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 믿다 상처입은 朴, '조직적 검증' 시스템 압박
헌정사상 처음으로 낙마한 새 정부 초대 총리 후보 지명자를 둘러싼 집권 여당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보안을 중시하다 못해 검증이라는 가장 중요한 부분을 놓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인사 스타일에 대한 불만이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새누리당 정우택 최고위원은 30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자녀의 병역 문제나 증여세 납부 문제, 부동산 투기 의혹은 서류 검증만으로도 제대로 걸러질 수 있는 사안"이라며 "박 당선인 측에서 사전 검증을 너무 소홀히 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박 당선인이 서류 검증만 제대로 했더라도 김용준 총리 후보 지명자의 낙마는 없었을 것이라는 일종의 '질책'을 담은 발언으로 해석되고 있다.
현재 국무위원을 비롯한 인사 작업은 박 당선인의 최측근 몇 명만이 진행하고 있으며 이것이 새 정부의 초대 총리라는 상징성 있는 첫 인사를 실패하게 만들었다는 평가가 쏟아지고 있다.
최측근 몇 명이서 어떻게 인사 검증을 치밀하게 할 수 있냐는 지적. 실제 박 당선인이 인선을 해야할 최소 규모는 국무총리와 장관 후보자 등 18명이다. 인사 청문회를 거치지 않는 청와대 비서실장 등까지 포함하면 수십 명에 이른다.
대개 후보군에는 최소 2배에서 많게는 5배의 인사를 거론하는 것을 감안하면 박 당선인이 실제로 검증해야 할 후보는 100명에까지 이를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더구나 인사 청문회는 그 당사자는 물론 가족들의 재산 형성과정, 병역문제, 부동산 투기, 세급납부 실적, 논문표절 등 전방위적인 검증이 이뤄지는 만큼, 인사 검증팀이 서류 검증을 치밀하게 했더라도 어디서 어떤 문제가 터질지 알 수 없다.
정 최고위원이 "박 당선인의 첫 인사였기 때문에 조심스러운 부분이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이제는 보완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며 "인사추천 기능과 검증 과정 뚜렷하게 분리해야 한다. 미국도 연방수사국, 국세청, 공직자 윤리위원회, 백악관 인사위 등 233개 항목 등 세세히 후보자 검증한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유기준 최고위원은 "총리와 국무위원 후보자 인선 때 청와대 등의 기존 시스템을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며 "청와대 등의 인력을 인수위에서 파견 받아 그 사람들로 하여금 검증 업무를 담당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요구했다.
하지만 박 당선인이 이번 일을 계기로 인사 스타일을 바꿀지는 미지수다. 워낙 철통 보안을 중시해온데다가 그런 보안과 깜짝인사가 성공을 거뒀던 적이 많다.
지난해 이준석 전 비대위원의 선임으로 새누리당은 젊은층과 소통하려 한다는 이미지를 얻게 되는 효과를 누렸고 김종인 전 경제민주화위원장의 영입으로 야당에게서 경제민주화 화두를 빼앗아오는 성과를 거뒀다.
이런 경험에 대한 믿음 때문에 박 당선인이 인사 스타일을 쉽게 바꾸기는 어렵다는 얘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박 당선인은 무언가를 말할 때 "내가 가봐서 아는데…"란 말을 자주 한다.
인사 작업을 할 때는 자신이 만났던 사람들을 적어놓은 수첩을 토대로 작업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본인이 직접 겪어보고 느낀 것에 대한 믿음이 강하다고 풀이되는 대목이다.
다만 앞으로 줄줄이 예정돼 있는 장관 후보자 인선이 같은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박 당선인이 정부 인사 검증 시스템을 활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시각도 적지 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