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공항이 세계 최고로 거듭나는데는 관할 세관인 인천공항세관의 눈물나는 희생과 아픔이 있었다. 세계에선 드물게 24시간 돌아가는 인천공항을 위해 세관 직원들은 밤잠도 포기하고 관세국경을 지키는데 애쓰고 있다.
하지만 여행객들은 관세국경을 지키려는 세관을 '세금만 빼앗으려는 곳'으로 인식한다거나 백화점이나 식당에서 대접받는 문화에 익숙해 세관 직원들에게 욕설을 퍼붓고 소란을 피우는 등의 일이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있다.
우리가 눈으로 보지 못하는 인천공항 화물청사와 국제우편물류센터의 세관 직원들은 일명 탁상행정, 철밥통 이미지로 굳어져 있는 공무원들과는 완전히 딴 세상의 사람들이다.
흡사 택배기사를 방불케 할 정도로 짐을 나르고 검사하고 잡아낸다. 그나마 낮에만 일하면 다행이지만 24시간 통관을 자랑하는 세계 최고의 공항답게 밤에도 일을 해야 한다. 3000명이 해야 할 일을 1/3수준인 1000명이 하고 있으니 1인당 업무량은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조세일보(www.joseilbo.com)는 하루 24시간 최일선에서 관세국경을 지키고 있는 인천공항세관의 현재 모습을 집중 조명한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①손님은 '왕' 문화…가슴 멍드는 관세 지킴이들 - 입국장편
②찬밥신세 '관세 지킴이'…사명감 하나로 버틴다 - 유치·출국장편
③인천공항은 시베리아 벌판?…꽃피는 봄, '덜덜' 떨며 마약 검사 - 화물·우편물편
◆…인천공항우편세관이 위치한 국제우편물류센터. 이곳에는 연간 3900만건, 일 평균 12만9100건의 항공우편물이 들어오고 있다. 우편세관 52명의 직원들은 밤낮없이 우편물들을 일일이 검사하고 있다. 지난해 적발된 일반밀수는 47건, 금액으로 따지면 79억원이며 마약밀수는 109건으로 7억3000만원 상당이다.
아래에 있는 콘베이어 벨트 외에도 윗쪽에도 콘베이어 벨트가 있는데 정상으로 통과되는 우편물과 열어서 검사해야 할 우편물에 스티커를 붙이면 알아서 분류해 보낸다.
"너무 추워서 장갑 안에 비닐장갑을 끼고 일하다가 장갑을 벗으면 김이 모락모락 난다"
"머리에는 모자를 쓰고 얼굴에는 마스크를 쓰고, 손에는 장갑에 팔다리는 내복을 입어도 추위를 피할 수 없는 곳이 딱 하나 있는데 그곳이 발이다. 그래서 등산화를 사서 신는 사람들도 있다"
누가 들으면 흡사 강원도 최전방 부대에 나가있는 군인들이 물을 마시려는데 수통의 물이 얼어버렸다거나 추위를 피하기 위해 나름대로 썼던 방법 등을 무용담으로 얘기하는 듯하다.
그런데 이런 얘기가 인천 한복판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한다면 이를 믿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인천에도 강원도 산골처럼, 시베리아 벌판처럼 너무나 추운 곳이 있다. 볼펜이 얼어 글이 안 써지고, 생수통에 넣어 온 물은 그대로 얼어버리는 체감온도 20도의 맹추위. 그곳이 바로 인천공항의 국제우편세관과 화물청사다.
외국에서 온 화물과 국제우편물이 제일 먼저 도착하는 곳인 국제우편세관과 화물청사는 40만평의 부지를 자랑, 규모가 굉장히 큰 창고 같은 모습이다. 커다란 컨테이너 건물에 냉난방 시설은 꿈도 못 꾼다.
◆… 콘베이어 벨트 위를 쉴새없이 움직이는 마약탐지견(上). 마약 냄새를 맡으면 그 자리에 주저 앉는다. 마약탐지견이 보낸 우편물은 뒤로 보이는 엑스레이 검사대를 통과한다. 마약탐지견은 장시간 동안 냄새를 맡는 것이 불가능해 30분 일하고 쉬는 시간을 가진다.
마약탐지견이 훑고 지나간 자리 뒷편의 모습(下). 엑스레이 판독요원이 모니터로 우편물을 감시하고 세관 직원들이 일일이 눈으로 우편물을 확인한 다음 이상이 있는 것은 뒤로 빼내 직접 열어서 검사하고 이상이 없는 우편물은 주소별로 마련된 박스에 넣는다.
"네 짐을 속속들이 알고있다"…물샐 틈 없이 지킨다
대개 우체국이라고 하면, 건물 안에 접수창구가 있고 그 뒷편에는 우편물 분류작업을 하는 곳이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국제우편세관은 큰 공장의 콘베이어 벨트가 쉴새없이 움직이는 모습을 하고 있다.
5층 건물을 층수대로 나눈 것이 아닌 바닥부터 천장까지 뻥 뚫린 우편세관에는 총 1100m의 콘베이어 벨트와 12대의 엑스레이 검색대가 쉴새없이 돌아간다.
각국에서 들어온 우편물은 콘베이어 벨트 위에 실리면 마약 탐지견이 그 벨트 위에 올려진 물건들의 냄새를 샅샅이 맡는다. 안에 마약이 들어있다면 탐지견은 그 자리에 주저 앉아 마약이 있음을 알린다.
마약 탐지견의 예리한 후각을 통과했다고 해서 우편물들이 그대로 주인을 찾아가는 것은 아니다. 우편물들은 또 다시 엑스레이 검색대를 통과해야 하는데 이 때 이상이 발견되면 세관 직원들은 우편물을 직접 열어보고 안에 어떤 물건이 들어있는지 직접 검사한다.
◆…쇠막대기를 뜯어 손으로 검사하는 모습(上). 끝 부분의 모양이 몸통과 다른데 저 부분에 손잡이를 끼워넣을 수 있기 때문에 안전위해물품인 도검류가 아닌지 살펴보고 있다.
약품을 이온 스캐너에 넣는 모습(下). 약품이 마약이라면 기계가 반응한다. 만약 분해가 어려운 노트북 등의 전자기기에 마약이 담겨져 있다고 의심되면 우편물 겉면이나 해당 물품의 겉면을 훑는 것만으로도 마약이 감지가 된다.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기에는 우편물에 붙은 접착 테이프를 뜯어내고 안에 물건을 뒤적거리다 덮어버린다고 생각하는 것이 보통이겠지만, 이들이 물건을 살펴보는 것은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포장된 새 약품은 그냥 눈으로 확인한 후, 다시 우편물에 넣을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칼로 포장을 뜯어내 안에 있는 알약이나 가루를 꺼내 살펴본 뒤 마약을 탐지하는 이온 스캐너에 넣어본다. 만약 거기서 반응이 나타나면 마약인 것이다.
길다란 물건도 마찬가지다. 세관 직원들은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길이가 긴 물건은 도검류가 아닌지 의심부터 하는데, 조세일보(www.joseilbo.com)가 인천공항세관을 찾았던 날(9일)에도 길다란 쇠막대기가 들어와 있었다.
얼핏보면 그냥 쇠막대기처럼 보이겠지만 끝 부분이 다른 몸통에 비해 넓이가 좁았다. 세관 직원은 그것이 손잡이를 끼울 수 있게끔 제조가 됐다는 것을 금방 알아차렸다. 보통 사람이면 놓칠만한 작은 것도 세관 직원들의 눈은 피해갈 수 없다.
위조신분증과 위조문서도 이들의 눈을 벗어날 수 없다. 대개는 설마 서류까지 다 뜯어볼까 생각하겠지만 세관에서는 서류까지 다 뜯어 종이 하나하나를 일일이 확인한다. 심지어는 신분증에 돋보기까지 대고 위조됐는지 여부를 판단한다.
우편물 중에는 서류봉투에서부터 사이즈가 큰 우편물까지 다양했는데, 이들은 관세 공무원이라고 하기 무색할 정도로 큰 짐을 들었다놨다 하며 검사하고 옮기는 작업을 묵묵히 하고 있었다.
'탁상행정'이란 말을 이곳 직원들에게 붙였다가는 그렇게 말한 사람이야말로 직접 보지 않고 내뱉은 말을 한 사람이 되기 십상이었다.
하지만 추위는 이들의 손을 얼게 만들어버려 일을 하기 어렵게 만든다. 규모가 굉장히 큰 컨테이너 건물이라 냉난방 시설은 언감생심. 관세청에서 점퍼와 장갑, 양말 등을 지급해주지만 바깥보다 서늘한 실내 기온에 꽃피는 5월에도 두툼한 조끼와 장갑을 낀 직원들도 눈에 띄었다.
◆…신분증의 위조 여부를 확인하는 모습(左). 눈으로만 봤을 때는 알 수가 없어 돋보기를 사용해 일일이 확인한다.
포장된 약품을 칼로 뜯어서 직접 꺼내 확인하는 모습(右). 중국에서 오는 약품 중에는 마약이나 인육캡슐, 웅담분(粉) 등이 들어있을 가능성이 커 일일이 꺼내 확인한다.
이에 더해 요즘 유행하는 해외직구매 덕분에 물량이 대폭 늘어난 것도 세관 직원들을 고생스럽게 하고 있다.
2008년 665만7000건에 불과하던 특송화물은 2012년 1131만1000건에 이르렀다. 이 중 해외인터넷쇼핑으로 인한 우편물은 2012년 기준 7189건으로 2008년 1955건에 비해 42%가 늘었다.
특송화물에 더해 항공우편물까지 합치면 그 규모는 엄청나다. 일 평균 12만9100건을 일일이 살펴봐야 한다. 이들의 물샐 틈 없는 감시로 지난해에는 47건 일반밀수와 109건의 마약밀수를 적발했다.
마약검사를 주로 하는 우편검사과 조종훈 관세행정관은 "이곳은 겨울에는 춥고 여름에는 덥고, 마치 공장 같다. 겨울에는 발이 얼어버릴 정도다. 기계 소음도 심해 힘들다"며 "두 시간 이상 엑스레이 검사대에서 일하면 눈이 아파서 못 할 뿐더러 야간에는 피곤한 상태에서 일을 하니까 몸이 견디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세금을 부과하는 업무를 하는 우편통관과 전영봉 관세행정관은 "FTA로 인한 협정세율 문제 때문에 민원이 많이 들어온다. 기업 같으면야 아니까 쉽게 얘기할 수 있지만 요즘 늘어나는 해외인터넷쇼핑은 개개인이기 때문에 설명을 해도 잘 모른다"며 "심지어는 욕을 하거나 세관 직원이 불친절했다고 인터넷에 글을 올리는 경우도 있지만 우리는 원칙대로 해야하기 때문에 왜 세금이 부과되는지 설명해주는 수밖에 없다"고 털어놓았다.
뒤바뀐 '갑'과 '을'(?)…"기업이 필요하다면 언제나 달려간다"
요즘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는 것이 바로 '갑의 횡포'다. 남양유업이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대리점주에게 부당행위를 했다는 것이다.
대개 수출입을 하는 기업들에게 수출입을 승인해주는 세관은 그야말로 '갑' 중의 '슈퍼 갑'일 것 같지만, 실상은 그 반대다.
인천공항의 자랑거리 중 하나는 바로 24시간 돌아간다는 것이고, 때문에 기업들은 밤이건 주말이건 관계없이 세관 직원들에게 빨리 통관을 시켜달라고 요구하는 일이 잦다.
이 때문에 229명의 수출입청사 직원들은 24시간 대기 상태여야 한다. 밤이 늦었다고 통관 심사를 거부할 수도 없다. 화물청사에 온 것은 검사를 받겠다는 뜻이기 때문에 밤이라도 무조건 검사를 해야 한다.
그렇다고 기업들이 물건을 들고 찾아오는 것도 아니다. 세관 직원이 직접 업체별로 나눠져 있는 화물창고로 가서 물건을 일일이 검사해야 하는 것이다.
마음 같아선 수입되는 물건 전체를 검사하고 싶지만 사정은 녹록치 않다. 일 평균 드나드는 화물량은 6629톤에 이르는데 창고별로 2명씩 나가있는 세관 직원들이 이를 다 검사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건물 10층 높이의 화물창고. 이곳에는 엄청난 양의 화물이 쌓여있는데 모두 시급을 요하는 것들이다. 지게차들이 수시로 드나들며 통관이 된 짐들을 빼내가고 있다. 바닥에는 노란색 줄이 그어져 있는데 그것을 기준으로 검사를 완료한 화물과 검사 전인 화물을 구분한다.
조세일보(www.joseilbo.com)가 찾은 대한항공 화물창고만 해도 그 물량이 엄청났다. 10층 높이의 컨테이너 건물이 바닥에서부터 천장까지 뚫려있고 그 중간에는 물건을 분류하는 기계가 놓여있었다.
바닥에는 화물들이 가득 쌓여있고 이를 나르는 지게차들은 시간에 쫓긴 탓인지 사람을 보고도 피하지 않았다. 사람이 먼저 지게차를 보고 피하는 것이 법인 곳이었다.
더구나 이곳은 우편세관보다 규모가 더 큰 탓인지 추위와 더위에 더욱 취약했다.
대한항공 화물창고에서 만난 수입1과 배권문 관세행정관은 "업체 직원들은 자신의 물건만 통과되면 가버리면 그만이지만 우리는 추운 곳에서 계속 검사를 해야 한다"며 "관세청에서 방한복을 줘도 발이 시려워서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등산화를 가져와 신기도 한다"고 말했다.
배 행정관은 "들어오는 물건을 많지만 한 창고 당 세관 직원이 두 명씩 나와있어 전체를 다 검사하지는 못한다. 야간에는 이 숫자마저 줄어든다"며 "그래서 선택과 집중을 해 전체 화물의 3.2% 정도만 검사를 한다"고 설명했다.
◆…화물창고의 모습. 노란색 선을 기준으로 검사를 완료한 화물인지 아닌지를 구분하기 때문에 검사를 완료하기 전까지는 노란색 선 밖으로 물건을 빼낼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