극 독려한다며 자율성을 보장해 주는 것처럼 떠들고 안으로는 은행 팔목을 비트는 이중적인 행태를 반복한다면 글로벌 은행 탄생은 묘연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같은 '관치 리스크'에 대한 우려는 국내 주식시장에서도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이달 들어 코스피는 사상최고치를 연일 갈아치우고 있지만 은행업종은 지난해 대비 오히려 큰폭의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증시 전문가들은 국내은행 실적이 올해 크게 개선될 것이라며 '비중확대' 보고서를 잇따라 내고 있지만 '공허한 메아리'가 되고 있다. 오히려 외국인 주주들의 이탈이 심화되며 외국인 일색이었던 최대주주가 국내 연기금으로 바뀌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특히 외환은행 인수를 앞두고있는 하나금융과 민영화를 앞둔 우리금융의 경우 금융당국의 불명확한 태도가 지속되며 하락폭이 두드러지고 있다.
실제 이날에도 1%대의 급등세로 사상최고치를 기록한 코스피지수와 달리 우리금융과 하나금융 주가는 2% 넘게 급락세를 보였다. 여타 은행주 역시 일제히 하락세를 나타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건설사들의 유동성 문제가 불거지면서 저축은행 부실 등을 모두 은행권이 안아야 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은행주의 발목을 잡고 있다"며 "정부규제로 인해 은행업종을 보지 말자는 극단적인 분위기도 만만찮다"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