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에 부는 '전운'…이제부터 '진검 승부'

경기둔화 속 4대 금융지주체제 변화 불가피

지난해 사상 최대의 실적을 거둔 금융권이지만 앞으로의 성장을 결코 안심할 수 없다는 분위기다.

현재 금융권은 구조조정 등 몸집 줄이기에 적극 나서는 한편, 미래의 먹거리를 찾기 위한 M&A 추진 등에도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 유럽 재정위기 악화 여파로 세계적으로 경기침체가 장기화 조짐을 보이면서 고물가, 가계부채 급증, 수출둔화 등의 후폭풍이 금융권에 위기감을 심어 준 것.  

금융전문가들은 국내 시장이 이미 포화상태에 이르렀다고 진단한다.

실제 실질소득의 감소와 일자리 부족, 사회보험료와 주거비 상승, 저금리 기조 지속 등으로 인해 가계저축률은 급감하고 있고, 경제활동인구 1인당 신용카드도 4.8장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다. 공격적인 영업을 통해 신규 고객을 늘리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은행권에서 부는 보험사나 저축은행 M&A 추진, 증권사의 IB경쟁 등도 모두 절박한 생존경쟁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선택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에 조세일보에서는 올 한 해 뜨겁게 금융시장을 달구며 경쟁을 펼칠 업권별 향방에 대해 집중 분석해 봤다.  <편집자 주>

■ 예고된 진검승부-4대 금융 '혈전' = 은행권의 진검승부는 이제부터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하나금융지주의 한국외환은행 인수로 인해 은행권의 경쟁구도는 말 그대로 '초박빙'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은행의 당기순이익(대손준비금 전입 후)은 12조원으로 전년(9.3조원) 대비 2.7조원 증가하며 오랜만에 은행권에는 '웃음꽃'이 활짝 폈다.

최근 발표된 4대 금융지주의 실적을 보면 신한금융이 지난해 3조1000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거두며 금융권 사상 처음으로 순익 3조원 시대를 열었다.

뒤를 이어 KB금융(2조3730억원), 우리금융(2조1561억원), 하나금융(1조2280억원)이 역대 최고의 호실적으로 지난해 금융권 최대 호황을 이끌었다.

지난해 은행들의 당기순이익만을 놓고 비교하면 신한은행이 2조1184억원으로 1위를 차지했고, 뒤를 이어 우리은행(2조685억원), 국민은행(2조465억원), 하나은행(1조2118억)의 순으로 '3강 1약' 체제의 모습이 두드러진다.

하지만 이 같은 4대 금융지주체제의 기존 질서에 일대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지난해 1조7245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한 외환은행과 하나은행의 실적을 합치면 2조9363억원을 기록하며 순이익 측면에서는 오히려 신한은행을 앞지른다.

자산 규모면에서도 2위로 뛰어오른다. 지난해 9월 말 현재 주요 금융지주사의 총자산(고유계정+신탁계정) 규모는 우리금융이 372조4000억원으로 1위이고, KB금융이 363조6000억원이지만 하나금융에 외환은행을 합치면 366조5000억원으로 단숨에 2위로 올라선다. 총대출금(167조4000억원)과 지점규모(1012개)도 2위로 순위가 껑충 뛰어올랐다.

이 같은 4대 금융지주의 순위 변화로 인해 3위권으로 추락한 KB금융지주의 경우 위기 의식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에 KB금융은 지주사 중 은행에 순이익 90% 이상 편중된 현재 사업포트폴리오의 전면 수정을 고민하고 있다. 자사주 매각으로만 1조8000억원을 쌓아 두었기 때문에 금융사를 인수하는 데 따른 실탄도 두둑한 편이다.

금융권에서는 KB금융이 지나치게 은행쪽에 편중된 사업포트폴리오의 개선을 위해 무리하게 은행쪽 인수를 고집하기 보다는 보험이나 증권쪽의 매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실제 어윤대 KB금융 회장은 ING생명에 대한 인수의사를 적극 밝힌 바 있고, 시장에선 실현 가능성도 높다고 분석하고 있다. 어 회장은 동양생명이나 우리금융의 증권부문에 대한 욕심도 내비추고 있지만 실현 여부는 미지수다. 

새해 들어 발걸음이 바빠진 것은 우리금융도 매한가지다. 경쟁력 강화 측면에서 의욕적으로 추진한 매트릭스 체제가 노조에, 카드분사가 금융당국에 발목이 잡히며 마음이 급해지고 있다.

우리금융의 올해 당면과제는 10년째 매듭을 풀지 못한 민영화다. 하지만 독자생존에 무게를 두고 있는 우리금융은 자산 클린화와 사업 경쟁력 확보를 통해 자립생존의 불가피성을 시장에 알려야 하는 과제를 풀어야 한다.

이에 우리금융은 올해 우선 '자산 클린화'를 추진해 부실자산을 털어낸다는 목표를 두고 있다. 우리금융은 지난 2008년부터 4년간 9조7622억원의 대손비용을 부담하는 등 부실자산과의 사투를 벌여 왔는데, 늘 부실자산 때문에 대외적인 평가에서도 저평가를 받고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사업경쟁력 확보를 위해 추진하고 있는 매트릭스 체제 도입도 현재 태스크포스(T/F)팀을 통해 진행해 나가고 있다. 오는 4월경 구체적인 윤곽을 제시한다는 계획인데 우리은행 노조 등의 반발이 만만치 않아 상당한 진통이 예상되고 있다.

외환은행이라는 든든한 지원군을 얻은 하나금융은 향후 5년간 투뱅크 체제를 유지할 계획이어서 당장의 시너지 효과는 크지 않을 전망이다.

하지만 ATM 등을 공동으로 사용하고 IT부문의 협력을 강화하는 부분은 즉각적인 실행이 가능하다. 하나SK카드와 외환카드의 가맹점 공유도 영업력에 탄력을 붙일 수 있다. 

무엇보다 매력적인 부분은 양 은행을 합쳐 현재 22개국에 퍼져 있는 해외 점포망이다.

하나금융은 지난 10일 미국 LA 소재 동포은행인 새한은행의 지분을 51% 인수한 바 있는데 외환은행의 인지도를 활용해 무너진 미국 지점망을 재건한다는 목표도 세우고 있다.

신한금융은 1위 수성을 위해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 나서고 있다. 특히 신한은행의 경우 지난 1일 경영전략회의를 통해 올해 전략목표로 '껍데기를 벗다'는 의미의 '탈각'(脫殼)을 제시한 바 있다.

올해 경기둔화 장기화 가능성이 상존하고 규제환경 변화 및 권역을 넘어선 경쟁격화로 자산성장과 수익성 확보가 제한적이라는 판단에 새로운 성장 모형 구축을 모색하고 나선 것이다.

■ 우량고객 자산관리 등 틈새시장 국지전 치열 = 4대 금융지주는 특히 우량 고객을 대상으로 자산관리 등 틈새시장에서 치열한 국지전을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신한금융은 이른바 신한형 매트릭스 체제를 통해 기업금융과 자산관리 부문의 시너지를 극대화한다는 방침이다.

업무의 효율성을 위해 기업금융과 자산관리 부문장을 운영하지만 이들에게 인사권 등 막대한 권한까지 부여하지는 않고, 은행 CEO 밑에서 지시를 받도록 해 업무 효율성은 높이지만 조직의 이질감은 최소화하겠다는 전략이다.  

신한금융은 지난해 12월 13일 서울시 중구 남대문로 소재 대한상공 회의소 9층에 '신한 PWM(Private Wealth Management) 서울센터' 1호점을 열고 영업을 시작했다.

신한PWM 서울센터는 기업오너나 초고액자산가 고객들을 대상으로 가업승계나 재산상속, 증여 등과 같은 종합자산관리 업무를 전담하게 된다.

이는 한동우 신한금융 회장이 지난해 초 취임 직후 밝힌 '그룹 차원의 새로운 자산관리 서비스'의 신호탄으로 여겨지고 있다.

국민은행은 지난해 우량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자산관리 서비스를 강화하기 위해 WM(자산관리) 사업부를 WM사업부와 PB(프라이빗뱅킹)사업부로 분리한 바 있다.

이를 통해 WM사업부가 일반 영업점의 VIP 고객을 위한 자산관리 서비스를 총괄하고, PB사업부는 전국 각지의 PB센터를 직접 관리하면서 영업효율성을 제고하겠다는 것이다.

전통적은 PB 부문에서 강점을 보여온 하나은행도 부유층 공략 강화도 눈길을 끈다.

하나은행은 지난해 서울 삼성동 K타워에 초대형 PB센터인 '강남PB센터'를 오픈하며 을지로 하나은행 본점 내 '영업1부골드클럽'과 함께 강남과 강북지역에 전열을 재정비해 역량을 쏟아붓겠다는 계획이다.   

기존 신한은행과 국민은행이 점하고 있던 골드뱅킹 시장도 우리은행이 뛰어들며 본격적인 3파전이 치열하게 펼쳐지게 됐다.

우리은행은 지난해 8월 골드뱅킹 인가 후, 금값이 급격한 하락세를 보이는 등 변동성이 크게 확대되자 골드뱅킹 상품 출시 시기를 줄곧 미뤄왔으나 최근 금값이 안정되자 잇따라 관련 상품을 내놓으며 선전 포고를 한 상태다.

이처럼 은행권들이 고액자산가들을 타깃으로 한 국지전을 치열하게 벌이는 이유는 이른바 부자고객들의 뭉칫돈을 적극 끌여들여 수익기반을 다지겠다는 복안으로 풀이된다.

■ 금융시장 또 다른 변화 축·농협과 산은 = 신경분리를 통해 금융지주사 출범을 하게 되는 농협과 공공기관의 짐을 벗고 연내 기업공개(IPO)와 함께 민영화를 추진할 산은금융지주도 올 한해 지켜봐야 할 금융권 지각변동의 한 축이다.

오는 3월 2일 본격출범하는 농협금융지주는 금융권에 또 하나의 '금융 공룡'의 등장을 예고하고 있다.

농협금융지주는 4개 본부 8개 부서 체제로 운영되며 은행과 생명보험, 손해보험, 투자증권 등 7개 자회사를 둔다.

조직개편 후 농협의 전체 직원 수는 1097명이 늘어나 2만92명에 달하게 된다. 특히 보험인력 670명을 확충하는 금융지주는 1만4700명으로 전체 인력의 70%를 차지하게 된다.

지난해 9월 말 기준으로 봤을 때 농협금융지주의 자산규모는 366조원대의 하나금융에 이어 5위. 하지만 전국적인 튼튼한 지역망을 가지고 있는 농협금융지주의 등장은 업계에 긴장감을 불어넣기에 충분하다. 

지난 15일 농협중앙회는  올해 역대 최대 규모인 총 1340명의 신규직원을 채용키로 해 눈길을 끈 바 있다. 상반기에 690명(은행, IT, 보험분야)의 직원을 채용하고, 하반기에도 이에 버금가는 직원들을 수급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신경분리를 완수하기 위해 소요되는 막대한 비용 감당은 농협금융지주의 안착을 어렵게 하는 요소로 꼽고 있다.

농협의 신경 분리를 위해서는 약 27조원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현재 농협이 보유한 자본금은 15조원으로, 12조원이 더 필요한 상황이다. 정부에서 지원키로 한 5조원을 고려하더라도 막대한 출혈이 불가피하다는 소리다.

하지만 역으로 농협이 이 같은 수혈을 만회하기 위해서는 공격적인 경영이 필수적이란 측면에서 시장에 미칠 반향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최근 정부 공공기관에서 해제된 산은금융지주·한국산업은행도 올 4분기 중 기업공개(IPO)를 하고, 정부 지분 중 10%를 민간에 매각키로 하는 등 민영화를 위한 잰걸음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산은의 경우 HSBC 서울지점 소매금융부문 인수에 나서는 한편 M&A 등을 통해 57개에 불과한 지점을 200여개로 늘려 예수금 확대에 나선다는 입장이다.

산은이 민영화를 위해서는 경쟁 은행들에 비해 열세인 수신기반 확대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향후 M&A 시장에서 보여줄 산은의 행보에 전체 금융권이 잔뜩 긴장하는 모양새다.

산은은 산업은행법에 따라 오는 2014년까지 민간에 지분을 매각해 민영화를 시작해야 한다는 중압감이 있다. 

해당 은행들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산은에 의한 한국SC은행, 우리금융, 기업은행 등에 대한 M&A 추진 소문이 끊임없이 금융권에 떠돌고 있는 것도 이 같은 산은의 절실함에서 출발한다. 

시중은행의 한 고위 관계자는 "경기둔화가 예상되는 올해 은행들 간 전면전은 힘들더라도 치열한 국지전이 예상된다"며 "사실상 시장이 포화 상태에 이른 점을 고려할 때 타 금융사의 영토를 빼앗아 와야 하는 생존게임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