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검찰'을 자부하던 공정거래위원회가 최근 각종 악재에 시달리며 뒤숭숭한 분위기다.
최근 CD금리 담합사건을 조사하겠다며 금융권 전체에 풍파를 일으킨 자신감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진 상태다.
4대강 1차 턴키공사 부실조사 및 솜방망이 처벌의혹에 따라 검찰로부터 조사를 받게 되는 기구한 상황에 처한 것도 모자라, 최근에는 처벌을 자신했던 라면담합 사건과 관련해서도 업계의 반발에 직면한 상황이다.
□ "이대로 끝나지 않아"…檢, 4대강 담합 전면 재수사 = 공정위는 지난 6월 끝난 4대강 턴키공사 사건과 관련해 한바탕 홍역을 치르고 있다.
검찰이 공정위 전속고발권과 관계없이 건설산업법 위반사항을 근거로 관련 업체들에 대한 전면전인 재수사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솜방망이' 처벌 논란의 중심에 섰던 공정위도 검찰의 주요 수사 타깃이 됐다.
경제검찰이 검찰의 수사대상이 된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된 셈.
16일 공정위 등에 따르면 검찰은 지난 7월 초 4대강 턴키공사 담합사건을 담당했던 공정위 카르텔조사국을 전격 압수수색, 관련 조사 자료를 증거로 회수해 간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위에 검찰 압수수색이 단행된 것은 공정위 설립 이후 최초인 것으로 전해졌다.
사실상 이번 검찰 수사는 공정위 스스로가 불러일으켰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지난 6월 공정위 전원회의의 4대강 담합사건 심결 이후 정치권은 물론 언론, 시민단체들은 솜방망이 처벌 의혹을 끊임없이 제기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당초 공정위 조사국의 심사보고서와 전원회의의 최종 결정은 확연하게 차이가 났다. 당초 12개 건설사에게 담합혐의가 적용돼 1900억원 상당의 과징금이 부과됐지만, 최종적으로는 8개 건설업체에 과징금 총 1115억원이 부과된데 그쳤으며, 일부 건설사는 무혐의 처분을 받기도 했다.
더 큰 문제는 전원회의 결과 검찰고발 업체가 전무(全無)해 졌다는 사실이다. 당초 공정위 조사국은 현대건설 등 6개 건설사에게 검찰고발 처분을 요청했지만, 최종심결과정에서 없던 일이 됐다. 공정위 조사국 논리보다는 건설사 해명부분에 힘을 실어준 셈.
당시 공정위는 "전원회의 합의에 따라 처리했다"는 원론적 수준의 입장만 밝혔을 뿐, 사건의 중대성을 고려해 검찰 고발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향후 검찰 수사과정에서 공정위 조사과정이 투명했냐는 부분도 조명될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직접 적인 조사대상이 될 수도 있는 공정위 관계자들은 뒤숭숭한 분위기 속에서 가급적 말을 아끼고 있다.
공정위 고위 관계자는 "공정위가 처리한 사건에 대해 검찰이 직접조사에 나선 것은 처음이고 압수수색도 처음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향후 사건처리 과정을 지켜볼 수밖에 없지 않냐"고 말했다.
□ 라면업계의 반격…줄 소송 이어져 = 공정위가 농심, 삼양식품 등 라면 4개사에 라면가격 담합혐의를 적용해 과징금을 부과한 사건도 최근 조짐이 심상치 않다.
공정위로부터 담합 주도자로 지목된 농심을 중심으로 한국야쿠르크, 오뚜기 등 과징금을 부과 받은 업체들 모두 행정처분을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며 줄줄이 소송을 제기하고 있다.
공정위는 지난 3월 농심, 삼양식품, 오뚜기, 한국야쿠르트 등 4개사가 지난 2001~2010년 사이 6차례 가격정보를 공유하면서 라면 가격을 담합했다며 136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담합 대상자로 지목된 업체는 농심, 공정위는 조사결과 발표 당시 시장점유율 70%를 차지하는 농심이 기준가격을 제시하면 나머지 업체들이 이후 가격을 순차적으로 따라서 올리는 신종 유형의 담합을 시도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시장점유율 1위 업체인 농심에 전체 과징금의 80%에 육박하는 1080억7000만원의 과징금이 부과됐으며, 삼양식품 120억6000만원, 오뚜기 98억원, 한국야쿠르트 62억원 등이 부과됐다.
리니언시(자진신고자감면제도) 1순위 업체인 삼양식품은 과징금을 부과 받지 않았지만, 농심을 필두로 거액의 과징금을 물게 된 업체들은 공정위 처분의 부당성을 주장하면서 소송을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농심이 지난 14일 서울고법에 과징금 취소 청구소송을 제기한데 이어 오뚜기, 한국야쿠르트 등 과징금을 받게된 업체들도 소송에 동참하고 있다.
업계 일각에서는 라면 가격에 관계당국(농식품부)의 입김이 작용하기 때문에 쉽사리 가격을 바꿀 수 없는 구조라서 담합혐의를 적용시키는 것은 무리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소송이 장기전으로 치 닫을 가능성이 농후한 상황.
공정위는 신중한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소송 결과에 대해서는 자신감을 나타내고 있다.
담합사건과 관련해 업계 소송이 특별한 일은 아니고, 특히 이번 라면 담합사건은 명백한 증거를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개별적으로 가격을 올리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지만, 문제는 관련 업체들이 마치 하나의 회사처럼 가격을 결정했다는 것"이라며 "예컨대 신제품의 컨셉, 규격은 물론 광고와 판매물량까지도 의논했다. 담합 정황이 명백한 사건"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2008년부터 시작해 조사기간도 길었고 관련 증거도 충분히 확보한 만큼 소송과정에서 보다 정확히 판명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