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대 한국세무사회장 선거가 오는 6월 예정되어 있는 가운데, 세무사 업계에서 들려오는 '파열음'이 상당하다. 과거에도 선거철이 되면 선거열기 과열로 인한 문제들이 불거지기도 했지만 올해의 경우 선거가 3달 이상 남은 시점부터 과열되고 있다.
선거를 둘러싸고 업계가 크게 분열될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이 같은 혼란을 촉발시킨 장본인은 정구정 현 세무사회장이다. 정 회장이 세무사회칙에서 금지하고 있는 3선(選)에 도전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업계는 말 그대로 '혼돈' 그 자체다.
현행 세무사회칙은 회장의 경우 1차에 한해 중임할 수 있다(2년 중임제) 고 규정하고 있다(회칙 23조6항). 회칙을 에누리 없이 해석하면 정 회장의 3선은 불가능하지만, 빈틈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정 회장이 3선 논리로 들고 나온 카드가 이 빈틈에서 비롯됐다.
정 회장은 20여년 전 유권해석을 통해 3선 출마를 강행, 당선된 역대 회장(임영득) 사례를 답습해 오는 3월5일 임시총회를 열어 사실상 같은 방식으로 유권해석을 받아내 다시 한번 세무사회장 선거에 출마하겠다는 입장이다.
이 같은 정 회장의 행보를 두고 세무사 업계 안팎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특히 오랫동안 정 회장 옆에서 그를 돕던 측근들마저도 반대를 하고 있는데도 불구, 정 회장이 업계의 분열상황까지 만들어가며 3선 출마 고집을 꺾지 않는 것에 대한 말들이 많다.
정 회장은 지난해, 세무사 자동자격 폐지(공인회계사 대상)를 골자로 한 세무사법 개정안 국회 통과를 만들어내는 등 지난 2년 임기 동안 뚜렷한 '족적(足炙)'을 남겼다. 이 과정에서 정 회장이 상당한 역할을 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정 회장은 스스로 3선 도전의 이유를 조세소송대리권 확보 등 중요한 현안들을 제대로 추진할 적임자는 자신이다라고 주변인들의 말을 빌려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상당수 업계 관계자들은 이는 정 회장의 '도그마(Dogma)'에 불과하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세무사 자동자격 폐지 법안 통과 과정에서 정 회장이 수행한 역할은 상당하지만, 이를 혼자만의 업적으로 치부하는 발상 자체가 잘못됐다는 것이다.
가령 아이가 자라서 대학교에 입학했다고 치자. 아이가 대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20년 동안 부모님의 지원과 초중고교 선생님들의 가르침, 그리고 자기 자신의 노력 등 삼박자가 어우러진 결과이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 할 수 있는 고3 시절 담임 선생님 혼자만의 공로는 아닌 것이다.
마찬가지로 세무사법 개정안도 20여년 동안 업계차원의 노력이 있었고, 지난해 국회 논의과정에서 많은 세무사회원들의 보이지 않는 노력이 밑바탕에 깔리면서 일이 성사된 것이라는 설명이다.
더구나 세무사 업계의 숙원인 세무대리는 세무사만이 한다는 '세무대리 독점권'이 아닌 세무사 업계로서는 실익이 부족한 명칭 독점권만을 확보한 반쪽 짜리 성과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내놓는 세무사들도 많다.
모든 세무사 업계 참여자들이 나눠가져야 할 업적을 독식하는 것도 모자라, 이를 3선 도전의 명분으로 삼는 것은 공감 받기 힘든 개인의 욕심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한 세무사는 "세무사회원만 1만명이다. 이 1만명 중 출중한 능력을 갖춘 인물들이 무수히 많다. 그런데도 마치 '할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것은 명백한 착각이며, 회원들을 무시하는 처사나 다름없다"고 일갈했다.
지난 20여년간 기라성 같은 세무사들이 회장을 역임했지만 회장을 3번하겠다며 우기지 않고 순순히 바통을 넘겨주었지만 누구도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세무사회는 특수하다'는 논리로 4년 임기(2년 중임)가 짧으니 3년 중임으로 늘리자는 주장도 없었다.
만약 세무사회장 임기를 늘리려면 지난 20년간의 '관습법'을 깰 이유를 대고 전체 세무사회원들의 동의를 구해야 할 것이다. 또한 관습법을 깨는 이유가 세무사 회원들에게 어떤 이익을 가져다 줄 수 있는지를 정 회장 스스로 제시해야 한다.
세무사 회원들이 납득할 충분한 이유가 설명되지 않은 채, 나밖에 할 사람이 없다. 주변에서 3선을 해 보라고 권유하고 있다는 자기최면적 논리로, 서울과 중부지방 회원들만 참여한 반쪽 짜리 총회에서 유권해석을 받아내려는 것은 꼼수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많다.
명예직, 봉사직이어야 할 세무사회장직을 연장하기 위해 정 회장이 지인들과 측근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무리수를 두는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여러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세무사 업계 일각에서는 정 회장의 3선 도전에 다른 의도가 있기 때문 아니겠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즉, 순수성에 대한 의심이 크게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무보수 명예직으로 봉사하는 자리로 인식되어 온 세무사회장직은 수 년 전 정구정 회장과 박상근 전 세무사회 감사의 고발사태를 계기로 판공비를 급여로 전환, 현재 연간 2억원이 넘는 고액 연봉자리로 바뀌었다.
1억9000여만원의 연봉을 받는 대통령 보다 많은 액수다.
이에 더해 예산전용으로 연간 수 억원의 돈을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간 200억원에 육박하는 세무사회 예산을 주무를 수 있는 권한도 쥐고 있다.
전산세무회계 자격시험을 통해 세무사회가 벌어들이고 있는 40억원 규모의 수익에 대해서도 용처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차기 세무사회장 임기 중 이러한 예산 사용에 대한 철저한 검증이 있어야 할 것이라는 이야기들이 세무사 업계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것이다.
정 회장이 억지로 3선의 길을 튼다해도, 회 예산 사용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가 커지게 되면 정 회장 본인 뿐만 아니라 업계 전체적으로도 마이너스만 될 뿐이다. 세무사 업계가 금권(金權)을 놓고 다투는 집단으로 오인, 그 동안 열심히 쌓아온 긍정적 이미지들을 일거에 잃어버릴 수도 있다.
과유불급(過猶不及).
지나친 욕심은 화를 불러오기 마련이다. 권력과 자리에 대한 과도한 욕심, 나만 갖겠다는 그 허망한 욕심이 화를 불러 옴은 동서고금(東西古今)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