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운전 기사 A씨는 명절을 앞두고 깊은 한숨을 쉬었습니다. 불경기로 인해 대리운전을 찾는 손님들이 줄어들면서 추석 때 부모님께 드릴 용돈마저 부담으로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부업거리를 찾던 그에게 때마침 괜찮은 일거리가 들어왔습니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동창 B씨가 조상 묘를 이전하면서 묘지정리를 함께 해줄 사람을 찾은 것입니다.
다음날 곧바로 A씨는 친구를 태우고 강원도 원주로 향했습니다. 일당 20만원이면 쏠쏠하다는 생각에 먼 거리도 집 앞처럼 느껴졌습니다.
문제는 벌초를 하던 와중에 발생했습니다. 들뜬 마음에 무리하며 일을하던 A씨가 건드린 상석이 하필이면 친구 분의 다리 위로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곧바로 병원으로 향했지만 담당의사는 B씨에게 좌측 정강이 뼈 골절상 진단을 내렸습니다. A씨 입장에선 용돈을 벌려다 오히려 병원비까지 물어주게 될 상황이 닥친 것입니다.
병원비 문제로 연신 고민만 하던 A씨는 문득 한 달 전 가입한 보험이 생각났습니다. 사고로 인해 타인에게 피해를 입힌 경우도 보상이 된다는 약관이 떠오른 것입니다.
하지만 일반상해를 당하면 최고 1억원까지 보장해 준다며 큰소리치던 보험사의 답변은 냉담했습니다.
벌초 도중 일어난 일은 약관에서 보장하는 '일상생활에 기인하는 사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또 보험사는 A씨의 본업이 대리운전인 만큼 '직무수행에 기인하는 사고'로도 볼 수 없다는 입장을 전해왔습니다.
억울해진 A씨는 금융감독원 금융분쟁조정위원회에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습니다.
위원회는 보험 약관에서 '일상생활'이나 '직무'의 범위를 명확히 정의하지 않은 점을 지적, 약관의 뜻이 명백하지 않은 경우에는 고객에게 유리하게 해석을 해야 한다는 대법원의 판례(대법원 2010. 12. 9. 선고 2009다60305 판결)를 고려해 A씨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또 친구 B씨가 '주말에 잠깐 일하고 용돈이나 챙겨가라'며 가벼운 부업으로 제의한 일인 만큼, 이 사고를 평상시가 아닌 위기시 혹은 비상시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 사건으로 인해 발생한 병원비 일체를 지급하라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