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이 31일 전국 조사국장 회의를 통해 2012년 세무조사 운영방향을 확정했다. 중소기업과 서민 세무조사 부담은 완화하는 대신, 반사회적 탈세에는 엄정한 조사권을 행사하겠다는 것이 원칙이다.
'간판용' 원칙 속에 숨어 있는 국세청의 진짜 세무조사 운영원칙은 '양(兩)보다 질(質)'을 중시한 세무조사 행정으로 집약된다.
현실적 여건을 감안하더라도 세무조사의 총량을 늘려 잡기 힘든 형편이다.
일단 올해는 총선과 대선이 연달아 예정되어 있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해다. 전통적으로 국세청은 선거철에는 세무조사의 양과 강도를 하향조정해 왔다.
정치적 여건도 여건이지만 무엇보다 경제사정이 여의치 않고 민생의 불안도 여전하다. 행정력의 소요량도 감안해야 한다.
그렇다고 '노력세수' 창출점인 세무조사 행정의 고삐를 느슨하게 잡을 수는 없다.
양보다 질에 무게중심을 설정하는 것은 당연한 '선택'인 셈이다.
□ "세무조사 총량 묶고 '민생' 돌본다" = 지난 2010년 국세청은 1만8156건의 세무조사를 실시했다. 지난해에도 1만8110건의 세무조사를 진행했다. 올해도 국세청은 이 정도 수준(1만8000건)으로 세무조사 총량을 묶는다는 방침이다.
세무조사 총량에 일정한 제한선을 설정하는 대신 국세청은 세무조사의 질을 높여 총량 제한에 따른 부족분을 메운다는 계획.
특히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는 대(大)납세자를 비롯해 국민들에게 박탈감을 안겨주는 고의적·지능적 탈세자 색출에 조사역량을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연매출액 100억원 이하 중소법인들에 대한 세무조사 혜택(정기 조사대상 선정 원칙적 제외 등) 부여 등은 경제불안으로 인해 고통받는 민생안정 차원의 선택으로 풀이된다.
서민밀접 생필품 취급 사업자 중 탈세 혐의가 짙은 이들에 대한 전국 단위 기획조사의 연중 실시 또한 민생안정에 기여할 수 있는 국세청의 '몫'을 해 내겠다는 의지의 일환이다.
□ "세무조사의 '질'로 승부한다" = 세무조사의 강도를 높이는 것은 여러 여건을 감안할 때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포인트를 짚어내는, 세무조사의 질적 제고를 통해 사실상의 세무조사 강화 효과를 거둔 다는 것이 국세청의 복안.
연매출 5000억원 이상 대법인 조사주기를 5년(현행 4년)으로 늘리는 대신, 조사대상 연도를 3개년(현행 2년)으로 늘리고 거래처와 관련기업, 관련인에 대한 동시조사 확대 배경에도 이 같은 국세청의 복안이 깔려 있다.
중소법인 조사축소로 발생하는 여유인력을 연매출액 500억원 이상 법인 세무조사에 투입하는 방안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중견기업으로 분류되는 이들 기업의 세원투명성이 대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다는 것은 일반화된 사실이다.
국세청이 지난 2010년 15.7%, 2011년 18.0% 등 이들 법인에 대한 조사비율을 끌어올린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아울러 국세청은 주식·부동산 부자 등 대재산가에 대한 세원관리도 대폭 강화해 이들의 탈법행위를 감독할 계획이다. 대재산가 본인은 물론 주변인물 및 사업체의 소득·재산 변동내역을 통합관리하면서 이들의 탈선을 사후에라도 잡아내겠다는 것이다.
세부담 없는 경영권 승계 차단을 위해 매출액 1조원 이상 주요 그룹법인에 대한 주식변동조사를 강화한다는 부분도 주목할 부분이다.
□ FTA발효 대비, 사전적 '위험관리' 나선다 = 세무조사 운영방향 확정일과 동시에 주류 수입업체, 기호음료 유통업체, 육류 유통업체 등 FTA 수혜 업체들에 대한 전격적인 세무조사에 나선 대목도 관심이 가는 대목이다.
수 년 전부터 FTA 관세 수혜에도 불구, 가격이 떨어지지 않거나 오히려 오르는 등 칠레산 와인 수입 및 판매 업체들에 대한 '경고음'이 울린 바 있다.
이들은 특히 물량조절 등으로 폭리를 취하면서 세금을 탈루했다는 것이 국세청의 판단이다.
이는 내달 발효를 목표로 하고 있는 한·미 FTA에 대비한 사전적 위험관리 측면으로 해석해 볼 수 있는 부분. 관세인하로 인한 혜택을 제 주머니 채우는데 악용하는 악덕 사업자들에 대한 강력한 경고메시지로 풀이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