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지역 대기업들에 대한 세무조사를 진두지휘하고, 5만여 법인들을 관리감독해 온 이 지역 토박이 관리자 박봉식 조사1국장과 김형기 세원분석국장이 국세공무원의 길을 마감한다.
1955년생 동갑내기인 이들은 국세청의 고질적인 인사적체를 해소하고 후진들에게 인사숨통을 터주기 위해 정년 2년여를 앞두고 명예퇴직을 결심했다.
광주지방국세청의 신사로 정평이 나있는 박 국장과 김 국장은 혈기왕성하고 패기로 가득찬 20대 중반에 국세청에 입문해 30여년이 훌쩍 넘는 세월 동안 '세금쟁이'로서 외길 인생을 걸어왔다.
박 국장은 올해 초 조사1국장에 전격 발탁돼 1년여 남짓 관내 외형 500억원 이상 대기업들에 대한 세무조사를 총괄했다. 전남 여수 출신으로 광주고, 전남대를 졸업했다. 25세 때 7급 공채로 국세청에 입문해 35년 동안 광주국세청 관내 일선세무서를 비롯해 조사1국 관리과장, 신고분석2과장, 해남세무서장, 세원분석국장 등 주요 보직을 역임했다.
김 국장은 지난 7월 세원분석국장에 임명돼 6개월 여동안 광주청 관내 법인들의 신고편의 제공과 분석, 근로장려세제의 원활한 집행에 힘을 쏟았다. 전북 익산 출생으로 원광대 법학, 전북대 경영대학원을 수료했다. 1980년 7급 공채로 국세공무원의 길을 걷게 된 그는 광주청 운영지원과장, 조사2국2과장, 북광주세무서장 등을 지냈다.
세입여건이 좋지 않아 세무조사가 강화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이는 가운데서도 이들은 호남지역 기업들의 영세성을 감안해 무리한 세금추징보다는 납세자를 배려하고 지역경제를 걱정하는 업무를 추진했다.
특히, 퇴임을 얼마 남겨 놓지 않은 상황에서도 끝까지 공직자로서 직분을 잃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이들의 퇴장을 놓고 진한 아쉬움이 묻어나고 있다.
광주국세청 직원들에 따르면 이달 초 광주국세청 조사1국장실에 한 중년의 납세자가 방문을 노크했다. 이 납세자는 박 국장의 수십 년지기 친구로 자신이 운영하는 기업체의 경영자문을 담당할 성실한 세무사를 소개받기 위해 찾은 것.
물론 이 납세자는 박 국장이 올해를 마지막으로 공직에서 물러나 세무사로서 제2의 인생을 설계한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상황이었다. 몇 주 후면 세무사무실을 개소할 예정인 박 국장으로서는 자신이 직접 경영자문을 맡겠다고 나설 수도 있었지만 유혹을 뿌리쳤다.
박 국장이 이 업체의 경영자문을 맡았다면 매월 경영자문컨설팅 비용 200만원에 수임기장료까지 정기적인 수입이 발생해 개업 초창기 사무실 운영에 적잖은 도움을 받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그는 떠나는 날까지 공직자로서 본분을 지켰다.
광주국세청의 한 직원은 "자율적인 업무처리로 부하직원들을 믿고 맡기는 조금은 자유스러운 관리자에 속하면서도 공무원으로서 직분을 지키지 못한 아랫사람에 대해선 단호하리 만큼 엄격한 관리자들 이었지만, 기쁠 때나 슬플 때 직원들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주었다"며 두 국장의 퇴장에 아쉬움을 나타냈다.
박 국장과 김 국장은 연말 체납징수 업무로 눈코 뜰새없이 분주한 광주청 직원들의 번거로움을 덜어 주기 위해 퇴임식 행사를 고사하다 지방청 국·과장, 계장들의 지속적인 설득으로 가족은 물론 가까운 친지도 초대하지 않고 오는 24일 간소하게 퇴임식을 치룰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광주지방국세청 관내에서는 올 연말을 기점으로 박봉식, 김형기 국장을 비롯해 정길숙 북광주세무서 법인세과장, 서재권 북광주세무서 재산세과장, 문종하 광주세무서 부가가치세과장, 서기옥 여수세무서 운영지원과장이 명예퇴직을 신청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