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임한 조세심판원 상임심판관들이 업무 연관이 깊은 민간의 법무법인 및 회계법인에 다수 취직한 사실이 드러났다.
현행 공직자윤리법은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를 운영, 퇴임한 관료의 재취업 시 신고를 하도록 하고 있으나 이러한 취업을 제한하지 않는 것은 문제가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 정무위원회 민주당 김기식 의원(사진)이 14일 조세심판원 자료를 분석한 결과, 상임심판관 중 약 70%는 퇴임 직후 대형 법무법인이나 회계법인의 고문으로 취업했다. 재취업자 수를 기준으로 하면 약 85.7%에 달한다.
또 이들이 속한 법무법인 및 회계법인 중 5곳은 전체 합동 회의의 3분의 1에 가까운 사건을 수임한 사실이 발견되기도 했다.
조세심판원이 국무총리실 소속으로 변경된 2008년부터 2013년 8월까지 퇴직한 상임심판관은 모두 11명. 이 중 기획재정부로 자리를 옮긴 2명을 제외하면 9명 중 6명은 퇴임 해에 즉시 김앤장 법률사무소, 율촌, 삼일회계법인에 고문으로 취업했다.
조세심판원장을 지낸 허종구 세무사와 상임심판관 출신 백종한 세무사는 개인사무실을 열었고, 이당영 심판관은 산은캐피탈의 상근감사위원으로 근무중이다.
조세심판원에 따르면 올해 6월 공직자윤리법 개정 이전 이들 법무법인과 회계법인은 취업제한 대상기업에 포함돼 있지 않다.
그러나 2008년 이후 합동 회의에 상정된 202건의 소송 현황을 분석한 결과, 이들 6명의 상임심판관 출신이 소속된 5개 법무법인·회계법인은 전체 사건의 27%가 넘는 56건을 수임했다.
합동 회의 상정 사건 중 1건이라도 수임한 법인은 모두 19개이며, 이들이 전체 202건 중 100건을 수임했다.
더군다나 상임심판관 소속 5개 법인들은 이 중 56건을 수임해 심각한 편중 현상을 보이고 있다.
김앤장 법률사무소가 19건으로 가장 많았고, 삼일회계법인 15건, 율촌 14건 순으로 이들 3개 법인은 전체 수임 사건의 18.8%, 법인 수임 사건의 48%를 차지하고 있다.
조세심판원 자료에 따르면 합동 회의에 상정된 뒤 납세자의 주장이 다시 인용된 경우 과세가 취소되거나 과세금액이 축소, 총 136건이 다시 납세자에게 유리하게 결론이 내려졌다.
특히 고액의 사건일수록 대형 법무법인·회계법인이나 국세청 출신의 세무사가 수임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김 의원 측 설명.
합동 회의에 상정된 사건 중 대부분은 과세금액이 1억원 이상이다. 172건(85.1%)이 1억원 이상의 사건이고, 이 중 100억원 이상의 사건은 37건이다.
100억원 이상의 사건 중 합동 회의에 상정된 사건의 인용률은 78.4%(37건 중 29건). 평균 인용률 67.3%를 웃돈다.
실제로 상임심판관 출신이 속한 5개 법인이 37건, 개인(세무사, 변호사, 회계사)이 49건을 대리했는데, 이 두 그룹이 합동 회의에 상정돼 인용한 사건의 63.2%(136건 중 86건)를 차지하고 있다. '전관의 힘'이 직간접적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컸다는 게 김 의원의 주장이다.
김 의원은 "설령 법 위반이 아니더라도 국세행정에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한 조세심판원 상임심판관들이 퇴임하자마자 대형 법무법인, 회계법인에 취업한 것은 고위공직자로서의 바람직한 처신이 아니다"고 비판했다.
이어 그는 "이는 전관예우에 대한 양쪽의 기대가 일치했기 때문이라고 의심하기 충분하다"며 "판검사들은 개업지 제한 조치를 둬 전관예우의 가능성을 배제하고 있지만 조세심판원 상임심판관들은 이런 조치가 없다. 일정 기간 조세심판원 사건 수임을 제한하는 등 보완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