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공항이 세계 최고로 거듭나는데는 관할 세관인 인천공항세관의 눈물나는 희생과 아픔이 있었다. 세계에선 드물게 24시간 돌아가는 인천공항을 위해 세관 직원들은 밤잠도 포기하고 관세국경을 지키는데 애쓰고 있다.
하지만 여행객들은 관세국경을 지키려는 세관을 '세금만 빼앗으려는 곳'으로 인식한다거나 백화점이나 식당에서 대접받는 문화에 익숙해 세관 직원들에게 욕설을 퍼붓고 소란을 피우는 등의 일이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있다.
우리가 눈으로 보지 못하는 인천공항 화물청사와 국제우편물류센터의 세관 직원들은 일명 탁상행정, 철밥통 이미지로 굳어져 있는 공무원들과는 완전히 딴 세상의 사람들이다.
흡사 택배기사를 방불케 할 정도로 짐을 나르고 검사하고 잡아낸다. 그나마 낮에만 일하면 다행이지만 24시간 통관을 자랑하는 세계 최고의 공항답게 밤에도 일을 해야 한다. 3000명이 해야 할 일을 1/3수준인 1000명이 하고 있으니 1인당 업무량은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조세일보(www.joseilbo.com)는 하루 24시간 최일선에서 관세국경을 지키고 있는 인천공항세관의 현재 모습을 집중 조명한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①손님은 '왕' 문화…가슴 멍드는 관세 지킴이들 - 입국장편
②찬밥신세 '관세 지킴이'…사명감 하나로 버틴다 - 유치·출국장편
③인천공항은 시베리아 벌판?…꽃피는 5월, '덜덜' 떨며 마약 검사 - 화물·우편물편
◆… 깨끗하고 넓은 인천공항의 모습과 달리 여행객들이 맡기거나 압수당한 물건을 보관하는 유치·체화창고는 말 그대로 하얀 벽에 철제 칸막이만 덩그러니 있는 창고다. 그마저도 물건을 한가득 실은 카드가 여기저기 놓여있어 사람들이 이를 피해다녀야만 한다.
양주, 와인, 가방, 약, 쌀, 소세지…
입국장에서 여행객들과 실랑이를 벌이게 되는 물품들이다. 면세범위를 초과한 양주와 와인 등 주류를 둘러싼 세관 직원들은 세금 부과를, 여행객들은 세금을 피하려 쫓고 쫓기는 전쟁을 치른다.
위스키는 132%, 와인은 76%의 높은 세금을 물어야하기 때문에 여행객들은 필사적으로 세금을 피해보려 하지만 매서운 세관의 감시는 피해갈 수 없다.
결국 여행객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세금을 내거나 당장 세금을 낼 여력이 안 되면 물건을 세관에 맡긴다. 간혹 다음에 출국할 때 찾겠다며 세관에 물건을 맡기는 경우도 있다. 이를 찾아가지 않으면 '체화창고'로 옮겨지게 된다.
다만 짝퉁가방이나 검역을 통과하지 못하는 식품이나 약품 등의 경우는 유치되는 것이 아니라 체화창고로 옮겨가 폐기된다.
조세일보(www.joseilbo.com)가 인천공항세관을 찾았던 9일에도 막 도착한 비행기에서 거둬들인 물건을 실은 카트가 달려가고 있었다. 한 비행기에서 나온 물품만 해도 카트 한 가득이었다.
이들 물품은 유치창고로 옮겨가게 된다. 유치창고는 그 입구부터가 산만하다. 새로 들어올 물건들이 카드에 한 가득 쌓인 채 놓여 있는데 사람들이 이리저리 물건을 피해서 다녀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직원들은 수시로 물건의 품목, 번호 등이 빼곡히 적힌 종이를 들고는 그날 들어온 물건이 놓여있는 길목을 이리저리 피해다니며 물건을 일일이 확인한다.
이렇게 물건이 쌓여있는 길목을 지나면 곧바로 하얀 페인트칠을 한 벽면에 물건을 쌓아둘 철제 칸막이만 덩그러니 있다. 이것이 바로 여행객들이 오고가는 출국장이나 면세점, 입국장 등의 화려한 모습과 다른 공항의 이면이다.
◆…유치창고와 체화창고에 들어온 주류. 주류는 와인, 보드카, 중국술, 양주 등으로 구분돼 일일이 비닐포장을 한 후 보관된다. 이곳에 들어오는 물품의 상당수는 주류이며 식품과 약품도 그 비중이 높은 편이다. 아래쪽에 있는 물품은 압수된 약품과 짝퉁가방이다. 중국에서 들어온 약들은 대부분 폐기될 운명이 처한다. 짝퉁가방도 이곳에 들어온 이상 빛을 보기는 어렵다.
세관은 이렇게 유치된 물품을 월별, 품목별로 나눠서 보관한다. 물건이 상하거나 훼손이 가면 안되기 때문에 일일이 비닐포장을 한 뒤, 과세대상자의 신원과 과세대상의 물건을 적은 비표를 하나씩 부착해 보관한다.
이곳은 민원인들과의 직접적인 시비가 적은 곳. 하지만 간혹 물건을 찾으러 왔다 유치 보관료 때문에 얼굴을 붉히는 일도 종종 발생, 들어온 물건을 일일이 포장하고 기록하고 대조하는 작업도 만만치 않다.
적게는 하루 100여건에서 많게는 200여건, 월별로 치면 5000~6000건이나 되는 물품을 보관하다보면 물건을 분실하게 되지 않을까 늘 노심초사하게 된다.
◆…체화창고의 한 벽면을 가득 채운 약품들. 대부분이 중국산이며 이들은 성분미상과 반입금지 물품 등의 이유로 일정기간이 지난 후 폐기된다.
사기업에 밀린 출국장 사무실…"우리도 임대료 낸다고요"
출국장은 입국장보다는 그 규모가 적은 편이다. 입국장은 우리나라에 들어오지 못하는 물건이나 과세물건을 철저하게 단속하는 것에 반해 출국장은 마약이나 총포류, 도검류 같은 안전위해 물품만 차단하면 된다.
여행객이 고가의 물건을 해외로 가지고 나갔다가 국내로 들어올 때 과세되는 문제도 여행객 본인 스스로 책임을 져야하기 때문에 인원이 비교적 적은 것이다. 출국장에 배치된 세관 직원들은 33명으로 입국장에 배치된 268명에 비하면 인원이 적다.
하지만 출국장의 업무가 적어 입국장보다 인원이 적게 배치된 것이 아니다. 3000명이 필요한 업무를 인천공항세관 직원 1000명이서 나눠서 하다보니, 불가피하게 출국장에 인원이 적게 배치된 것이다.
그러다보니 출국장에 근무하는 직원들은 2인1조로 움직이지 못한다. 출국장에서 세관 직원들은 면세점 인도장과 부가가치세 환급(택스리펀드·tax refund)에 배치되는데 대개 혼자 나가 있어 업무에 대한 부담이 다른 곳보다 더 큰 편이다.
◆…부가세 환급(택스리펀드·tax refund)을 하는 세관 신고대. 인천공항 3층에 위치한 이곳은 세관 직원 1명이 근무를 하고 있으며 다른 곳보다 안내표지가 작아 잘 눈에 띄지 않는다. 빨간원으로 표시한 곳에는 '세관 업무'라고 작게 적혀있어 잘 눈에 띄지 않지만 그 옆에 위치한 음식점과 은행의 간판은 멀리서봐도 눈에 잘 띈다. 큰 간판 때문에 '세관 업무'라고 적힌 안내표지가 압도된 모습이다.
비행기가 몰리는 시각에는 혼자서 부가세 환급 업무를 처리해야 하는 것은 물론, 사람이 적을 때도 언제 부가세 환급을 받으러 여행객이 올지 몰라 항상 대기하고 있어야 한다.
다른 직원이 업무를 교대하고 나서야 출국장 사무실로 자리를 옮겨 인터뷰에 응한 안상욱 행정관은 부가세 환급대가 너무 구석에 있어 외국인들이 찾기 어려워 항의를 하는 것이 제일 어렵다고 토로했다.
실제 인천공항 3층에 있는 부가세 환급대(세관 신고대)는 바로 옆에 있는 음식점과 은행 간판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작은 안내표지에 데스크가 안쪽에 위치하고 있어 외국 여행객들이 찾기 어려운 구조다.
출국장 직원들이 쓰는 사무실 또한 인천공항 3층 정중앙에 위치하고 있었음에도 라운지를 만든다는 이유로 내쫓겼다. 이들이 있는 곳은 사무실이라고 하기에는 위치가 애매한, 복도에 임시로 문을 만들어 놓고 책상을 가져다 놓은 듯한 느낌이었다.
부가세 환급대와 출국장 사무실이 모두 구석에 있어 이용객들이 쉽게 찾을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다.
부가세 환급은 국내에서 물건을 산 외국인들이 출국할 때 부가세를 환급받는 제도로 이를 이용하는 여행객은 모두 외국인들이다. 때문에 부가세 환급대에 올 때면 대부분 넓디 넓은 공항을 이리저리 헤매다가 도착해 직원에게 화를 낸다는 것이다.
◆…출국장에 있는 면세점(上)과 부가세 환급을 하는 세관 신고대(下). 면세점은 넓고 깨끗한 반면, 세관 신고대는 작고 눈에 띄지 않는 편이라 외국인 여행객들의 항의를 자주 받고 있다.
또 세관 직원이 물건을 확인해야 부가세를 환급해줄 수 있음에도 물건이 없다고 막무가내로 환급해달라는 여행객이 있는가하면, 부가세를 세관에 달라고 떼쓰는 여행객도 많아 골머리를 앓고 있다.
원래 국세청 소관인 부가세 환급 업무를 관세청이 대신 하고 있기 때문에 세관은 물건 확인만 해줄 뿐, 부가세는 국세청에 가서 환급을 받아야함에도 외국 여행객들을 이를 잘 모르다보니, 세관에 돈을 달라며 항의를 하고 있는 것이다.
안 행정관은 "어떤 여행객은 '이러니 한국이 선진국이 안 되는 것'이라고 항의를 하는 경우도 있고 심하면 욕설까지 한다. 외국어를 다 알아들을 수 있진 않지만, 표정과 말투를 보면 우리를 욕하는 것은 알 수 있다"며 "입국장은 어떤 여행객이 내린다는 정보가 있지만 이곳은 여행객에 대한 사전정보가 없기 때문에 무방비로 당하는 경우가 많아 항상 긴장상태에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휴대품9검사관실 김남주 과장은 "우리도 공항공사에 임대료를 내고 있지만 사기업보다는 임대료를 많이 줄 수 없으니 밀려나고 있다"며 "관세국경을 지키는 세관의 업무가 중요하지만 사기업보다도 대접을 못받는 것이 현실"이라고 아쉬워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