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는 2012년 7월 현재 자산총액 154조원을 보유한 국내 4위의 재벌그룹사에 걸맞게 기아자동차를 비롯해 현대제철, 현대건설, 현대캐피탈, 현대카드 등 56개에 달하는 굵직하면서도 광범위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계열사마다 5년 주기로 정기 세무조사가 이뤄지는 것을 감안하면, 현대차그룹은 연중 세무조사를 받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현대차 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기아자동차에 대한 세무조사가 지난 4월부터 이뤄지고 있으며, 계열 부품제작사인 현대위아와 현대다이모스에도 지난 3월과 5월 국세청 세무조사가 시작됐다.
계열사 숫자가 많은 다른 그룹이라면 세무조사는 특별한 일이 아닌 그저 일상에 불과한 일이 되고 있지만, 국세청 세무조사와 현대자동차그룹을 연결하면 완전히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 정치적 악연에서 비롯된 현대차 세무조사 '흑역사(黑歷史)'
현대차그룹은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 유독 세무조사와 관련해선 '악연(惡緣)'을 맺고 있었다. 시작은 故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정치활동이 빌미가 됐다.
노태우 정부 말기, 故정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6공화국의 역점사업이었던 경부고속철 건설을 반대하는 등 정권의 심기를 끊임없이 불편케 했다.
노태우 정부는 故정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은밀히 대선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도 인지하고 있었던 상황. 다급해진 노태우 정부는 현대그룹을 '손' 보기 위해 국세청을 동원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재벌의 소유 분산과 부의 세습을 막겠다"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워 故 정 명예회장의 일가친척은 물론 현대그룹에 당시로서는 천문학적 금액인 1361억원의 세금을 추징했다.
당시 현대정공회장으로 재직하고 있던, 정몽구 現현대차그룹 회장도 400억원이 넘는 세금을 두들겨 맞았다. 당시 국세청은 이례적으로 세무조사 결과를 대내외에 공개, 정치보복성 세무조사라는 세간의 의혹을 불식시키기 위한 '물타기'를 시도하기도 했다.
1992년 대선에 출마한 故정 명예회장은 민자당 대선후보였던 김영삼 前대통령과도 사사건건 대립했다. 군사정부와는 차별화 된 문민정부를 표방한 김 前대통령도 집권 후 정치보복성이 짙은 세무조사를 통해 현대그룹을 다스린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적다.
특히 현재는 별개 그룹사로 묶여 있지만, 1993년 당시 현대그룹의 계열사였던 현대상선에 대한 고강도 세무조사를 통해 당시 현대상선 부회장으로 재직하고 있던 故정 명예회장의 5남, 故정몽헌 前현대아산 회장이 구속되기도 했다.
2000년 3월, 와병 중이던 故정 명예회장이 5남인 故정몽헌 前현대아산 회장을 후계자로 낙점한 것을 기화로 이른바 '왕자의 난'이 발발, 현대그룹은 정몽구 현 현대차그룹 회장이 이끄는 현대차그룹, 故정몽헌 前현대아산 회장 중심의 현대그룹으로 갈라졌다.
이후 정몽구 회장의 현대차그룹은 도산위기에 빠져 있던 기아자동차를 인수하는 등 몸집을 크게 불려, 삼성전자에 이은 국내 사기업 중 자산총액 2위의 재벌그룹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잘나가던 현대차그룹은 2000년대 중반, 또 다시 세무조사와 얽히며 위기를 맞기도 했다.
◆ '회장님' 구속, 도화선 된 2005년 세무조사
지난 2005년 9월. 서울 양재동 현대차그룹 사옥에 서울지방국세청 조사국 소속 세무조사요원들이 들이닥쳤다. 현대차에 대한 정기 세무조사에 착수한 것이다.
세무조사는 상당히 순조롭게 진행됐고 예정된 시일(90일)내에 종료된 것으로 전해졌다.
그해 12월16일 현대차는 공시를 통해 "서울국세청으로부터 20002004회계연도에 대한 정기 세무조사를 받은 결과 1962억원의 세금이 추징됐다"고 밝혔다.
현대차는 해당 추징액 전액을 납부한 뒤, 조세심판원에 불복을 제기했다. 하지만 여기에 현대차그룹을 위기로 몰아넣은 날카로운 '가시'가 도사리고 있었다.
당시 국세청이 추징한 1962억원의 세금 중 556억원 가량은 현대차가 지난 1999년2000년 존속여부가 불투명했던 현대우주항공의 유상증자에 참여한 뒤 회사가 청산되자 유상증자 참여 금액 960억원을 손실 처리한 것에 대한 세금이었다.
현대우주항공에 대해 2100억여원의 보증채무를 안고 있던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회사 청산시 기존부채를 상환, 자산과 부채를 동일한 수준으로 맞춰 잔존부채가 없는 상태로 청산이 가능하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할 것을 지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현대우주항공은 1999년 8월, 2000년 4월 주주배정방식으로 유상증자를 실시해 총 3584억여원(▲현대중공업 1601억 ▲현대자동차 960억 ▲현대정공(현 현대모비스) 640억 ▲고려산업개발 263억 ▲정몽구 120억)의 자금을 끌어 모아 기존 차입금 상환 등에 사용했다.
정 회장의 보증채무는 2000년 전액 해소됐고, 현대우주항공은 2001년 폐업했다.
국세청은 정 회장이 불법적인 유상증자를 통해 회사에 손해를 끼친 것으로 판단(부당행위계산 부인), 철저하게 세금을 과세한 것이다.
이 문제는 수면아래에 잠재해 있다가 2006년 3월 '김재록 게이트'가 터지면서 불거져 나왔다. 당시 검찰은 정몽구 회장과 아들인 정의선 현 현대차 부회장(당시 기아차 사장)의 비자금 조성 의혹에 대해 고강도 수사에 착수했다.
한달 간의 초고속 수사 끝에 검찰은 정 회장이 비자금 조성 목적으로 회사자금 횡령하고 개인빚 탕감을 목적으로 현대우주항공 유상증자에 계열사들을 참여시켜 회사에 손실을 끼친 혐의를 적용해 정 회장을 구속했다.
지난 1997년 서울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특혜분양 사건의 책임을 아버지였던 故정주영 명예회장 대신 짊어지고 75일 동안 옥살이를 한 이후 28년여만에 재차 감옥에 가게 된 것이다.
수사 진행 과정에서 자산 1조원을 사회에 헌납하겠다며 선처를 호소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