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의 라면, 삼양라면이 올해로 출시 50주년을 맞았다.
라면은 한국전쟁 이후 만성적 식량부족에 허덕이던 60년대 당시 국민들의 허기진 배를 채워준 고마운 선물이었다.
반세기가 흐른 지금까지도 국민들의 사랑을 받으며 끊임없이 변신을 거듭하고 있는, 우리 식생활史에 한 획을 긋고 있는 라면은 당시 국민들의 배고픔을 해결하고자 고심했던 한 기업가의 사명감과 열정으로 탄생됐다.
전중윤 명예회장, 남대문시장 ‘꿀꿀이 죽’ 보며 라면 도입 결심
삼양라면의 태동은 삼양식품 전중윤 명예회장이 60년대 초 우연히 남대문 시장에서 그 당시 배고픈 서민들이 한 끼 식사로 먹을 수밖에 없었던 5원짜리 ‘꿀꿀이 죽’을 사 먹기 위해 장사진을 친 모습을 목격한데서 비롯됐다.
전 회장은 과거 일본을 방문했을 때 라면을 시식했던 것을 기억해 내고 이것이야말로 국내 식량문제를 해결할 유일한 길이라고 판단했다. 정부 관련 부처를 설득, 어렵게 5만불을 배당 받아서 일본의 라면 제조회사 묘조식품(明星食品)을 찾아갔다.
당시 라면 제조기술은 일본에서도 신기술로 여겨지던 상황. 수차례의 거절에도 불구 끈질긴 설득에 감동한 묘조식품 사장은 기계와 핵심기술 등을 전수해주고 관련 설비를 도입, 마침내 1963년 9월 15일 국내 최초로 라면을 탄생시켰다.
◆…1963년 9월 최초로 출시된 삼양라면 제품... 삼양식품 제공
이렇게 탄생된 첫 라면의 가격은 100g, 10원. 하지만 전 회장의 대체 식량으로서의 라면에 대한 기대와 식량 부족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사명감은 국민들의 냉담한 반응에 첫 번째 시련을 맞는다.
오랫동안 미곡중심의 식생활이 하루아침에 밀가루 식품으로 바뀌기란 쉽지 않았다. 심지어 라면을 옷감, 실, 플라스틱 등으로 오해한 시민들도 있었다.
위기의식을 느낀 회사의 전 직원과 가족들은 1년 이상 직접 가두판매에 나섰고 극장·공원 등에서 무료시식 등의 행사를 치루며 시민들에게 접근해 갔다.
그 결과 우리 입맛에 맞춘 국물과 면발이 밥과 국에 친숙한 소비자들의 입맛을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때마침 1965년 정부의 식량 위기 해결을 위한 혼·분식 장려 정책이 나오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이후 삼양라면은 10원으로 간편하게, 그리고 영양 면에서도 부족함 없이 한 끼 식사를 해결할 수 있다는 최대의 장점을 발휘하면서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가기 시작했다.
삼양식품이 쓴 최초의 역사들... 라면의 현재 위상 정립의 초석 제공
초기의 라면 맛은 일본 묘조식품에서 기계를 도입해 그대로 제조하였기 때문에 맛이 한국인의 입맛에는 익숙하지 않았다. 면발의 끈기정도와 스프가 풍겨내는 기호의 차이가 현저히 달랐기 때문이었다.
삼양식품은 면의 끈기와 스프의 개선이 우선이라고 판단, 1966년 초 면과 스프 실험실을 발족시켰다. 이 실험실은 연구실로 확장되면서 꾸준한 연구 개발을 통해 품질 개선과 함께 다양한 제품들이 출시되기 시작했다.
1965년 ‘곡면’, 1967년 ‘미니라면’에 이어 1969년부터는 본격적인 제품다양화 시대로 접어들게 된다. 1969년 7월 한국인의 식생활 습관에 맞는 담백한 ‘칼국수’는 단일 품목으로 그 해 매출의 1%를 차지할 만큼 대 히트를 치며 1970년 삼양식품은 종합식품업체로 발돋움하는 계기를 이루게 된다.
1970년 ‘삼양짜장면’과 최초인스턴트 냉면인 ‘삼양냉면’, 그해 10월에는 ‘삼양쇠고기면’을 개발한데 이어 ‘삼양울면’ 등 연속적으로 신제품을 선보였다. 특히 그 해 11월에는 5개들이 삼양쇠고기면 덕용을 내놓아 인기를 끌었다.
삼양식품 관계자는 “당시 라면의 선풍적인 인기로 군대, 식당, 학교 등 라면으로 단체급식을 하는 곳이 증가해 일일이 라면봉지를 뜯는 번거로움을 해결해준 것이 덕용라면”이라며 “이 제품은 조리 시간단축과 요리의 간편화 효과로 대단한 인기를 얻었으며 지금의 5입 멀티 봉지라면의 시초가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업계 최초로 출시된 삼양 컵라면을 아이들이 시식하고 있는 모습
이 밖에도 ‘카레라면’, ‘특제라면’, ‘어린이라면’ 등 수많은 신제품을 내놓았고 명실공히 종합식품업체로서의 발판을 굳히게 된다. 특히 1972년 3월 삼양식품은 업계 최초로 끓인 물만 부어 3분후에 바로 먹을 수 있는 ‘컵라면’을 출시해 시장을 놀라게 했다.
해외 수출로 국부 창출에도 기여, 세계 속 삼양라면 위상 높여
삼양식품은 만성적인 식량부족 극복과 함께 국민들의 식생활 수준을 향상시키는데 선도적인 역할을 담당하고자 한 창업이념 아래 1960년대에는 주로 내수산업으로서의 기반 확충에 전념했다.
이후 1970년대에는 정부의 수출제일주의정책에 부응하는 한편, 세계를 향한 종합식품회사로 발돋움하기 위해 삼양식품 제품의 해외진출을 적극 모색하게 된다. 당시 월남전 파견 국군 장병에 대한 군납을 제외한 본격적인 수출은 70년대에 와서 이루어졌다.
1970년대 이후 삼양식품의 수출실적은 계속적으로 향상되었고, 특히 삼양 USA의 설립 등 수출진흥체제를 본격 구축함으로써 ‘세계 속의 삼양식품’으로서의 기반을 다지게 된다.
1969년에 라면 26만 상자가 월남(베트남)에 수출된 것을 효시로 일본, 동남아 지역과 1972년 8월 미 코리아 코퍼레이션과 50만 달러의 수출계약을 체결함으로써, 미주지역 진출에 성공, 이후 라면 류 주력 수출처가 됐다.
◆…1970년대 삼양식품의 주요 라면 수출품
당시 삼양식품 제품의 수출국들은 베트남, 미국, 호주, 일본, 캐나다, 싱가포르, 스페인, 네덜란드, 프랑스, 서독, 브라질 등이며 특히 1980년 이후 일본시장 진출은 괄목할 만한 일이었다.
당시 일본 언론사들은 ‘즉석라면, 한국으로부터 상륙’, ‘한국의 즉석면 호황판매’ 등을 보도하면서 일본 라면업체들이 당혹감과 함께 경계의 반응을 나타내고 있다는 기사들이 게재되기도 했다.
삼양식품의 1969~1980년까지의 총 수출액은 784만 3749달러, 국가별로는 베트남이 약 272만 달러, 미국이 267만 달러, 동남아ᆞ·중동지역이 51만 달러, 기타 지역이 120만 달러로, 달러가 귀하던 시절 외화벌이를 통한 국부 창출에도 기여했다.
전중윤 명예회장의 열정과 사명감으로 탄생한 라면은 반세기가 지난 지금 국내 시장 규모 약 2조원, 전 세계 120여 개국에 수출되며 음식 한류를 이끌고 있는 라면의 위상을 만드는 초석이 됐다는 것이 업계의 평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