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샷인사' 이어질지 주목…첫단추는 전무인사?
여성 인재 발굴 시사… 역차별 논란은 부담될 듯
"(정기인사에 있어)큰 변화를 이룰 필요는 없다. 부족한 자리는 채워나가는 식으로 할 예정이다."
권선주 신임 기업은행장(사진)은 30일 취임식 직후 가진 출입기자들과의 상견례 자리에서 향후 정기인사와 관련해 '변화'보다는 '안정'에 무게를 두겠다는 취지의 발언으로 눈길을 끌었다.
대한민국 최초의 금융권 여성 CEO인 권선주 기업은행장은 세간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
여성대통령 시대에 탄생한 금융권 첫 여성 CEO라는 후광은 그만큼 파급력이 상당해 최근 진행되는 금융권 인사의 키워드가 '여성 임원 발탁 인사'가 될 정도다.
역설적이게도 파격인사를 통해 기업은행장에 오른 권 은행장의 첫 시험무대는 바로 내년 1월로 성큼 다가온 정기인사가 될 공산이 크다.
■조준희式 '원샷인사' 이어질까 = 기업은행은 그동안 정기인사에서 '원샷인사'(하루만에 전 직원 인사 단행)를 실시해 인사시즌 전후의 불필요한 업무공백을 차단했다.
이는 인사분야에서 경험이 많은 조준희 전 은행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어느 지점에 누가 무엇을 잘 하는지를 꿰뚫고 있었던 조 전 은행장이 인사부서의 서포트를 받아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인사방식이었기 때문.
하지만 '원샷인사'에는 빛과 그림자가 공존했던 것도 사실이다.
통상 승진 인사에 맞춰 사후 배치인사를 실시, 각 부처의 부족한 부분을 채웠던 것을 단 하루만에 끝내다 보니 일부 부서에서는 '일할만 하면 빠져 나간다'는 볼멘소리도 나왔고, 철통보안 속에 유지되던 인사명단이 발표되기 때문에 일선 부서에서는 추진되는 업무에 혼선을 빚는 등 고민이 상당했다는 후문이다.
이 때문에 인사부서의 경험이 전무한 권 은행장이 '원샷인사'에 상당한 부담을 느낄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는 것.
결론적으로 말하면 권 은행장도 '원샷인사'의 장점을 살려 당분간 현행 인사시스템을 유지할 공산이 크다.
내부 고위 관계자는 "권 은행장은 비교적 전임 조 은행장의 인사와 경영철학에 상당한 공감을 표해 왔던 분으로 내부는 물론 대외적으로도 상당한 주목을 받았던 '원샷인사'를 이어갈 공산이 큰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전했다.
권 은행장은 30일 취임식 직후 가진 상견례 자리에서 "변화와 혁신은 한꺼번에 하는 게 아니라 지속적으로 꾸준히 하는 것"이라며 "기존의 분들이 다들 잘 하고 있기 때문에 모자란 자리만 채워넣어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기업은행의 부행장 이상 임원급에서는 3자리가 비게 된다. 우선 권 은행장의 취임으로 리스크관리 부행장 자리가 현재 공석이고, IBK캐피탈 대표이사로 옮긴 유석하 부행장과 내년 1월 13일까지 임기인 김규태 전무이사의 자리도 채워야 한다.
권 은행장이 언급한 '부족한 자리는 채워나가는 식'의 부행장급 임원인사가 이뤄질 경우 큰 변화가 없는 소규모 인사가 이뤄질 수도 있다.
본부장이나 부장급 인사에서는 여성 인재들의 중용도 예측해 볼 수 있으며, 은행장의 최측근 부서인 인사, 홍보, 총무파트에서는 변화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원샷인사'의 경우 하루만에 모든 인사를 끝내야 하는 만큼 이미 상당부분 인사평가를 진행한 인사부서의 의견이 최대한 반영될 여지가 크다.
방대한 인사를 실시하며 곳곳에서 잡음이 발생할 경우 최초 여성 은행장의 첫번째 과제에 상처가 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기업은행 인사 첫 단추는 '전무 선임' = 내년 1월 정기인사를 하기에 앞서 전무(수석부행장) 인사를 첫 단추로 채우게 될 공산도 크다.
현재 김규태 전무이사의 임기가 내년 1월 13일에 끝나는 점을 고려하면 예상외로 신속한 선임이 이뤄질 수도 있다.
기업은행의 전무는 은행장의 제청으로 금융위원장이 임명하게 되는 수순을 밟기 때문에 무엇보다 권 은행장의 의중이 중요하다.
그동안 기업은행 전무 자리는 내부출신의 몫이었지만 외부인사를 완전히 배제하지도 않고 있다. 하지만 그동안 관례로 봤을 때 내부 임원급 인사 중 선택될 가능성이 높다.
권 은행장이 PB, 외환, 카드, 리스크관리 등에서 경험을 쌓았지만 글로벌 영업과 인사파트에 대한 경험이 다소 부족하기 때문에 차기 전무이사는 이 부분을 보완해 줄 인사가 선택될 확률이 높다.
현재 1956년생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부행장급 중에서 권 은행장과 손발을 맞출 전무이사가 추천될 것이라는 게 금융권의 예측이다.
우선 박춘홍 경영지원본부 부행장은 인사담당 임원으로서 3년차 최고참 부행장으로서의 경륜이 돋보인다. 또 충청지역본부장 출신으로 지역색이 강하지 않은 점도 강점이다.
안동규 부행장은 기업금융, 개인금융, 글로벌 영업, 스마트금융 등 은행의 거의 전 분야를 아우르는 경험과 노하우를 쌓은 점이 최대 강점이다. 글로벌 도약을 다짐한 권 행장의 '강한 은행' 구상을 가장 실무적으로 힘을 실어줄 후보로 손꼽힌다.
안홍렬 부행장은 검단지점장·통진지점장·검사부장 등을 거치며 쌓아온 뛰어난 현장 영업력이 강점이다. 발로 뛰는 영업을 실현하며 활력을 불어 넣어줄 대표주자라는 평이다.
■여성인재 발탁 어디까지 진행될까 = 권 은행장의 취임 이후 전체 금융권은 상당한 '여풍'(女風)을 겪고 있다.
신한은행이 대전여상 출신의 신순철 경기중부본부장을 부행장보로 파격 선임한데 이어 농협은행 문갑석 수탁업무부장(농협 첫 여성 부서장), 최동숙 영업지원본부 담당 전무(외환은행 첫 내부 여성 임원) 등 금융권 여성인재들의 약진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권 은행장도 여성인재에 대한 과감한 발탁인사를 예고하고 있어 과연 정기인사에서 나타날 '여풍'(女風)의 강도가 어느 정도일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권 은행장 자체가 1978년 기업은행 입행 이후 '여성 첫 지역본부장', '여성 첫 부행장' 등에 선임되며, 보이지 않는 여성에 대한 인사 차별을 선도적으로 무너뜨려왔기 때문에 상당한 변화가 예감되고 있다.
우선적으로 기업은행 내 남아 있는 유일한 여성 임원인 김성미 기업은행 남중지역본부장의 부행장 승진이 조심스럽게 거론되고 있다.
김규태 전무이사의 임기만료 등으로 인해 연쇄적으로 부행장급 자리가 나올 경우 여성 인재 중 부행장급 선임에 가장 근접해 있다는 평가다.
시야를 조금 넓혀 부장급으로 옮겨 가면 여성 인재들이 상당수 포진해 있다.
여성 부장급에는 오숙희 개인고객부장, 허은영 PB고객부장, 박상온 검사부 수석검사역(부장), 최현숙 여신관리부장, 서미영 디자인경영팀 부장, 김은준 개인고객부 미래고객팀 부장, 장영임 금융소비자보호센터 부장이 있다.
이들 여성 부장들의 발탁 인사가 이뤄질 경우 부장급의 전격 부행장 선임도 전혀 불가능한 시나리오는 아니다. 앞서 농협은행에서는 지점장을 부행장(안양1번가지점장 출신 민경원 신임 부행장)으로 전격 승진 인사한 사례도 있기 때문.
하지만 최근 남성 인재들에 대한 역차별 논란은 부담이 아닐 수 없다.
권 은행장은 30일 취임식 이후 기자들과 가진 대화를 통해 최근 금융권에 부는 여성인재 약진과 관련 "최근 제가 최초의 여성 은행장이 된 이후 금융권에서 여성 인재들이 주목을 받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면서도 "하지만 일부에서는 이 같은 현상이 남성직원들에 대한 역차별이라는 주장도 하고 있어 조심스럽다"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