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부천에서 선거 유세에 나선 당시 박근혜 대선 후보가 휠체어에 탄 한 어르신과 손을 잡고 인사를 나누고 있다. 박 후보는 기초노령연금을 65세 이상 모든 국민에게 현재의 2배 수준으로 지급하겠다고 공약했으나, 당선 후 국정과제에서는 소득과 국민연금 가입 여부에 따라 4개 그룹으로 차등 지급하는 방안으로 수정했다.
"만든 사람도 이름 걸고 책임지자"…매니페스토 운동본부
"증세없는 복지 주장한 전문가들도 공약에 공동책임져야"
경제민주화와 복지공약을 내걸고 당선된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과제에서 경제민주화 용어를 슬그머니 빼고, 4대 중증질환 보장 공약을 후퇴시키는 등 공약의 이행여부가 의심받는 상황에 처하자 시민단체와 야권이 나서서 '공약실명제'를 추진하고 있다.
매니페스토 운동본부에서 지난 2월 여야 의원들에게 공개한 '대통령 공약 실명제 및 이력제' 법안이 민주통합당 의원 의원 45명의 발의로 지난 18일 국회에 제출된 것.
이 법안은 대통령 선거 및 광역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서 승리한 당선인에게 임기 시작 30일 이내에 공약한 정책과 최초 제안자 및 책임자의 명단을 홈페이지를 통해 알리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 공약사업의 추진상황을 임기말까지 매년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추진하지 않은 경우에는 합당한 설명을 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실제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약속했던 '4대 중증질환 100% 보장'이라는 공약을 선택진료비, 상급병실비, 간병비 등 비급여 항목을 제외하는 방안으로 후퇴시킨 뒤 "대선 공약은 캠페인(진영 보건복지부 장관)"이라는 해명을 내놓아 공분을 산 일이 있다.
모든 65세 이상 국민에게 기초연금 20만원을 지급하겠다던 공약도 소득 계층에 따른 선별 지급으로 바뀌면서, 국민연금 가입자에 대한 역차별 논란이 불거지고 국민연금 탈퇴 움직임까지 일어났다.
당시 민주통합당 의원들은 "공약을 통해 표를 얻고 당선이 됐는데, 이를 지키기 어렵게 됐다면 국민 동의를 얻고 사과를 할 일이지, 캠페인이기 때문에 실제 정책과 차이가 있다고 하는 건 문제"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이외에도 경찰 관련 공약에서는 경찰청장의 임기 보장을 약속했으나, 당선 후 임기가 1년 남은 청장을 교체했고, 전남 유세에서 '대탕평 인사'를 약속했으나 실제 장·차관급 인사에서 호남 인사 배려를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매니페스토 운동본부 이광재 사무총장은 19일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지난 2월 18일 공약실명제 법안 초안을 여야 의원에게 공개하고, 야당 의원들의 공동발의로 국회에 제출됐다"면서 "여당 의원이 참여하지 않아 안타까운 부분이 있다"고 밝혔다.
이 총장은 "대선 공약과정에 300명에서 500명의 정책전문가가 참여해 가혹하리만큼 치열한 토론을 거쳤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공약에 대한 책임도 공동으로 지는게 맞다"라면서 "그렇지 않고 대선 때의 공으로 한자리 차지하려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부분을 발본색원하는게 좋겠다"고 법안의 취지를 설명했다.
대통령과 지자체장 본인의 공약에 대한 책임감도 상기시키고, 임기 말에 공정한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하며, 공약에 대해 책임은 지지 않고 사리사욕만 채우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이번 법안의 배경에 이명박 정부의 747 성장과 일자리 300만개, 동남권 신공항 건설 공약의 실패를 통한 학습효과가 있었다고 말했다.
747 공약은 우리나라가 7% 성장을 달성해도 세계 7위가 되지 못하므로 산수가 안 맞는 공약이었고, 일자리 300만개 공약도 앞뒤가 안맞는 공약이었다는 것. 이런 공약들이 결국 구호로 끝남으로써 지켜지지 않는 공약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이 총장은 "박근혜 대통령은 오랫동안 신뢰와 복지를 강조한 보수대통령으로서 진보적 아젠다로 당선된 까닭에 대통령이 변하지 않을까 우려스러운 시각들이 많다"면서 "박 대통령이 경제민주화와 대북정책 등을 보수적인 방법으로 풀어주기를 바라는 것이 유권자의 선택이라고 본다"는 해석을 내놨다.
이어 "지난 대선 과정에서 복지정책에 천문학적인 재정이 들어간다는 언론의 지적이 많았다"라면서 "실제 대선 공약을 보면 복지공약에 드는 재원 134조보다 지역개발공약에 들어가는 재원이 150조로 더 많은데, 이 부분을 정부가 어떻게 풀어나갈지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증세없이 복지가 가능하다고 주장했던 전문가들도 공동책임을 져야 한다"면서 "복지공약은 개발공약과 달리 국민의 팍팍한 삶에서 위약 선언을 했을 때 나는 상처가 너무 크다. 공약 로드맵이 보다 면밀히 제시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