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에 대한 새로운 규제인 '바젤Ⅲ'가 시행 열흘째를 맞이했지만 이에 수반되는 딜레마가 상당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강화된 기준에 따라 은행들의 건전성은 확보할 수 있겠지만, 상대적으로 신용이 부족한 서민과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바젤Ⅲ란 국제결제은행(BIS) 산하 바젤은행감독위원회(BCBS)가 대형 은행의 자본확충 기준을 강화해 제정한 은행규제법을 의미한다.
기존 규제 하에서는 은행의 BIS 자기자본비율을 8% 이상으로 유지하되 이 중 보통주 자본비율은 2% 이상, 기본자본(Tier 1)비율은 4% 이상으로 설정해야 했다.
바젤Ⅲ 도입에 따라 이달부터는 보통주 자본을 위험가중자산으로 나눈 비율이 3.5%를 넘어야 한다. 이 비율에 대한 최소 기준은 내년 1월부터 4.0%, 2015년 1월부터는 4.5%로 차례대로 높아진다.
뿐만 아니라 총자본을 다시 보통주 자본, 기타기본 자본, 보완 자본으로 나누고 각각에 대한 위험가중자산 비율이 모두 기준치를 충족시켜야 하도록 규제가 세분되며, BIS비율도 2019년까지 최소 10.5%로 올려야 한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경험한 감독기관들이 위기 시에도 은행들이 손실을 충당할 수 있게 하는 장치를 마련한 셈이다.
문제는 강화된 규제가 은행대출을 필요로 하는 중소기업 및 서민들을 도외시하는 상황을 발생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는 것.
강형구 금융소비자연맹 금융국장은 "기본적으로 중소서민 대출이 늘어나면 은행 입장에선 위험가중자산이 늘어난다"라면서 "바젤Ⅲ가 도입되면서 은행들의 건전성 향상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중소서민들에 대한 대출이 위축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은행들이 위기에 충분히 대비하도록 보수적인 자금 조달·운용을 강조한 바젤Ⅲ의 도입은 중소기업과 서민층의 대출 문턱을 높일 수 있다는 우려다.
또 채지윤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원은 "은행의 경우에는 획일적인 건전성 규제를 할 수 없다. (획일적인 규제를 도입하면) 은행들이 갈수록 우량채권 쪽으로 치중하게 되고, 장기적인 자금이나 서민·중소기업 등 비우량 자금에 대한 접근은 더욱 부족해지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경우, 주식이나 채권발행 등 직접금융보다는 은행대출에 기대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에 더욱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규제를 도입하기에 앞서 서민금융이나 금융 전반에 대한 점검이 먼저 필요했다는 입장이다.
미국의 경우 일정규모 이상의 금융기관으로 하여금 지역사회의 중소기업, 중산층 이하 계층이 대출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하고, 지역사회에 대출편의를 제공토록 의무화한 '지역사회 재투자법(CRA)'을 지난 1977년부터 운영하고 있다.
또한 독일의 경우 은행의 80% 이상이 신용협동조합 등 공공은행 혹은 조합은행으로 이뤄져 있다. 수익성 보다는 지역사회 발전에 초점을 맞춘 금융체제로 중소기업과 서민들과의 상생을 이뤄가는 시스템이다.
채지윤 연구원은 "우리나라는 금융자체가 간접금융(은행대출)에 많이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결국 이런 시스템 마련은 은행들이 해야 할 일"면서 "은행차원에서 중소기업들을 체계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한 다음에 규제를 도입하는 것이 순서"라고 밝히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