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복지재원 확충이라는 중책을 떠안고 있는 국세청이 지하경제 양성화 추진을 비롯한 전방위 세수확보 방안 마련을 위해 골머리를 앓고 있는 가운데 국세청 안팎에서 '교차세무조사' 를 적극 활용할 수 있도록 제도화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 지고 있다.
교차세무조사는 지역 연고기업과 과세관청(지방국세청, 세무서) 간 유착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매출액 일정규모 이상 기업을 대상으로 관할 지방국세청이 아닌 타 지역 관할 지방국세청이 세무조사를 진행하는 조사기법.
쉽게 말해 대구지방국세청 관할 법인을 서울 또는 부산지방국세청 산하 조사국에서 조사를 진행하는 방식이며 인사에서 활용하고 있는 '향피제(鄕避制)', 감사 및 감찰에 적극 활용되고 있는 '교차감사', '교호감찰'과 같은 개념이다.
국세청은 특별세무조사에 한해 간헐적으로 실시해 오던 교차세무조사를 2010년 활용폭을 넓혀 비정기 세무조사(심층세무조사) 이외에 일반적인 정기 세무조사에도 확대 실시하고 있다.
□ 교차세무조사...세수실적 최고 = 과거 국세청은 특정사안에 따라 교차세무조사를 드문드문 활용해 왔다. 2005년 포스코 세무조사, 2009년 태광실업 세무조사 등이 대표적인 사례. 다만 2008년 이전 사례의 경우 개념적 측면에서 이후 사례와는 상이한 측면이 있다.
국세청이 교차세무조사의 개념을 정립한 것은 2008년이었기 때문이다. 국세청은 당시 탈세혐의 사전분석 등을 통해 선별된 지역 토착기업 등을 대상으로 한 비정기 세무조사(심층세무조사) 시 교차세무조사를 진행하는 원칙을 정했다.
시행 첫 해였던 2008년 21건의 교차세무조사를 실시한 국세청은 이듬해인 2009년 29건의 교차세무조사를 실시, 총 1517억원의 세금을 추징했다. 특히 2009년 교차세무조사 평균 추징세액은 52억3000만원으로 당시(2008년 기준) 전체 지방국세청 법인세조사 건당 평균 추징세액 18억원의 3배에 달했다.
국세청은 이와 관련해 세무조사의 '강도'를 떠나 유착소지가 원천 차단되면서 보다 엄정한 조사권 집행이 이루어졌기 때문으로 풀이했다. 지난 2010년 일반 정기 세무조사 분야에도 교차세무조사 개념을 확대 적용키로 한 것도 이 같은 확실한 '성과물'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기업들의 몸집과 거래형태가 과거의 패턴과는 판이하게 달라진 이유도 있다.
특히 국제거래 확대 등 기업 수입구조의 복잡성이 증대되면서 세무조사에 필요한 인력 및 기술력의 고도화가 요구되기 시작했다. 이에 상대적으로 인력과 기술력이 풍족한 서울국세청 소속 조사요원들이 지방 소재 대기업에 대한 세무조사에 일정 부분 투입되고 있다.
2011년 삼성전자 세무조사(관할 : 중부국세청→조사 : 서울국세청)와 올해 3월과 7월 실시된 넥센타이어, 한국GM 세무조사(관할 : 부산국세청→조사 : 서울국세청)가 이 같은 케이스다.
2009년 이후 국세청이 교차세무조사를 통해 만들어 낸 실적(세금추징액)을 공식 발표하고 있지 않지만, 국세청 내부적으로 필요에 따라 이루어진 교차세무조사가 상당한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는 상태다.
□ 교차세무조사...국민 인식 = 확실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교차세무조사에 대한 주변의 오해는 국세청의 ‘운신의 폭’을 좁게 만들고 있다.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킨 사건 때문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자살로 내몬 2009년 태광실업 세무조사다. 당시 국세청은 교차세무조사를 빌미로 노 전 대통령의 자금줄로 알려진 박연차 회장의 태광실업에 대해 대대적인 심층세무조사(관할 : 부산국세청→조사 : 서울국세청)를 진행했었다.
이 세무조사는 정치적 목적으로 기획된 세무조사라는 것이 정설이며, 노 전 대통령 자살 이후 정치적 논란의 중심으로 떠올라 수 년 동안 국세청을 괴롭혔다.
태광실업 세무조사는 지역 연고를 바탕으로 한 유착소지 차단을 목적으로 도입한 교차세무조사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확산시킨 '도화선'이 되기도 했다.
실제로 2010년 국세청이 정기 세무조사에도 교차세무조사 개념을 확대적용 했지만, 교차세무조사 사실이 알려질 때 마다 번번이 안팎의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주변 환경이 이렇다 보니 국세청은 교차세무조사를 최소한으로 축소해 운영하고 있다.
2009년 교차세무조사 건수 및 추징실적을 발표한 이후, 국세청은 교차세무조사와 관련한 어떠한 발표도 자제하고 있으며 교차세무조사 실적 또한 2010년 26건, 2011년 30건, 2012년 27건, 2013년(6월 기준) 20건 등 일정량 이하로 묶여 있는 상황이다.
□ 일정 비율 교차세무조사 의무화...정치적 오해 불식 = 국세청 안팎에서는 교차세무조사의 도입 취지를 살리고 안팎의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한 차원에서 교차조사를 의무적으로 실시하도록 제도화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구체적으로 지방국세청이 진행하는 연간 세무조사(법인 기준) 건수의 일정비율을 교차세무조사로 진행하는 형태로 국세청 세무조사규정에 '시스템화' 하는 것이다. 불필요한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누가 국세청장, 조사국장이 되든지간에 임의적인 조사가 아닌 세무조사규정에 의한 조사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교차세무조사는 향피제와 같이 유착의 소지를 차단하기 위해 도입한 좋은 제도인데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며 "세무조사의 투명성 제고 등을 위해 일정량 이상의 교차세무조사를 의무화하는 방안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교차세무조사 비율을 정해놓고 조사관서는 랜덤(무작위)으로 선정토록 운용한다면 유착가능성을 현저하게 떨어뜨릴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다른 국세청 관계자는 "교차세무조사는 세금자진납부제도를 담보하는 '성실도 검증' '성실도 제고' 혹은 '탈세차단'이라는 세무조사의 원 취지에 부합하는 방식이고 논리적, 현실적으로도 세적지 관할 관청의 직접조사보다 나은 방안"라며 "다만 일정비율 교차세무조사를 의무화하되 경제여건 등을 감안해 탄력적으로 운용할 수 있도록 융통성을 부여한다면 불필요한 오해를 불식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렇게 되면 기업관계자와 세적지 관할 지방청, 세무서와의 유착관계(세무비리)를 줄일 수 있는 부수적인 효과까지 얻게 될 것이며 이는 정기일반 세무조사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다 줄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조세전문가는 "지역 토착세력 등과의 유착고리를 끊어내는 것은 투명사회로 가는 중요한 발판이 될 수 있다. 유착으로 만들어지는 '검은 돈'을 엄정한 세무조사를 통해 차단하는 것은 지하경제 양성화라는 현 정부의 정책기조에도 부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