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속 안철수 후보가 대선 예비후보 등록을 마침으로써 80여일 앞으로 다가온 18대 대통령선거는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 무소속 안철수 후보의 3파전 구도로 가닥이 잡혔다.
안철수 후보가 일단 후보단일화에 선을 그음에 따라 당분간 3파전은 불가피해졌다. 3파전 양상은 초접전이다. 탄탄한 지지율을 보여 온 박근혜 후보가 역사인식논란과 측근비리의혹 등의 악재가 겹치면서 지지율이 하락한 반면, 문·안 후보는 '컨벤션'효과를 누리며 지지율이 상승세를 보였기 때문이다.
3자 다자대결구도에서 '박근혜 1강(强), 문재인·안철수 2중(中)'구도가 무너지고, 양자 가상대결에서 안 후보가 박 후보를 10%포인트나 앞서고 문 후보도 박 후보를 처음으로 추월하는 여론조사결과가 나올 정도다. 세 후보가 대선으로 향하는 첫 관문인 '추석민심'잡기에 총력전을 전개하면서 대선판이 요동치고 있다.
이번 대선 3파전은 여느 때의 3파전과는 궤를 달리한다. 정치경험도, 정당조직의 뒷받침도 없는 후보가 선거일을 80여일 앞두고 지지율 1위에 오른 것은 유례가 없다. 야권의 두 후보 지지율 합계가 50%를 넘을 정도로 3강이 백중세라는 점도 긴장감을 더 한다.
게다가 대선전의 코드 '변화' '쇄신' '통합'은 세 후보가 공유하고 있다. 안 후보는 '정치쇄신을 바라는 국민열망의 실천자'를 자임하며 출마를 선언했고,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후보도 '정치개혁'을 대선의 주요이슈로 내걸었다. '변화의 새 시대' '소통과 화합' '국민대통합'은 세 후보를 꿰뚫는 공통의 가치다.
이를 실천할 구체적 그림을 갖고 국민마음을 얻는 치열한 경쟁장이 이번 대선이다. 새누리당도, 민주통합당도 기성 정치와 정당에 실망한 국민들에게 어떻게 당과 정치를 쇄신할지를 보여줘야 하고, 안 후보 역시 '안철수의 생각'을 넘어 구체적인 정책으로 무당파·중도층 들의 쇄신 요구에 화답해야 한다.
국민들을 증인으로 선의의 정책 경쟁이 펼쳐진다면 이 과정 자체가 대한민국 정치발전의 소중한 계기가 될 수 있다. 정치에서 소외된 층을 끌어안고 이들의 열정을 동원하는 '덧셈의 정치', '통합의 정치'를 실현하려면 서로가 경쟁하는 시간을 가져야한다.
출발부터 야권단일화 논의에 매몰되는 것은 대선의 이런 본래 의미를 퇴색시킬 수 있다. 후보 단일화 프레임이 중요 정책이슈들을 삼키는 블랙홀로 작용하면서 대중들의 열정과 기대를 후보 단일화라는 특정이슈로 한정하고 왜곡시킬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안 후보 스스로 '정치권의 진정한 변화와 혁신' 과 그에 대한 '국민의 동의' 라는 두 가지 조건을 제시하며 거리두기를 시도했다. 출발부터 단일화 논란에 휩쓸릴 경우 지지층 확장에 차질이 빚어질 뿐 아니라 '단일화를 통한 정권 교체'라는 민주당 논리에 끌려 다닐 우려가 크다는 고도의 전략적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안 후보는 최소한 국정감사가 끝나는 10월 24일까지는 자신의 새로운 정치·비전을 알리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기성 정치와 차별화하기 위해 '돈·조직 중심의 선거 방식'과는 다른 새로운 정치실험을 시도 중이며 선거캠프 부터 인터넷·SNS(소셜미디어)를 통해 지지 그룹이 자발적으로 움직이는 'SNS캠프' 형태를 꾸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선거자금과 관련해 "박원순 서울시장 때처럼 지지자들로부터 저리에 돈을 빌린 뒤 선거 후 갚는 '펀딩(funding)' 방식을 구상하는 등 이 모두가 새로운 정치실험이다.
박근혜 후보는 마침내 박정희시대의 과오를 인정하고 피해자에 대한 강도 높은 사과를 통해 '과거사 블랙홀' 탈출의 승부수를 띄웠다. 지지율 추락에 떠밀려 뒤늦게 결단을 내린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본인이 약속한 후속조치들로 진정성을 보인다면 역사적 판단을 달리해 온 나머지 절반의 국민들을 보듬는 대통합의 단초가 될 것으로 보인다.
박 후보의 사과는 그동안 과거사를 놓고 대립각을 세우던 이재오 의원 등을 포용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새누리당 당내 통합에도 도움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경쟁후보들도 박 후보의 사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어 미래를 위한 대선정책경쟁이 더욱 활발해지는 계기가 마련됐다고 볼 수 있다.
문재인 후보 역시 '새 정치의 문'을 열어 제치려면 민주통합당을 과감히 쇄신해 '노무현과 친노'를 극복하고 비노(非盧)세력을 보듬으며 열린 정당으로 환골탈태시켜야한다. 이는 안후보가 내 건 단일화 전제조건이자 문후보가 무당파․ 중도층의 정치적 열망을 아우를 수 있는 지름길이기도하다.
안후보가 '새 정치'를 실현하려면 그와 함께 약속을 실천할 정치세력이 있어야한다. 안 후보는 "조직과 세력 대신 나라를 위해 애쓰는 모든 분과 함께 나아겠다"고 밝혔지만 함께할 사람이 누구인지, 또 정치개혁의 주체가 될 만한 비전과 파워는 여전 안개속이다.
지금까지 정치권 바깥에서 공정한 게임의 룰을 지키며 기부를 행하는 등의 사회참여를 묵묵히 해 온데서 보이는 '진정성'이 그가 지닌 무기지만 콘텐츠가 없는 진정성은 의미가 없다. '경제적 우파' '정치적 좌파'의 메시지는 이쪽저쪽으로 지지층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되지만 이를 넘어서는 적극적 메시지와 실천적 전략이 속히 뒷받침 되어야한다.
신선한 이미지로 대중에게 큰 인기를 끌었던 1992년의 박찬종 변호사나 2007년 문국현 전 창조한국당 대표는 시간이 지날수록 지지율이 떨어지며, 본선에서 양당제의 벽을 넘는데 실패했었다. 콘텐츠가 없는 '안철수식 정치'는 자칫 '찻잔 속 태풍'으로 끝날 수도 있다.
앞으로 80 여 일 동안 세 후보는 정책과 비전으로 선의의 경쟁을 펼쳐 국민의 선택을 받아야한다. 박후보가 승리하려면 지지율을 51%로 끌어 올려야한다. 새누리당은 야권단일화보다 박후보가 국민 절반이상의 마음을 얻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박후보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이 발목을 잡고 있다면 주변을 정리하는 과단성을 보여야한다.
문후보와 안후보는 단일화 샅바싸움보다는 구체적 비전과 실천적 정책으로 자력(自力)으로 승리할 수 있는 길을 뚫어야한다. 막판에 정치적 목적에서 단일화로 간다 해도 각자가 자력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과정이 이 나라 정치발전에 소중하기 때문이다.
세 후보의 면면으로 보아 '좌파빨갱이' 대 '보수꼴통'식 대결구도는 이번 대선에서 통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 자체만으로도 큰 정치적 발전이 아닐 수 없다.
문제는 '국민검증'을 빙자한 흑색선전과 후보 '때리기'다. 여기에는 특정세력이나 후보를 사실상 편드는 '패거리언론'이 어김없이 한 몫을 한다. 정책선거와 그를 통한 정치발전은 정당이나 후보 쪽 못지않게 그 사회 '언론수준'에 좌우된다는 얘기다.
[약력] : 동아일보 경제부 기자,워싱턴 특파원. 중앙일보 워싱턴 주재 부국장, 경제담당 부국장, 편집국장 대리, 논설위원·고문 역임. 고대, 서강대, 외대 언론대학원 초빙교수. 조세일보 논설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