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를 '경제검찰'로 불리게 하는 권한인 '전속고발권' 존폐논의가 최근 또 다시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르내리고 있다.
전속고발권이란 담합 등 주요 공정거래법 위반사건에 대해 공정위가 후속 검찰 고발조치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의미한다.
담합사건에 연루된 피해자나 단체 등이 공정위의 결정 이후 추가적인 소를 청구할 없다는 측면에서, 사실상 공정거래법 위반사건에 대한 기소권을 독점하고 있는 형태라고 볼 수 있다.
이에 따라 주요 경제사건이 터질 때마다 정치권으로부터 매년 개선압박을 받아왔던 부분이었다.
특히 대기업들 사이에 거대 담합사건이 밝혀졌음에도 관련 매출액과 비교하면 상당히 미미한 수준의 과징금 처분 등 솜방망이 처벌에 그칠 때마다 폐지 논란이 불거져 왔다.
하지만 최근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그 어느 때보다 전속고발권 폐지론의 파급효과가 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여·야를 불문하고 대선용 카드인 경제민주화 정책과 맞물려 '제도 폐지'를 외치고 있기 때문이다. 여권에선 유력한 대권후보인 박근혜 의원의 대변인을 지낸 김재원 의원이 앞장서서 제도 폐지론을 주장하고 나섰다.
특이한 점은 김 의원이 지난 현대건설 등 19개 대형건설사들이 연루된 4대강 1차 공구 턴키공사 발주 담합 사건에 대한 공정위의 과징금조치가 나오면서부터 강력하게 제도 폐지론을 들고 나왔다는 것.
민주당도 이날 경제민주화 실현을 위한 9대 입법 가운데 하나로 담합 등 중요 경제사건에 대한 공정위 전속고발권 폐지안을 들고 나왔다.
여야가 경쟁적으로 폐지 입법안을 들고 나오는 상황이다.
실제로 이미 김 의원은 전속고발권 폐지를 골자로 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입법발의 한 상태이며, 민주당 또한 공식당론으로 채택한 만큼 조만간 개정안을 발의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
국민 여론도 만만치 않다.
특히 최근에는 서민 생활필수품이나 마찬가지인 유류, 라면, 우유, 휴대폰, TV 가격 등을 비롯해 보험 상품 등 서비스상품까지 업계 간 담합 정황이 연이어 드러나면서 소비자들에 대한 실질적인 피해구제를 위해 전속고발권 제도를 재조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기업 담합으로 인해 피해를 보는 주체는 국민들 개개인임에도 불구, 공정위가 불법행위로 규정해 거둬들인 과징금은 결국 국고에 귀속되기 때문에 피해 당사자들에 대한 구제 차원에서 전속고발권 제도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공정위는 경쟁제한성을 입증해야 하는 공정거래사건의 특성, 과도한 형사 처벌로 인한 기업 활동 위축, 리니언시(자진신고자 감면제도)제도의 실효성 저하 등을 이유로 여전히 전속고발권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공정위 정중원 경쟁정책국장은 "전속고발제도를 폐지할 경우에는 검찰이 자유롭게 기소 가능하기 때문에 자진신고제가 유명무실해질 우려가 있다"며 "공정위 행정조사와 검·경 수사의 성격이 달라 증거자료 공유, 조사방향 협조 등 유기적 협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검찰의 대대적인 압수수색 이후에는 임의조사인 공정위 조사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해질 가능성이 있다"며 전속고발권 유지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그러나 공정위가 한 가지 간과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
아무리 공정위 내부적으로 신뢰할만한 통계와 다양한 논거를 대더라도 실제 국민들이 공정위의 법 집행 결과를 공정하지 못하다고 체감하고 있다면 '소귀에 경 읽기'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기업들의 영업활동을 유지하고 보호해주는 역할도 중요하지만, 담합 등 주요 경제사건에 대해서는 단호해질 필요가 있다. 미국처럼 담합기업은 아예 시장에 뿌리내리지 못하게끔 강력한 제재조치를 통해 "담합을 다시해선 안되겠다"는 인식을 시장에 심어줄 필요가 있는 것이다.
여타 기관들이 보유한 전속고발권보다 공정위의 전속고발권한은 그 폭이 상당히 광범위하다. 적어도 공정거래법에 있어선 검찰 기소권과 다를게 없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 이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과거와 한 글자로 다르지 않는 전속고발권 대책과 개선방안을 되풀이 하는 공정위의 대응은 조금은 걱정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그렇다고 완전히 공정위도 이 문제에 대해 손을 놓고 있는 것만은 아닌 듯 하다. 공정위는 민간 법학자와 경제학자들에게 전속고발권 제도와 관련된 연구용역을 맡긴 상태라고 한다. 내달 말 그 결과가 공개될 예정이다.
그때까지 기다려봐야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당분간 어떤 전환점이 될 만한 사건이나 공정위 스스로가 마련한 실질적인 개선대책이 추가로 나오지 않는 이상 전속고발권 폐지논의는 지속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