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에서 선거철만 되면 유권자들의 표심을 의식해서 무차별적으로 조세원리를 무시하는 세제를 창설하거나 납세환경을 나쁘게 하는 세법 개정을 하는 경향이 올해도 예외는 아닌 듯하다. 그동안의 사례를 보면 저소득자의 표심을 자극하기 위하여 극소수의 납세자에게 부과하는 종합부동산세의 도입이나 절반에 가까운 근로자에게는 자기의 소득과 관련된 세금을 한푼도 물리지 않게 하는 근로소득자의 면세점 인상, 영세사업자의 표심을 자극하기 위한 간이과세제도의 확대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부가가치세는 원래 각 사업자 단계에서 발생된 부가가치에 대해 사업자가 세금을 부담하지만 최종소비자에게 전가될 것을 예상하고 설계된 일반소비세이다. 그런데 영세사업자의 납세편의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도입된 간이과세제도는 세금계산서 발행의무를 면제하는 등의 방법으로 납세의무이행이 간편하고 세금부담도 거의 없도록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간이과세제도는 연간 매출 4800만원 이하의 사업자에게 적용되기 때문에 영세사업자를 빙자한 일부의 사업자는 간이과세제도를 적용받기 위해 세금계산서 교부받는 것을 기피하는 등의 탈법적인 꼼수로 간이과세자로 머무르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변칙적인 방법은 상대방 사업자에게도 악영향을 끼쳐서 성실한 납세의무이행을 어렵게 하게 되어 부가가치세제의 근간을 뒤흔들고 있다.
이러한 점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에서는 투명한 납세환경을 조성하여 성실납세를 유도하기 위하여 사업자에게 기장의무를 확대하는 등의 방법으로 그 적용 대상을 꾸준히 축소하는 노력을 기울여왔다. 그러나 과거에 대통령선거를 앞둔 시점에 소규모 영세사업자의 납세편의를 도모한다는 명분으로 기존에 시행하던 과세특례제도와는 별도로 간이과세제도를 새로 도입하였고, 이러한 특례제도의 시행으로 정부가 지속적으로 투명한 납세환경을 조성하려던 노력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었으며, 아직까지도 부가가치세제를 정상화하는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다행히도 오랫동안 개인사업자의 절반이 넘는 사업자가 간이과세제도의 특례제도의 적용을 받았던 것이 지난 2010년부터는 40% 이하로 내려가는 개선이 있어 다행스럽게 생각된다. 그런데 최근에 정치권에서는 사업자에게 불성실한 납세환경을 조성하였던 간이과세제도에 대해 영세사업자들의 세부담을 줄여주겠다는 명분으로 또다시 간이과세 제도의 기준금액을 연간 매출 1억원으로 상향조정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선거철만 되면 유권자들의 표심을 얻기 위한 세제개혁이라고 하지만 최소한 공정과 효율이라는 조세원리는 지켜져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는 빈부격차에 대한 불만의 해소와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복지재원을 마련하기 위해서 부자증세를 요구하는 분위기에 있고, 일부의 사업자에게 적용되는 간이과세제도에 대해서도 뜻있는 학자들과 일부 정치권에서는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1977년 부가가치세가 도입된 이래 납세환경은 크게 개선되어 영세한 사업자라도 신용카드 및 현금영수증 발행의무를 이행하고 있고, 이런 사업자가 세금계산서를 발행하는 데도 아무런 지장이 없을 만큼 납세의식이 향상되었다. 모든 사업자가 성실하게 납세의무를 이행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변칙적인 방법으로 거래질서를 훼손하는 간이과세제도와 같은 특례제도는 폐지하는 것이 마땅하다. 다만, 영세사업자가 급격하게 납부세액이 증가하는 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한계세액공제와 같은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국민이 능력에 맞게 납세의무를 이행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사업자의 수입금액을 양성화할 수 있는 납세환경을 조성하는 세법 개정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김완일 세무사(기획재정부 세발심위원, 한양대 겸임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