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대립으로 이번 임시국회에서 'FIU법' 처리가 무산되면서, 법안 개정을 기폭제로 지하경제 양성화 작업에 한층 박차를 가하고자 했던 과세당국 입장이 상당히 난처해지게 됐다.
가뜩이나 FIU법이 국회 논의과정에서 원안보다 상당부분 후퇴, 세수 파급력이 상당히 떨어진 상황에서 법안처리까지 늦어지면서 신규 세원확보에 '비상등'이 켜진 상황이다.
박근혜 정부 집권 초반 야심차게 추진코자 했던 지하경제 양성화 작업이 제대로 시작도 해보기도 전에 발목이 잡히는 꼴이 됐다.
□ 뒤틀린 복지재원 확보 계획…年 4.5조 '물거품' = 당초 과세당국은 FIU법 개정을 통해 연간 4조5000억원의 추가세원을 확보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5년 단위로 환산할 경우 22조5000억원이다.
당초 박근혜 정부는 복지공약 이행을 위해 135조원의 추가재원 확보계획을 제시했다.
구체적으로 135조원 가운데 82조원은 예산절감 등 세출구조조정을 통해 마련하고 나머지 53조원은 지하경제 양성화 등 세입확충 노력을 통해 확보하겠다고 공언했다.
이처럼 지하경제 양성화는 새 정부 신규 세수확보의 핵심 동력이나 마찬가지였고, 그 중심에는 FIU법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나 국회 논의과정에서 과세당국과 금융당국 사이 갈등으로 법안 내용이 상당부분 수정되고 여야 대립으로 법안처리가 지연되면서 당초 재원확보 계획은 상당부분 틀어지게 됐다.
□ FIU법 논란, 무엇이 문제인가? = 논란이 되고 있는 FIU법이란 금융정보분석원(FIU)이 보유한 현금거래 정보의 공개수위를 가늠하는 '특정금융정보 보고와 이용에 관한 법률'의 약칭이다.
당초 국세청은 FIU가 보유하고 있는 CTR(2000만원 이상 고액 현금거래)자료를 전면적으로 직접 열람하고, STR(1000만원 이상 혐의의심거래) 자료를 세무조사 이외 세원관리나 조세불복에 사용할 수 있도록 법안개정을 요구했다.
지금까지 국세청은 조세범처벌법 위반혐의(3조)에 따른 '사기 또는 기타 부정한 행위', 즉 고의적인 탈세혐의가 명백할 경우에만 FIU에 관련 금융정보를 요청한 뒤 내부 위원회 결정에 따라 열람할 수 있었는데, 이런 단계를 없애자는 것이 개정안의 핵심이다.
연간 4조5000억원이라는 세수확보 예측규모는 이런 '전면적인' 제도 변화를 전제로 산출한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지난 대통령직 인수위부터 국세청의 이 같은 제도개선 시도에 손을 들어주면서 적극적인 지원의사를 피력했다.
하지만 FIU 업무를 관장하는 금융당국의 반발은 예상보다 거셌다. 국세청이 CTR 자료를 내부 승인절차 없이 열람할 경우 개인정보침해, 세무조사 권한 남용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논란을 거듭한 끝에 개정안은 결국 수정됐다.
국세청이 조세법처벌법상의 범칙혐의 외에도 내부 과세자료 등 분석을 통해 탈세혐의가 의심될 경우 FIU에 관련 금융정보 열람을 요청할 수 있도록 바뀌었다.
FIU의 금융정보 제공 판단기준이 예전보다 넓어진 셈.
그러나 당초 전면공개를 규정했던 원안보다는 상당히 수위가 낮아진 것임에 틀림없다. 국세청 관계자는 "종전보다 금융정보 제공범위가 늘어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원안과 비교할 때는 상당 부분 범위가 줄어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개정안에 따른 세수효과에 대해 "현 시점에서는 특정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면서도 "다만 4조5000억원이라는 세수효과는 CTR 자료 전면공개를 기준으로 예측된 것이기 때문에 이보다는 확실히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고 강조했다.
□ 정치권 공방 '2라운드'…과세당국 '전전긍긍' = 엎친 데 덮친 격으로 FIU법은 여·야 공방으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게 됐다. 4월 임시국회 처리는 무산됐고, 정치권 이견이 좁혀지지 않을 경우 6월 국회 처리도 녹록치 않은 상황이다.
야권은 FIU법 개정안에 국세청이 금융정보를 열람한 뒤 6개월 내 당사자에게 의무적으로 열람여부를 통보하는 조항을 추가할 것을 주장하고 나섰다. 사생활 침해, 권한남용 우려를 불식시키는 차원에서 '시건장치'를 더 추가하자는 취지다.
여권은 이 같은 제한규정이 더해질 경우 조사자체에 차질이 빚어지게 되고, 법안이 유명무실 해질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금융정보 공개범위가 줄어 세수확보 실효성이 의심되고 있어 한 치도 물러설 생각이 없는 모습이다.
여·야 강대강 대립은 쉽게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실제로 본회의 전 여야 원내대표는 의견조율을 위해 협상테이블에 올랐으나, 입장 차이만 확인한 채 결렬됐다.
정치권 대립으로 법안 처리가 밀리면서 국세청과 관세청 등 과세당국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다. 금융정보 활용을 통한 지하경제 양성화 작업 추진이 더뎌지게 되면서 세수확보 계획에도 차질이 빚어지게 됐다.
국세청 관계자는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정보열람 여부 통보 문제는 전혀 예상치 못한 부분"이라며 "개정안 자체도 원안에서 후퇴했는데, 법안처리도 지연되면서 신규세원 발굴 작업도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이 커졌다"고 허탈해 했다.
관세청 관계자도 "어제 통과될 것으로 예상했는데 상당히 아쉽다"며 "CTR자료는 몰라도 STR자료의 정보열람 여부를 공개하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인다"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