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사건'에 대해 13일 박근혜 대통령이 '사과'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수석비서관 회의를 주재하며 "이번 방미일정 말미에 공직자로서 있어서는 안 될 불미스런 일이 발생해 국민여러분들께 큰 실망을 끼쳐 드린데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피해자와 그 가족, 재미동포들에 대해 사과하며 진실 규명과 함께 엄중한 문책을 약속했다.
윤 전 대변인의 직속상관인 이남기 홍보수석을 비롯해 허태열 비서실장, 박 대통령까지 조직 위계에 따라 당사자에서부터 대통령까지 거슬러 올라가 사과를 했다는 점에서 다행히(?) '책임회피'의 문제는 보이지 않는다.
다만, 과연 박 대통령의 '회의 사과'가 역대 대통령들이 사태 진화를 위해 한 '대국민 사과'와 견주어 볼 때 형식으로서 국민에 대한 '예(禮)'를 갖췄는지는 의문이다.
이와 관련 새누리당 신의진 원내대변인은 이날 '이명박 대통령도 미 소고기 촛불집회 때 직접 사과를 했는데, 지금도 대국민 사과를 할 사안 아닌가'라는 기자의 지적에 "이명박 대통령과 견주어서 할 필요가 없다. 대통령은 성격이 다 다르다"고 '대국민 사과'를 대통령의 성격 문제로 치부했다.
신 대변인은 "측근에서 모신 제 입장에서는 (오늘 발언은) 굉장히 세신 발언"이라며 "본인 입으로 한 것은 무조건 지키신다. 신뢰를 강조하고 오늘 정도면 이걸 다 지키겠다고 나오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국민 사과와 관련해 과거 대통령을 비교하기보다 이분의 평소의 말에 대한 책임성, 성격을 보는 것도 필요하다"며 "그분은 회의석상이든 기자회견이든 일단은 자기 입에서 국민에게 나간 것 아니냐. 그런 건 다 지키신다"고 대변했다.
신 대변인의 말대로라면 박 대통령은 한 번 말하면 지키는 '스타일'이니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은 민주주의 국가의 대통령으로서의 자세라고 할 수 있을까. 만약 박 대통령 역시 이같이 생각한다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의 발언이니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것은 '형식'을 바탕으로 하는 '예(禮)'에 어긋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역대 대통령들이 고민끝에 한 '대국민 사과'를 그저 대통령의 '호불호'에 따라 한 것에 지나지 않은 '취향'의 문제로 격하시킨 것이기 때문이다.
역대 대통령들이 측근 비리나 정책 실기로 국민적 비난이 비등할 때 청와대 춘추관에 직접 나와 하는 '대국민 사과'는 그만큼 국민의 '화'를 다독이는 한편,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고뇌에 찬 '결단'이다. 이를 통해 비로소 국민들은 권력에 대해 감시·견제의 날을 세운다. 그게 국민이 주인인 민주국가의 작동 원리의 한 단면이다.
전임 이명박 전 대통령도 지난 2008년 5월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대한 졸속협상으로 촛불시위가 일어났을 때와 측근들의 비리로 국민적 지탄을 받을 당시 논란은 많았지만 어쨌든 '대국민 사과'를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역시 정책 실기와 측근 비리 등으로 춘추관 기자회견 단상에 직접 올랐다. 앞서 김대중, 김영삼 더 거슬러 올라가 노태우, 전두환 전 대통령까지도 '형식'은 갖췄다.
대통령의 최측근인 대변인이 일으킨 초유의 '성추행 사건'에 대해 박 대통령은 수석비서관회의를 통해 비서관들에게 전달하는 '사과방식'을 택했다. 수석비서관회의를 직접 볼 수 없는 국민은 결국 언론을 통해 들을 수밖에 없다. 때문에 국민들에게 하는 '직접 사과'라고 보기 어려우며 '간접 사과'에 지나지 않는다.
아무리 '대통령의 성격이 다 다르다'고 해도 국민에 대한 사과는 국정운영을 책임진 국가원수로서 그 예와 형식을 갖춰야 한다. 그것이 국민이 아닌 당원중심으로 운영되는 일개 정당 대표가 아닌 이상 말이다.
또한, 박 대통령 역시 윤 전 대변인에 대해 책임이 누구 못지 않다는 점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대통령직 인수위 대변인 시절부터 '불통', '막말' 논란으로 새누리당내에서까지 반대했던 윤 전 대변인을 끝까지 청와대로 입성시킨 것은 박 대통령 자신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대한민국 역사상 전무후무한 정상회담 '성추행 사건'으로 세계적 조롱거리가 된 국가와 국민에 대한 명예 회복을 위해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와 재발방지 대책이 뒤따라야 한다. 그것이 측근의 '추문'에 대한 대통령의 최소한의 책임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