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체득한 '감성경영' 후배들과 나누고 싶다"

"자기 역할 확실히 하고 남과 차별화된 블루오션 찾아야"

42년의 SK그룹 생활을 마감하고 지난 8월 신한회계법인 상근고문으로 부임한 신헌철 전 SK(주)  부회장은 그간 일을 하면서 몸소 체득한 값진 경영노하우를 후배들에게 전수하기 위해 ‘마라톤감성경영연구소’를 열었다.

독실한 기독교신자인 신 대표는 “나와 같은 평범한 사람에게 SK그룹은 15년 동안 세 개의 회사를 맡겼다. 그동안 내게 주신 은총과 나의 작은 능력을  나눠 줄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경영을 마라톤에 비유했다. 쉰다섯 살이던 2001년 10월 춘천마라톤에서 시작하여 2013년 10월 춘천마라톤에 이르기까지 36번째 풀코스 마라톤을 완주한 그는 “마라톤은 우리 인생경로와 똑같은 ‘자기완결형’ 운동이며 무엇보다 끊임없는 도전의식과 패기가 있어야 하고 인내심과 고통이 따르는 점에서 경영관리와 동일하다”고 설명했다. 연구소명칭에 마라톤을 넣은 이유도 여기에 연유한다.

그는 SK(주) 대표이사이던 2007년도에 전 직원5500명 중 2143명의 임직원과 15권으로 이루어진 ‘로마인 이야기’를 함께 읽고 독후감을 매달 한권의 책으로 펴내는 등 지성과 감성경영을 통해 회사를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이를 바탕으로 소버린과의 경영권분쟁, 인천정유 기업합병, SK(주)를 지주회사로 출범시키는 등 굵직한 현안을 해결했다. 무엇보다 본사와 대전에 사내유치원을 만들고 사회단체와 함께 김장김치 담그기 행사를 가졌던 것이 가장 기억나는 일이라고 회상했다.

신 대표는 "직장 생활에서 중요한 것은 자기역할을 확실히 하며 남과 다른 차별화를 통해 나만의 블루오션 영역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초심(처음처럼)을 일관되게 유지하면서 상대방을 존중하는 자세"라고 강조했다.

이어 “대기업도 지금보다 더 많은 사회적 책임을 실천해야 한다. 그것을 제대로 못하거나, 여전히 소홀히 하는 기업이 많으니까 반기업정서가 늘어난다”며 “기업 스스로가 나쁜 게 아니라 나쁘다고 일반인들이 인식하도록 계기를 만든 것은 기업스스로 돌아보아야 할 책임”이라고 말했다.

Q. 평생을 SK그룹에 근무하며 SK그룹 발전에 누구보다 헌신했고 사회공헌활동도 활발히 했다. 최근 신한회계법인 상임고문을 맡으면서 마라톤감성경영연구소를 설립했는데 설립한 배경과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A. 회사를 42년 동안 다녔으니 꽤나 길게 한 편이다. CEO(최고경영책임자)도 오래했다. 회사를 떠나게 되니 법률회사나 회계법인 등에서 와달라는 요청을 받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곳에 다시 들어가면 급여생활 몇 년 연장하는 것이고, 젊음을 다 바쳐 직장생활을 해왔는데 다시 기업으로 돌아간다면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 2004년  SK(주) 대표이사로 부임하면서 KAIST에서의 첫 강연부터 현재까지 163회에 걸쳐 전국을 다니며 강연, 강의 할 기회를 가졌다. 그동안의 자료들을 모아 정리해보니 그것은 지성, 이성보다는 감성과 영성을 강조한 내용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비유하자면 나는 서울 발 부산행 KTX열차 1호차에 앉았고 후배들은 끝머리인 19호나 20호차에 탄 것과 같다고 볼 수 있다. 앞 차에 탄 내가 먼저 한강 철교를 지날 때 오른쪽은 여의도 63빌딩, 왼쪽은 동작동 국립묘지라고 미리 말해주면 뒤차에 탄 후배들은 어느 쪽을 볼지 미리 선택할 수 있지 않은가. 과거 우리에게는 제대로 방향 안내를 해주는 사람이 부족했다. 이제 한평생 배우고 체험한 감성과 영성을 후배들 또는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나눠주려 한다.

60대 후반인 지금부터라도 나의 작은 능력을 여러 사람들에게 나눠 줄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싶었다.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은 전국 어디든지 찾아갈 생각이다.

감성경영연구소 앞에 마라톤을 붙인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다. 36번의 풀코스를 뛰면서 느낀 것은 마라톤과 인생경로는 똑같다는 것이다. 시작, 초반의 즐거움(런닝하이), 중간목표 달성, 자만, 유혹, 고통 등에 의한 포기하고 싶은 마음, 인내, 극복, 성취 등의 단계를 거치는 마라톤의 풀코스가 끝나면 다시 새로운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수많은 시작과 마침을 되풀이하면서 인생도 마라톤도 한 단계 위로 발전하게 된다.

마라톤은 자기완결형 운동이다. 누구의 도움을 받아서도 안 되고 두 발 외에는 어떤 도구도 이용해서는 안 된다. 42.195Km를 스스로의 힘과 발로 완주해야만 한다.

이봉주 선수, 황영조 선수도 어렵고 우리 같은 일반인도 끝까지 달리기가 힘들기는 마찬가지이다. 다만 완주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다를 뿐이다. 그래서 완주하겠다는 도전 의식과 패기의 상징인 ‘마라톤’을 연구소명칭에 넣고 로고도 그렇게 만들었다.

 
Q. SK그룹에 평생을 헌신했는데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은 무엇인지.

A. 회사를 이끌어가면서 2008년도에 매출 40조원을 돌파하고 수출 200억 달러를 넘어서면서 대통령상을 받았고 동시에 지배구조, 재무구조, 사업구조를 개선시킨 가시적인 성과도 보람이었다.
CEO를 연임하던 2007년도에 수출 지향회사를 만들기 위해서 고민하다가 임직원들과 함께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매 월 한권씩 읽고 그 독후감을 매 월 한권의 책으로 발간하였다. 임직원들은 15개월 동안 6700여건의 경영제언을 쏟아내었다. 온라인 게시판에 올린 내용은 때로는 아픈 채찍이 되기도 했고 때로는 무릎을 탁 칠만 큼 훌륭한 경영 아이디어가 되기도 했다.

BC 753년 티베레의 강가에서 로무르스와 3000명의 부족들은 1229년간의 서로마제국을 통하여 지중해, 유럽, 중동, 아프리카를 하나의 세계로 통합시킨 출발점이 되었다. 1962년 울산 배나무밭에서 시작한 SK에너지가 세계 100대 기업으로 성장을 넘어서서 계속 발전하는 정식적 바탕을 이 책에서 찾고 싶었다.

회사 건물에 입주해 있던 대사관을 내보내고 49명을 수용할 수 있는 유치원을 만들었고 이어 대전 기술연구원에도 유치원을 만든 것은 정말 보람된 일이었다. 당연히 임직원들의 반응이 좋았고 훗날 나의 손자도 여기를 다닐 줄은 당시에는 알 수가 없었던 일이었다.

1995년 SK텔레콤 수도권 본부장으로서 회사로부터 5천만원을 지원받아 YMCA와 더불어 서울 시내 불우이웃돕기, 김장김치 담그기를 시작했다. 2004년도부터는 전국 17개 도시로 확대시켰고 지난달에도 이 행사는 계속되었다. 조그마한 출발이 이제 하나의 연말 중요행사로 계속 이어가는 것이 자랑스럽다.

Q. 요즘 평생직장 의식이 점점 희박해 지고 있다. 후배들에게 어떻게 하면 직장생활을 잘 할 수 있는지 조언을 부탁한다.

A. 직장 내에서 자기의 역할을 확실히 하고 그 안에서 자신이 남과 다르도록 차별화를 꾀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먼저 내 역할이 무엇인지를 찾아내는 것이고 다음은 내가 하는 일이 다른 사람과 다르도록 노력해야 한다. 누구나 다하는 레드오션이 아닌 나만이 할 수 있는 블루오션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을 반하게 하는 인간적인 매력이 리더십인데 태생적으로 타고나는 리더십보다는 자기가 만들어내는 환경적인 리더십이 가장 훌륭한 인간관계를 만들어준다. 아버지나 집안으로부터 물려받는 권위, 재산, 명예도 중요하지만 자신이 만들어낸 칭찬, 명예, 재산이 더 존중받는 시대가 된 것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모든 일에서의 출발(입사, 승진, 결혼, 자녀출생 등)때의 갖는 감사와 기쁨이 결코 변하지 않고 항상 유지되는 것과 상대방을 포용하고 감동을 주게 되는 감성 생활은 직장생활의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Q. 최근까지 SK그룹에서 사회공헌활동 최고 책임자로 활동했다. SK 사회공헌활동의 내용과 성과를 소개해 달라.
 
A. 자본금 2000억원의 SK 미소금융재단을 2010년 1월 1일 설립하면서부터  이사장을 맡았다. 3년7개월 동안 전국적으로 20개 지점이 설치되었고, 7000명의 수혜자에게 900억원을 지원했다. 앞으로 2000억원까지 지원 될 것이다. 사회적 취약계층에서 미소금융 대출금으로(무이자, 무보증) 새로운 희망의 일자리를 만들어가는 것이 자랑스럽다.

또한 SK그룹에서 지원한 700억원의 자본금으로 2010년 1월 1일에 사회적기업단을 설립하였고 단장을 맡았다. 미소금융재단과 사회적기업단은 앞으로도 기초자본이 계속 회전 되면서 지속가능경영을 통해 사회에 기여하게 될 것이다.

사회적기업을 운영하는 것은 SK가 추구하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의 하나다. 과거에는 헌금 또는 물적 기부를 했지만 지금은 다른 방향을 추구한다. 사회적 기업을 만들어 물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다. 그래야만 기업이 손을 떼도 스스로 고기를 잡게 된다. 이것이 바로 사회적 기업이 하는 일이다.

SK가 지원하는 ‘행복한 학교’ 가 바로 그 것이다. 지금은 서울, 부산, 대구, 울산에서 운영중이다. 현재 880명의 선생들이 2만3천명의 초등학생들을 가르친다. 월 3만원의 수업료로 월 80시간을 가르치는데 모두 취약계층의 자녀들로서 방과 후 학습을 지도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사회공헌활동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다. 재단, 기업, 지도자, 기금, 연구소등을 만들어서 사회적 기업이 많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기업들이 나서야 한다. SK그룹이 KAIST에 사회적 기업 MBA과정을 만든 것도 지도자를 양성하기 위한 것이다.

 
Q. 대기업에 대한 사회적 여론이 그다지 좋지 않다. SK그룹을 비롯하여 대기업이 수난을 당하고 있는데 반 기업정서가 도를 넘으면 경제에 커다란 악영향을 끼칠 것으로 우려되는데 어떻게 보는지.

A. 반기업 정서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나온 것이다. 기업을 이해 못하는 일부 소비자들이 기업에 대해 막연히 반감을 가지는 경우가 있다.

기업의 역할은 국가나 사회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현재는 석유화학 제품이 우리나라 수출의 4분의 1을 차지하고 있으나 얼마 전까지만 해도 휴대폰 수출이 1, 2위를 차지했다. 바로 SK그룹이 한국이동통신을 민영화시키고 1996년도에 세계최초로 CDMA를 상용화 시킨 덕분이다. 한마디로 한국정부와 SK텔레콤 덕분에 전세계 70억 인구가 CDMA기술을 이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더불어 삼성전자나 LG전자 등 회사도 이 기술설계에 따라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낸 것이다. 

이같이 대기업의 역할이 첨단산업, 기술산업, 대규모 사업을 성공 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따른 부수역할은 수많은 중소기업을 일으키게 하고 결국 수많은 일자리가 만들어 진 것이다.

따라서 일부 대기업 또는 일부 잘못된 행동 등으로 대기업의 역할을 폄하시키고 있는 것은 정말 잘못된 일이다. 소비자의 감정에 일부 정치가 일부 NGO가 너무 지나치게 반 기업 정서를 부추기는 것은 빈대 잡으려고 초가집 태우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생각한다.

SK이노베이션이 지금 일본 신일본석유와 합작으로 울산에 PX공장을 세우는데 약 1조 6천억원이 투자되고 있고 내년 5월쯤 준공될 예정이다. 그러나 국회에서 관련 법규 개정이 차일피일 미루어지고 있음에 따라 아직도 한 푼의 일본자금도 들어오지 못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2006년도에 인천정유를 흡수 합병시켰고, 당시 400명도 채 되지 않는 제3정유회사에 1조3000억원을 투자하여 최첨단 PX공장을 짓고 있으나 도심 내에 공해 및 위험시설이라고 하여 공사 진행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공장이 완공되면 최첨단 시설을 갖추고 1000명 이상의 일자리를 창출하게 된다. 그런데 일부 환경단체 및 일부 시민, 일부 정치인이 반 기업 정서를 드러내며 회사의 장래를 암울하게 만들고 있다.

물론 대기업도 지금보다도 훨씬 더 많은 사회적 책임을 실천해야 한다. 제대로 안하니까 욕을 먹게 마련이다. 기업에 대해 일반인들이 나쁜 인식을 갖도록 한데 대해 기업 스스로도 깊이 반성해 볼 문제이다.

신헌철 전 SK그룹 부회장은…

△부산대 경영학과 △연세대 경영학 석사 △서울대 최고경영자과정 47기 △SK텔링크 대표이사장 △SK가스 대표이사 부사장 △SK(주) 대표이사 사장, 부회장(CEO) △서울대 공과대학 초빙교수 △포항공대 겸직교수 △2013 대구세계에너지총회 조직위원회 위원장 △SK사회적기업단 단장 △SK미소금융재단 이사장 △부산, 대구 행복한학교 이사장 △이화여자대학교 겸임교수 △신한회계법인 상임고문 △마라톤감성경영연구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