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모두발언 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 박 대통령은 이날 "서민, 중산층 지갑을 얇게 하는 것은 재검토하라"며 세법개정안 수정을 지시했다. (사진제공: 청와대)
근로소득공제율, 세액공제율 등 손질 유력
'중산층 기준' 놓고 정치권 논란 증폭될 듯
교육비, 의료비 등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개편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정부 세법개정안을 놓고 '중산층 세금인상' 여론이 고조되자, 지난 12일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나서 "서민 지갑을 얇게 하는 것은 재검토하라"며 사실상 '수정안' 마련을 지시했다.
이에 따라 사상 초유로 세법개정안 공식 발표 이후 불과 4일 만에 수정안 계획을 발표한 세제당국이 과연 어떤 대안을 제시할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박 대통령의 지적 이후 곧바로 당일 저녁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서민·중산층의 세 부담이 늘어나지 않도록 세법 전반에 대해 원점에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 근로소득공제율 재조정, 세액공제 차등적용 유력 = 현재 정부와 여당은 세제개편에 따른 소득세 부담 증가 소득기준을 3450만원에서 5000만원대 이상으로 높이는 방안을 협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 부총리는 구체적으로 소득기준을 얼마까지 올릴지 확답을 피했지만, 여권에서 중산층들은 가급적 세금 인상 범위에서 빼야한다는 의견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이 기준을 높이는 방안이 유력한 상황이다.
참고로 기획재정부는 현재 중위소득을 고려한 OECD 기준을 참조, 연소득 '5500만원 이상'을 중산층으로 판단하고 있다.
따라서 이 기준을 전후로 세 부담 증가·감소 구간조정이 유력한 상황이다.
문제는 어떤 방식으로 세금 부담 범위를 재조정하느냐 문제인데, 정부 안팎에선 근로소득공제율과 세액공제율을 재조정하는 방식이 거론되고 있다.
우선 근로소득공제는 근로자 필요경비 성격의 공제제도로 총급여 일부를 과세표준 계산에서 제외시켜 주는 방식인데, 현재 ▲500만원 이하 80% ▲500~1500만원 50% ▲1500~3000만원 15% ▲3000~4500만원 10% ▲4500만원 초과 5%로 설계된 상태다.
정부는 당초 세법개정을 통해 이 기준을 ▲500만원 이하 70% ▲500~1500만원 40% ▲1500~4500만원 15% ▲4500~1억원 5% ▲1억원 초과 2%로 바꿀 예정이었다.
근로소득공제율이 적용되는 소득구간을 조정하고 전반적으로 공제율을 3~10%p 내려 소득과 관계없이 세금 부담을 좀 더 높이는 것이 핵심이다.
하지만 서민, 중산층 부담을 줄이라는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4500만원 이하의 근로소득공제율을 그대로 유지시키거나, 4500~1억원 소득구간을 좀 더 세분화하는 방식이 거론되고 있다. 근로소득공제율을 높일 경우 과표가 낮아져 세 부담이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
또 다른 방법은 당초 제시한 세액공제율을 일부 소득기준에 차등적용 하는 방식이다.
당초 정부는 교육비, 의료비, 기부금 등의 세액공제율을 15%, 연금저축 및 보장성보험료 등의 세액공제율을 12%로 설정했는데 소득 5000~7000만원 이하 서민·중산층에 공제율을 더 높여 소득세 부담을 낮추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기재부에 따르면 세 부담이 오르는 기준을 총급여 5000만원으로 올릴 경우 186만5400명, 총급여 7000만원을 기준으로 할 경우 323만4400여명의 근로자들이 세금 인상범위에서 제외되며, 약 3000~6000억원의 세수(稅收)가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13일 오전 최고위원회의를 주재하면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는 김한길 민주당 대표. 민주당은 정부의 세법개정안을 중산층 세금폭탄으로 규정, 이날 오후 서울시청 앞에서 세제개편안 관련 토론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사진: 김용진 기자)
□ 중산층 범위 놓고 정치권 대립각 예고 = 하지만 정부와 여당이 협의를 통해 수정된 세법개정안을 제시하더라도 야권의 반발이 수그러들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민주당은 이미 별도의 소득세제 개편안을 제시한 상황이다. 구체적으로 현재 38%의 소득세 최고세율이 적용되는 과표구간을 현행 3억원에서 1억5000만원으로 낮추는 방안을 제시했다. 소득 상위 2% 이내 고소득층의 세 부담만 올리자는 것이 개정안의 핵심.
하지만 정부는 이 같은 소득세제 개편의 경우 그렇지 않아도 세금 부담 비중이 높은 고소득층에 대한 역차별이며 세제 정상화에 어긋난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특히 과표구간 조정은 세율인상의 또 다른 방식이나 마찬가지 효과여서 당초 박 대통령이 공언한 방침과도 다르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정부 여당과 야권은 각각의 소득세제 개편안을 놓고 연말 세법심의 과정에서 치열한 격론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세법개정을 통한 세수효과는 각각 연간 1조2000~3000억원대로 비슷한 수준(정부 수정안 약 1조원대로 예상)이지만 이 부담을 전 소득계층에 골고루 나누느냐, 상위 고소득층에 국한시키느냐가 핵심 쟁점인 상황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정치권은 중산층 기준 논란에 휩 쌓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부는 현재 연소득 5500만원을 중산층으로 보고 있는데 부양가족을 고려할 때 이게 과연 타당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야권은 부양가족을 고려할 때 적어도 3~4인 가족 기준으로 정부 기준 중산층 기준은 물가 등을 고려할 때 턱없이 낮다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는 지난 12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이번 협의과정을 통해 현재 국민소득 2만3000불 시대 중산층 개념을 새롭게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밝히는 등 향후 정치권 내부에서 중산층 기준을 놓고 치열한 논쟁이 예상되고 있다.
이와 함께 향후 국회 조세소위 논의과정에서 소득세제 이외 법인세, 양도소득세 및 상속증여세 등 재산세제 분야와 관련해서도 여야 정치권과 정부사이 격론이 예고되는 상황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