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의 조세행정을 이끌어나갈 첫 국세청장으로 지명된 김덕중 내정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25일 국회에서 치러졌다.
이날 김 내 정자는 인사청문회가 열리기에 앞서 '모두발언'을 통해 향후 국세청이 추구할 세무행정 방향을 구체적으로 발표했다. 김 내정자가 강조한 국세청의 미래 슬로건은 '국민이 신뢰하는 공정한 세정 구현'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특히 공정하고 투명한 세정을 실현하기 위해 ▲납세자 권익 존중 ▲복지재원 조달 ▲국세공무원 도덕성 확보 등 3대 '액션플랜(Action Plan)'을 꺼내들었다.
하지만 김 내정자가 발표한 국세청의 3대 핵심과제에 대해 민간 조세전문가 및 경제계는 전체적인 방향성에 동감한 모습이지만, 구체적인 실천계획에 대해서는 다소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 납세자보호, "고양이에게 생선?"…'독립적 외부기관' 필요 = 이날 김 내정자는 모두발언을 통해 국세청의 납세자 권익보호 업무를 한층 강화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세무조사권을 견제하기 위해 조사기간을 연장하거나 조사범위를 확대하는 경우 납세자보호담당관이 납세자 의견을 사전에 청취하는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민간 조세전문가들은 김 내정자의 이와 같은 발언에 대해 그동안 국세청장 인사청문회에서 단골메뉴로 나왔던 단순한 '립서비스'에 지나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납세자들에게 세금을 부과하고 세무조사를 실시하는 과세당국 국세청에서 납세자 권익을 보호하는데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보다 확실하게 납세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독립적인 외부기관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홍기용 한국납세자연합회 회장(인천대 세무회계학과 교수)는 "납세자보호담당관은 없었던 제도가 아니다"라며 "일단 과세권자가 납세자를 보호한다는 것 자체가 논리상 맞지 않고, 납세자들이 국세청에 세무조사를 줄여달라고 요청한다고 과연 줄어들겠나"라고 지적했다.
홍 교수는 "세무조사는 국민들의 재산을 침해할 수 있고, 기간도 20여일 가량이므로 신속한 조치가 요구된다"며 "납세자 권익보호의 실효성을 높이려면 이를 위한 특별위원회를 별도로 설치해야 하는 등 독립된 외부 감독기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유찬 홍익대 세무대학원 교수는 "세무조사의 경우 현재도 납세자보호담당관이 결정하기 보다는 위원회를 열어 공무원 및 민간전문가들이 모여서 심의를 하지만, 공무원들이 필요하다고 요구하면 대부분 연장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김 내정자의 말대로 납세자들의 의견을 청취해서 애로사항을 들어주면 세무조사가 제대로 되겠나"라며 "엄밀히 얘기하면 해법이 될 수 없고, 이러면 세무조사 절차만 어렵게 만들 수 있어 실제로는 큰 도움이 안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납세자보호담당관이 세무조사 기간을 연장하기 전에 납세자들의 의견을 들어주는 것 자체만으로도 상당한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지난 MB정부 시절 국세청 납세자보호담당관을 역임했던 박훈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결론적으로 많이 달라질 것"이라며 "납세자보호담당관이 세무조사를 할 때 납세자의 의견을 미리 청취한다는 것 자체가 세무조사를 담당하는 조사국이나 국세청 내부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국세청 내부 조사국에서 담당하는 세무조사에 대해 납세자보호담당관이 먼저 납세자로부터 의견을 청취하는 것 자체가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는 설명이다.
박 교수는 "일단 납세자보호담당관이 납세자들의 의견을 들어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세무조사 담당자들이 조사의 적정성 등을 스스로 검토하는 계기가 된다"며 "조사국에서만 듣던 입장과 달리 납세자 이야기를 듣게되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고 전했다.
다만 "우려되는 것은 결국 세무조사 기간 연장은 조사기간이 다 끝나갈 때 임박해서 이뤄지기 때문에 납세자 의견을 제대로 들을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없다"며 "과세행정상 변화가 필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 조사분야 특별 감찰조직 신설…"팔은 안으로 굽는다?" = 김 내정자는 이날 인사청문회에서 최근 서울지방국세청 조사국 직원들의 뇌물수수 혐의 등 세무조사와 관련된 국세공무원들의 비리를 특별감찰조직 설치 등을 통해 근절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하지만 민간전문가들은 국세청 내부 감찰조직에 대해 신뢰할 수 없다는 입장을 전했다. 그동안에도 감찰 조직은 존재했지만 세무조사 비리를 사전에 또는 사후에 제대로 적발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홍기용 교수는 "앞으로 세수확보를 위해 세무조사가 더욱 확대될 것인데 세무조사와 관련된 법규 등 제도적 접근이 필요하다"며 "특히 공인회계사, 세무사, 시민단체 등으로 구성된 외부 감찰기관이 세무조사를 사후관리할 경우 국세공무원들의 경계심이 높아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유찬 교수는 "만약 조사분야 특별 감찰조직을 만들더라도 국세청 내부 인사 이외의 외부 전문가가 참여해야 실효성이 있다"며 "최근 탈세제보에 대한 보상 수준을 높이도록 제도가 개선됐는데 세무조사 비리에 대해서도 정보제공자에게 상당한 보상을 하고 국세청 내부 제보자에 대해서는 철저히 보호해주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훈 교수는 "특별 감찰조직을 설치하면 당장은 의미가 있을 것이지만 기본적으로 순환보직이 필요하다"며 "조사직원들의 전문성도 중요하지만 순환보직을 통해 국세청 직원들이 민원업무, 불복업무 등도 맡아보도록 업무를 자주 바꿔 물을 갈아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 불합리한 세무행정, "민원업무·납세협력비용 개선해야" = 김 내정자는 이날 "현장중심의 세정운영을 통해 납세자들의 어려움을 가중시키는 불합리한 제도와 관행을 적극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납세자 권익을 철저하게 존중·보호하기 위해 납세자들에게 불편을 주는 세무행정상 '손톱 밑 가시'를 뽑아내는데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지다.
민간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납세자들이 쉽고 편리하게 세금을 납부할 수 있도록 세무행정 시스템을 전반적으로 개혁해야 하며, 현재 납세자들에게 과도한 부담을 주는 납세협력비용도 한층 낮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홍기용 교수는 "납세자들이 세금을 빨리 잘 납부할 수 있도록 일단 세금계산을 쉽게 만들어야 한다"며 "세제를 쉽게 만드는데는 한계가 있으므로 국세청이 일정규모 이하의 저소득층과 자영업자에 대해서는 세금신고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 개인사업자의 경우 세금을 아무리 잘 알아도 세무사 등 세무대리인을 통해 세금을 신고·납부해야 한다"며 "외부인에게 돈을 내고 세금을 신고하는 것 자체가 납세자에게는 큰 부담이 되므로, 이런 제도를 개선하는 것이 납세자 입장에서 본 납세행정 개선"이라고 전했다.
박훈 교수는 "민원인들이 세무서에서 보다 원활하고 편리한 서비스를 제공받아야 한다"며 "국세청 본청의 우수한 인력들이 일선 세무서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하고, 이 부분에 대한 인사지원으로 민원부서를 보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지하경제 양성화, 복지재원 확보…"효과 글쎄?" = 한편 이날 김 내정자는 지하경제 양성화로 대표되는 공정과세를 펼쳐 박근혜 정부의 복지재원을 원활히 조달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그는 대기업·대재산가의 불공정행위와 변칙거래, 고소득 자영업자의 차명계좌·현금거래 등 탈세, 가짜석유·자료상 등 반사회적인 지하경제에 강력히 대응하겠다고 강조했다.
민간 전문가들도 김 내정자가 밝힌 공정과세를 위한 지하경제 양성화 방안에 힘을 실어줬다. 박근혜 정부의 복지재원 마련을 위해 세율인상 등 직접적인 증세보다는 우선적으로 지하경제 양성화를 비롯해 숨은 세원을 발굴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박훈 교수는 "증세 없는 복지재원 확보는 쉽지 않다"며 "하지만 복지재원 확보를 위해서는 세율을 올리기보다는 조세정의 차원에서 지하경제 양성화를 먼저 해야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임기 1년차에서는 통상적으로 다시 한번 주어진 부분을 점검해야 하고, 세목을 신설하던가 비과세·감면을 줄이는 일은 2∼5년차에 검토해 봐야 한다"며 "복지재원 확보를 위해 국채발행, 세율인상 등은 나중에 하고, 현금업종에 대한 과세부분을 관심있게 봐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홍기용 교수는 "지하경제 양성화도 증세와는 다르지만 국민들로부터 세금을 받아가는 측면은 같다"며 "복지재원의 경우 세금만으로 재원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며, 세무조사 등을 늘릴 경우 납세자들의 조세저항이 늘어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 과도한 지하경제 양성화…"음성화 부작용 우려" = 한편 기업 관계자들은 김 내정자의 지하경제 양성화 강화 입장에 대해 조세정의 차원에서 전반적으로 찬성 의견을 나타냈다. 다만 기업 관계자들은 과도한 지하경제 양성화 정책이 시행될 경우 역외탈세 등 불법행위가 현재보다 더욱 음성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도 나타냈다.
홍성일 전국경제인연합회 금융조세팀장은 "복지재원 마련을 위한 지하경제 양성화에 원론적으로 찬성하지만, 이런 것들은 실질적인 어려움 때문에 잘 못하는 것"이라며 "제도적으로 막아놨을 때 더 나쁜 지하로 내려갈 수 있는 등 부작용이 있다"고 지적했다.
홍 팀장은 "세원을 발굴하는 것 자체는 나쁘다고 보지 않지만 부작용이 일어나지 않도록 적정선을 찾아야 한다"며 "과세도 공평하게 형평성 있게 해야 하고 대기업이라고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양옥석 중소기업중앙회 부장은 "우리나라 경제의 문제점이 동반성장을 한다고 하지만 여전히 불공정하고 돈이 대기업에서 중소기업으로 낙수효과를 보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며 "정부가 이런 정책을 계속 펴서 실질적으로 부의 재분배 효과를 노리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