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퇴 도미노로 '낙마 축구팀'…"독선 인사의 후과"
박근혜 정부의 출범 한 달을 맞은 25일, 한만수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가 해외 비자금 계좌와 탈세 문제로 자진사퇴하면서 청와대의 인사시스템에 대한 정치권의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한만수 내정자는 이날 오전 "저의 공정거래위원장직 수행의 적합성을 놓고 논란이 제기돼 국회 청문회 일정조차 잡히지 않은 채 장시간이 경과하고 있고, 이로 인해 정부의 순조로운 출범에 지장을 초래하고 있다"면서 사퇴의 뜻을 밝혔다.
조세법 전문가인 한 내정자는 내정 직후부터 100억원대 이상의 재산과 김앤장 등 로펌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대기업 총수 일가의 입장을 변호해온 이력 때문에 공정거래위원장 직에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때문에 야권의 공세 속에서 국회 정무위는 한 내정자의 인사청문회 일정조차 합의하지 못한 상태였다. 이에 더해 해외 비자금 계좌와 수억원의 탈세 의혹까지 제기된 것.
민주통합당 김기식 의원은 "한 후보자가 해외에 비자금 계좌를 운용하며 세금을 탈루해온 혐의가 짙다"며 "국세청에 한 후보자의 해외 금융계좌 신고여부와 계좌 규모 등에 관한 자료 제출을 요청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한 내정자의 사퇴로 박근혜 대통령이 임명한 인선 중 김용준 국무총리,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황철주 중소기업청장, 김학의 법무차관, 김병관 국방부 장관 내정자에 이어 6번째 낙마자가 발생했다.
인수위원회 시절 이명박 대통령과 함께 인선한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내정자와 최대석 인수위원, 청와대 비서관 5명 등을 합하면 축구팀을 꾸릴 수 있다는 농담이 나올 정도다. 그러나 청와대는 여전히 문제의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 민주 "박 대통령 사과하고, 민정라인 교체해야" = 정치권은 여야를 불문하고 청와대의 민정 라인을 비판하며, 인사 문제 해결을 위한 근본적 대책을 촉구하고 나섰다.
민주통합당은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와 청와대 민정라인의 교체를 촉구했다. 박 대통령이 불통 스타일에서 벗어나 국민과 언론, 야당의 충고에 귀기울이는 소통의 리더십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기춘 원내대표는 전날 "박 대통령이 그간의 인사 난맥상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해야 한다"면서 "인사검증 실패에 책임이 있는 청와대 민정수석을 비롯한 민정 라인을 일괄 교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희상 비대위원장도 이날 비대위회의에서 "이 정도 되면 박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수습해야 한다"며 "부실 인사의 책임은 최종 임명권자인 박 대통령에 있기 때문에 사과하고, 실패한 청와대 인사라인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성호 대변인도 "인사 참사의 일차적 책임은 무적격, 무자격 인사를 내정한 박근혜 대통령에게 있다"며 "대통령의 수첩인사, 나홀로 독선인사의 후과"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 "보다 큰 문제는 청와대 인사 시스템의 붕괴에 있다"며 "대통령의 인선에 앞서 청와대 인사, 민정라인에서 철저한 인사 검증을 해야 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대통령이 수첩을 보고 지시하는대로 따라간다면 참모들이 왜 존재하는가"라고 일갈했다.
□ 새누리 "인사검증 시스템 강화하고, 관계자 문책해야" = 그동안 숨죽이고 있던 새누리당에서도 비판의 강도가 높아졌다.
서병수 사무총장은 "공직 내정자 스스로 결함이 많다면 공직 제안을 수용하지 말았어야 한다"면서도 "제도 개선은 물론 관계자들에 대한 적절할 조치도 있어야 할 것"이라고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이상일 대변인은 "한만수 후보자 사퇴는 청와대의 검증부실을 또다시 보여주는 사례"라며 청와대에 직격탄을 날렸다.
이 대변인은 "도대체 인사 검증을 어떻게 했기에 이런 일이 잇따라 발생하는 것인지 청와대는 반성해야 할 것"이라며 "청와대는 이번 줄사퇴 현상의 원인을 철저히 점검해 인사 검증 시스템을 강화하는 방안을 찾고, 부실검증의 책임이 있는 관계자들은 문책해야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 靑 "민정에서 검증했고, 인사위도 문제없다…해외계좌추적은 현실적 한계" = 그러나 청와대는 꿈쩍도 않는 모습이다.
이날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한만수 내정자에 대해 "민정수석실에서 당연히 검증했다"면서 "해외 계좌 추적 문제는 짧은 기간에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다"고 항변했다.
청와대 인사검증 시스템에는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비서실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인사위원회에 대해서도 "정부조직법 개정안 통과 전에는 활동에 애로는 있었으나, 인사위원회에 준하는 활동을 해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인사위원회의 구성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불필요한 잡음이 따를 수 있어"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겠다고 밝혔다.
대통령의 사과가 있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선 "처음 듣는 얘기"라고 일축했다.
이날 청와대 다른 관계자는 "비자금이나 성접대 파문 등 고위층의 도덕 불감증이 아쉽다"면서 인선 낙마를 개인의 문제로 돌리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 출범 한달째, 청와대는 그동안 여야 갈등이 국정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여러 차례 비판해 왔으나, 이제는 '불통 인사'와 잇단 낙마로 스스로 국정의 발목을 잡고 있는 모양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