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취임하면서 집무실에 걸어둔 글귀 중에 '시종여일(始終如一)'라는 말이 있습니다. 처음과 끝이 같다는 것인데, 들어올 때나 나갈 때나 한결같이 하겠다는 겁니다. 후회는 없습니다"
국세청에서의 영욕(榮辱)의 32년 공직생활을 마감한 이현동 국세청장이 26일 오후 4시20분 퇴임식을 끝으로 수송동 국세청사에서 직원들과 현직 국세청장으로서 마지막 '작별인사'를 했다.
이날 그의 마지막을 배웅하기 위해 제20대 국세청장으로 내정된 김덕중 중부지방국세청장을 비롯해 조현관 서울청장, 김은호 부산청장, 김경수 대전청장, 신세균 대구청장, 임창규 광주청장 등 전국 각 지방청장들도 모두 한 자리에 모였다.
수송동 2층 대강당에서 진행된 이날 퇴임식에서 이 국세청장은 2년 반 넘게 국세청장직을 수행하면서 느꼈던 소회와 함께 국세공무원으로 한 우물만 팠던 30년 공직생활 추억을 회고했다.
그는 식전에 미리 직접 써둔 글귀를 차분히 읽어 내려가며, 남아있는 후배들에게 국세공무원으로서의 자부심을 잃지 말고 떳떳하게 본연의 임무를 수행해 나갈 것을 주문했다.
그는 ""국세공무원임을 무척이나 자랑스러게 생각했다"며 "국세청과 국세청에 근무하는 여러분 모두를 정말로 존경하고 진심으로 사랑한다"며 짧은 퇴임사를 끝맺었다.
퇴임식장에 모인 400여명의 국세청 고위 간부들과 직원들은 이 국세청장의 퇴임사에 귀를 기울이며 명예롭게 조직을 떠나는 선배에게 축하와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떠나는 선배에 대한 존경심을 반영하듯 퇴임사를 마치자마자 행사장 곳곳에서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가 울려 퍼졌다. 퇴임사를 마친 이 국세청장은 식장에 모인 후배 인사, 직원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면서 석별의 정을 나눴다.
그동안 일부 국세청장들은 퇴임 전 각종 정치사건, 뇌물비리 사건에 휩쓸리며 씁쓸하게 공직생활을 정리했던 사례도 적지 않았다. 국세청 수장이 바뀔 때마다 매번 내부개혁의 목소리가 나왔던 것도 실제로는 기억에서 잊고 싶은 사건들과 무관치 않았던 게 사실.
이 국세청장은 비록 언론에게 뉴스거리를 주지 않는 '은둔형' 국세청장 이미지가 강했지만, 한편으로 철저한 자기관리를 통해 국세청 내부에서는 인기 만점이자 본받고 싶은 선배이자 형님 같은 이미지로 국세청 역사에 남게됐다.
또한 부임기간 여러 가지 '공과(功過)'를 남겼지만 국세청장으로 마지막 하루를 보낸 그의 이날 뒷모습은 그 어느 때보다 홀가분하고 당당한 모습 그 자체였다.
어쩌면 애초부터 원치 않은 비싸고 큰 옷을 입었던 것 같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이날 그의 표정은 너무나도 평온하고 여유가 넘쳤다.
다만 가족처럼 지낸 직원들과의 이별을 맞이함에 있어서는 상당히 아쉬워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향후 계획을 묻는 질문에는 "가족들과 국내 이곳 저곳 돌아다닐까 한다. 당분간은 이렇게 쉬고 싶다"고 답했다.
이 국세청장은 퇴임식을 마친 뒤 수송동 국세청사 정문을 홀연히 빠져나가며 직원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다시 한번 전했다. 그렇게 이현동 '전(前)' 국세청장의 뒷모습은 47년 국세청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