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오전, 19명의 대기업 CEO들이 빗길을 헤치고 서울세관을 찾았습니다.
대기업 CEO들이라 하면, 으리으리한 호텔 등에 모여 회동을 하기 마련이라고들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일텐데요.
이날(18일)만큼은 아침부터 CEO들이 서울 논현동에 있는 서울세관으로 모이는 진풍경이 펼쳐졌습니다. 바로 관세청장과 대기업 CEO들과의 간담회 때문이었는데요.
이 자리는 FTA 원산지 검증이 강화되면서 수출대기업들에게 원산지 검증제도를 어떻게 대비해야 할지, 기업들의 어려운 점은 무엇인지 듣고 개선하기 위해 관세청에서 마련한 자리입니다.
FTA를 맺은 국가 간 낮은 세율이 적용되기 위해선 기업들이 원산지 검증을 해야 합니다. 실제로 외국에서 우리나라 수출물품에 대한 원산지 검증 요청도 많아지고 있지만 관련 서류 준비가 상당히 부실한 것이 현실이라고 합니다.
기업들이 원산지 검증으로 낮은 세율을 적용받아 혜택을 받고는 나중에 서류가 부실해 관세를 토해내는 일이 부지기수라고 하는데요.
이를 가만히 두고 볼 수 없던 백운찬 관세청장은 직접 이런 자리를 마련해 기업의 어려움을 듣고 현장에서 개선하겠다고 시원하게 약속을 했습니다. 민관 합동으로 하는 간담회에서 청장이 먼저 "즉석에서 어려운 점을 해결하겠다"고 말하는 것은 보기 드문 일입니다.
기업들이 이 자리를 어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간파했는지 백 청장은 "기업들이 관세청이나 국세청 등 관(官)을 꺼려하는 것을 익히 알고 있다"며 "하지만 원산지 검증제도가 초창기인만큼 기업들이 많이 힘들 것이다. 그런 어려움을 관세청과 함께 헤쳐나가길 바란다"고 당부, 분위기를 풀어내기도 했습니다.
대기업 CEO들도 처음에는 어려웠지만 백 청장의 화통한 모습에 비공개 간담회에서는 요구사항들을 거침없이 쏟아냈다고 전해졌는데요.
A업체 CEO는 "협력업체(하청업체)가 원가정보가 포함된 원산지 소명 자료 제공을 꺼리고 있어 원산지 증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를 해결해 달라"고 호소했습니다.
이를 들은 백 청장은 즉석에서 "협력업체가 세관에 직접 자료를 제출하도록 유도하겠다"는 답변을 내놨습니다.
B업체 CEO는 "아직은 미개척지이지만 잠재성이 높은 국가에 관세청 주재관을 파견해달라"고 요구, 백 청장은 "관세관 확충을 위해 노력 중이다. 관계 부처에 건의하겠다"며 답하는 등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고 합니다.
딱딱한 자리일 것이라고 예상하고 서울세관을 찾았던 대기업 CEO들은 화통 털털한 백 청장의 모습에 오히려 할 말을 다해 속이 후련하다는 반응을 보였다는 후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