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설 대우건설 한화건설 등 대형건설사들의 해외 진출이 활발한 가운데 해외사업에서 생기는 리스크를 성공적으로 관리해 경영실적을 개선하는 사례가 늘어나 청신호를 보이고 있다.
28일 업계에 따르면 한화건설은 컨트리 리스크가 높은 이라크 신도시 개발사업을 수주하면서 이라크 정부로부터 25%의 선수금을 받고 물가상승분을 보전받는 등의 조건을 이끌어내 안정적인 사업여건을 마련했다. 이 회사는 이같은 조건으로 계약을 체결함에 따라 지난해 9월 선수금의 일부인 8000억원을 송금받아 현금흐름이 크게 개선되는 효과를 거뒀다.
한화건설은 지난해 843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현금수지가 개선된것을 나타내는 영업현금흐름은 4611억원으로 개선되는 안정적인 재무구조를 보이게 됐다.
◆…한화건설이 이라크에 건설중인 비스마야 신도시 조감도
리스크 큰 영업· 예산부문 현지 정부 책임지게
한화건설은 바그다드 인근 비스마야지역에 10만호의 주택을 7년에 걸쳐 건설키로 하고 이라크 정부와 협상을 벌이면서 정치적 불안정과 종교분쟁 등에 대비해 사업검토 단계에서부터 끈질긴 줄다리기를 했다.
더우기 중동지역은 전후복구라는 대형 호재로 수많은 글로벌 건설사들이 경합을 벌여 협상이 어려울 수밖에 없었으나 리스크를 줄이는데 초점을 맞춰 협상을 벌인 것이 주효했다.
가장 먼저 77억5000만 달러에 달하는 사업비의 25%를 공사선수금으로 수령하고 물가상승을 공사비에 반영하는 조건을 이라크 정부로 부터 끌어 낸 뒤 실제 사업규모를 80억불 이상으로 확대했다.
또 가장 사업리스크가 큰 영업부문과 예산부문은 이라크 정부가 책임을 지게 했다. 분양책임을 떠맡은 이라크 정부는 지난해 부터 자국 공무원들에게 청약을 받아 10만호 청약을 완료하고 현재 분양계약을 체결하고 있다.
사업예산도 이라크 재무성 산하 3개 국영은행이 공사대금의 지급보증을 해줘 공사대금 수령도 안정적으로 이루어질 전망이다.
한화건설 관계자는 "이러한 파격적인 계약조건의 배경에는 김승연 회장과 누리카밀 알 말리키 이라크 총리와의 오랜 친분과 상호신뢰가 절대적인 역할을 했다"고 귀뜸했다. 그는 "이라크 전쟁이 끝나기 2년전인 2009년 한화는 이미 전쟁포화속의 이라크에 진출했고 이런 인연으로 2011년 알 말리키 총리 방한 때 30분의 독대로 합의각서를 체결할 수 있었다"며 인간관계를 중시하는 중동지역의 비지니스 관례를 활용한 사례를 설명했다.
이라크 정부는 향후 100만호 주택건설계획을 갖고 있어 한화건설은 비스마야 신도시를 발판으로 나머지 주택건설 사업과 각종 인프라, 학교, 병원 등의 수주를 준비 중이다.
철저한 사전조사와 계약조건 유리한 지역 특화
현대건설, 대우건설 등 해외사업의 경험이 많은 건설사들은 철저한 시장조사와 사전준비로 리스크를 줄이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현대건설은 사업설계 단계에서 부터 모든 기술을 총동원해 타당성을 검토하는 사전준비과정을 통해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있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사우디 등 중동시장의 경우 발주처 중심의 바이어 마켓이 형성돼 있어 사업조건이 이미 정형화돼 있고 업체간 경쟁이 심해 발주처가 제시하는 조건을 그대로 수용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 뒤 "공사중에 발생할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서는 사전 시장조사나 사업설계 단계에서 밸류엔지니어링 등 갖고 있는 모든 기술을 총동원해야한다"고 사전준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대우건설의 경우 네트워크 구축 또는 설계단계에서의 철저한 준비외에도 계약조건이 유리한 지역으로 시장을 다변화하여 해외사업의 위험을 줄이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대우건설 관계자는 "중동국가에 비해 나이지리아, 리비아 등 북아프리카 국가들의 경우 경쟁이 상대적으로 약해 사업조건을 협의할 때 시공사 입장을 반영할 수 있는 여지가 크다"고 설명했다. 그는 "모로코의 경우 대우건설이 단독으로 진출해 있어 선수금 15% 수령 등 유리한 대금지급조건으로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고 시장다변화를 통해 해외사업의 위험을 줄이는 전략을 설명했다.
◆…대우건설이 모로코에 건설중인 조르프 라스파 발전소 현장
사전조사 미비로 대형 프로젝트 손실 다반사
해외에서 이뤄지는 대형공사의 경우 대부분이 일괄도급방식인 턴키베이스로 사업이 추진되는데 턴키공사의 경우 예측하지 못한 사고나 공사 장애 상황이 발생해도 그 부담을 건설사가 그대로 떠안아 큰 손해를 볼 수 있다.
국내 건설업체 가운데 최근 2, 3년 해외사업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해외현장에서 발생한 문제로 회사 전체 경영실적이 악화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해외사업에서 대규모 손실을 입은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계약 체결 전 현장을 조사할때 발견되지 않았던 약화지반이 발견돼 공사비가 크게 증가했는데 발주처로부터 추가공사비를 전혀 보상받지 못했다"며 "사업규모가 워낙 크다보니 이 프로젝트에서 발생한 손실이 회사전체 손익에 영향을 줬다"고 털어놓았다.
건설사 해외지원부 관계자는 "해외공사의 경우 국내에서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물가상승보상(에스커레이션) 조항이나 돌발상황보상(컨틴전시) 조항이 없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밖에도 환율, 금리, 건자재가격 변동은 물론 해당지역의 정치ㆍ종교ㆍ민족 갈등이나 사회문화, 비지니스 관례와 함께 특수 기후ㆍ토질 등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 해외진출 건설사들에게는 위협이 되고 있다.
최근들어 국내 건설사들의 해외진출이 경쟁적으로 이뤄지면서 해외시장에서 국내업체들끼리 과당경쟁을 벌여 수주단가가 낮아지는 것도 적지않은 리스크가 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