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지난 5일 사격50M 권총 결승전 승리를 TV로 보며 기뻐하고 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횡령·배임 등의 혐의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되자 재계가 초긴장 상태다.
재계는 19대 국회들어 '재벌총수의 배임과 횡령 등 경제범죄에 대해 집행유예 금지'를 골자로 '경제민주화 1호 법안'이 발의된 가운데 재벌총수에 대한 집행유예 관행이 더 이상 적용되지 않을 수도 있어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김 회장은 법정의 선처를 받기 위해 남다른 노력을 기울여 왔다. 평소 대한민국 사격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김 회장은 런던 올림픽 진종오 선수의 50m 권총 결승전을 TV로 보고, 변경수 감독과 진 선수에게 전화를 걸어 노고를 치하하며 국위를 선양하는 일에 힘썼다.
또 해외시장 개척에도 발벗고 나섰다. 김 회장은 지난 7월말 이라크 비스마야 신도시 계약과 관련해 누리카밀 알-말리키(Nouri Kamil Al-Maliki) 이라크 총리 요청을 받고 이라크 전후 복구 사업 수주를 위해 현지를 방문해 진두지휘하는 모습도 보여줬다. 하지만 법정은 김 회장의 이 같은 노력에 대해 아무런 가산점을 주지 않았다.
재계는 지난 2월 이호진 태광그룹 회장이 1심에서 징역 4년6개월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된데 이어 이날 김 회장의 법정구속이라는 소식을 접하고 경악하는 모습이다. 최근의 정치권과 사회 분위기 탓에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한채 사태의 흐름만을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재계는 앞으로 재판을 앞둔 다른 기업 총수들에 대한 법원의 결정을 한치 앞도 가늠할 수 없기 때문에 더욱 초조해하고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 선종구 전 하이마트 회장 등 비슷한 혐의로 기소된 대기업 총수들도 김 회장과 같이 실형 선고를 받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 목소리 낮춘 재계... “경제도 어려운데 기업인 법정구속은 유감”
그동안 재계의 입장을 적극 반영해온 전국경제인연합회는 김 회장에 대한 법정 구속 조치에 대해 “경제도 어려운데 기업인을 법정구속한 것은 유감”이라는 짤막한 성명만을 내놓았다.
재계 총수를 법정 구속한다는 충격을 감안하면 전경련이 적극적인 입장을 내놓을 법도 하지만, 정치권이 대선모드에 돌입하고 여야 구분 없이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을 한 목소리로 외치고 있어 한계를 느낀듯하다.
더구나 사회분위기도 경제민주화 움직임 등으로 재벌에 대해 견제하는 여론이 우세해 재계가 재판부의 결정에 강하게 반발할 경우 국민들로부터 역풍을 맞을 수도 있어 위축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재계는 김 회장에 대한 재판결과가 앞으로 진행될 대기업 회장들의 재판에 바로미터로 작용할 수 있다는데 대해 불안감을 보이고 있다.
최태원 회장과 최재원 부회장이 계열사 펀드자금을 횡령한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는 SK그룹은 물론, 횡령·배임 등과 관련 박찬구 회장의 심리를 앞둔 금호석유화학도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는 처지이다.
그동안 대기업 회장의 불법행위에 대한 재판부의 판결은 대부분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으로 관용을 베푸는 것을 관행으로 삼아왔다. 그러나 이같은 관례가 잇따라 깨지자 재계는 “경제민주화 바람으로 드디어 올 것이 왔다”며 당혹스러운 표정이다.
■ 재벌총수 ‘사회공헌=집행유예'은 옛말
재벌총수들은 그동안 징역형을 선고 받아도 대부분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다. 또한 일정 기간이 지나면 특별사면이 뒤따르곤 했다.
지난 2008년 삼성 비자금 재판에서 이건희 삼성 회장은 1100억원대의 탈세와 배임혐의가 유죄로 인정됐음에도 징역 3년과 집행유예를 선고 받은 뒤 2009년말 특별사면을 받았다.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은 지난 2006년 약 700억원의 횡령과 1000억원대 비자금 조성에도 불구하고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받은 뒤 불과 73일만에 특별사면됐다.
재벌 총수들은 집행유예 판결을 받는 대신 기부활동과 사회공헌활동으로 죄값을 치렀다. 재벌총수들의 이같은 노력은 국민감정을 어느 정도 순화시킨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최근의 상황은 달라진 듯하다. 이번 김 회장의 구속으로 '재벌총수=집행유예'라는 등식을 깨는 선례가 될지 재계는 더욱 긴장할 수 밖에 없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가뜩이나 경제환경이 어려운 상황에서 이번 판결로 인해 경영인들의 사기가 더욱 위축될 수 있다" 며 이로 인해 경제가 더욱 어려워질 것을 우려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