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비과장 적발시 최대 과태료 고작 500만원
YMCA, “집단소송제 징벌배상제 도입해야”
현대·기아차의 미국 연비과장 사건으로 국내 자동차 소비자의 불만이 제기되자 지식경제부가 뒤늦게 자동차 연비관리제도를 손보겠다고 나섰으나 소비자 보호책은 빠진 반쪽짜리 대책이라는 비판을 받고있다.
지경부는 △제작사의 자체측정 과정과 결과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하고 △양산차에 대한 사후관리를 엄격히 시행하며 △사후관리 결과를 공개하여 연비관리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작 내용을 뜯어보면 오차범위를 넘는 연비과장 행위에 최고 500만원의 과태료를 물게하는 '솜방망이' 처벌에서 한발짝도 나아가지 않아 소비자를 보호하겠다는 정책의지가 없다는게 소비자단체의 입장이다.
현대차그룹은 미국 환경보호청이 현대·기아차의 복합연비를 강등조치하자 곧바로 판매 차량에 대해 매년 1천억원 수준의 보상프로그램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소비자 보호가 그만큼 엄격한 미국의 제도를 감안한 결정이다.
◆…미국에서 연비과장 파문을 일으킨 현대 엑센트
현대·기아차는 연비과장 문제가 된 90만대에 대당 88달러를 보상할 계획이다. 여기에 위로금 15%를 더하면 101달러 수준이 된다. 현대·기아차가 이들 차량의 수명이 다할 때까지 매년 1천억씩 10년을 보상하게 되면 1조원에 가까운 돈을 물어줘야 한다.
국내 자동차업계가 그만큼 소비자 보호정책이 엄격한 수출시장에서 경쟁을 벌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는 자동차업계가 수출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품질 뿐아니라 소비자 보호정책에 맞출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하는 시대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수시장에서도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야 할 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내놓은 연비관리제도 개선방안에는 국내 소비자 보호 방안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언급하지 않고 있다.
자동차 제조업체는 현행대로 시험기관이 신고한 연비 가운데 일부 오류 의심 차종에 대해 임의로 연비를 시험한 후 오차범위를 벗어난 차량에 대해 부과하는 500만원 이내의 과태료를 물기만하겠다는 것이다.
현대·기아차의 이번 연비과장 사례를 예로들면 미국에서는 10년간 1조원 가까운 돈을 소비자에 물어줘야하지만 국내에서는 1개 차종당 500만원의 과태료만 물면되는 식이다. 이정도 처벌이면 자동차 제조업체의 연비과장을 사실상 눈감아주는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 제조업체가 과장한 연비를 믿고 자동차를 구입한 소비자의 피해를 구제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지경부가 연비측정을 제작사가 자체 시험할 수 있도록 한 것도 현대차그룹에 대한 배려라는 의구심을 갖게 만들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현재 남양연구소에서 자사 자동차의 연비를 측정해 한국에너지관리공단에 제출하고 있다.
지경부는 미국의 경우 자동차 제작사가 자체 연비를 측정해 신고하고 있는 사례를 들어 국내에서 제작의 연비 측정을 인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유럽은 자동차 제작사가 자체 측정해 신고하는 연비를 일부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경우 자체 측정을 인정해도 될만한 충분한 근거를 갖고 있다. 자동차 메이커의 연비 과장으로 입은 소비자 피해를 제조업체가 책임지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내에는 연비과장에 따른 소비자 피해를 보상할 제도가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에 자체 측정 연비를 인정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소비자 단체 관계자는 "제조업체 자체 측정 연비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소비자 피해를 보상하도록 강제하는 제도가 갖춰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국가공인시험기관인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자동차부품연구원, 한국석유관리원과 같은 시험기관에서 연비를 측정해 보다 객관성을 갖춰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미국에서 연비과장 파문을 일으킨 기아 프라이드
이에 대해 지경부는 연비관리제도 개선방향을 토대로 연말까지 관련 업계 및 전문가 의견을 수렴해 종합적인 방향을 마련하고 내년 상반기중 관련 법령 및 고시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또 내년 하반기부터는 개선안이 시행될 수 있도록 대비하겠다고 밝혔다.
내년 1월1일부터 에너지관리공단에서 추진해온 복합연비 제도가 본격 시행되는 것을 감안하면 지경부의 조치는 현실에 뒤처져 있다는 지적이다.
지경부가 이처럼 소비자들의 불만을 외면하고 자동차 제조업체를 감싸안으려 하는듯한 태도를 보이자 시민단체가 직접 나서 연비과장 사태에 대해 관계당국의 조사를 요청하는 일도 벌어졌다.
YMCA 자동차안전센터는 현대·기아차가 판매하는 전 차종의 연비 표기에 대해 표시·광고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등 위반 여부와 관련해 공정거래위원회에 조사를 공식 요청했다.
YMCA는 “기업의 불공정행위에 대한 제재장치가 극도로 미약한 국내에서는 광범위하게 연비를 과대표기 해왔을 가능성이 높다”면서 “단순 비교로도 같은 차종의 한국 연비가 미국보다 20~30% 높게 표기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YMCA의 이정훈 간사는 “미국에서와 마찬가지로 현대·기아차가 표시한 연비를 믿고 경제성을 고려해 구매를 결정한 소비자 피해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면서 “한국도 이번 기회에 미국과 같은 집단소송제와 같은 징벌적 배상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