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해배상책임제 개편에 부실감사 우려
"판례상 바뀌는 것 없어…상징적 의미 강해"
회계감사인의 손해배상책임제도가 '연대책임'에서 '비례책임'으로 변경되면서 회계업계의 부담이 한층 줄어들 전망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법률개정이 부실감사를 초래할 수 있다며 우려를 표하고 있어 추가적인 논란이 예상된다.
주식회사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및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 따르면 오는 2014회계연도부터 회계부정에 대한 감사인의 책임이 비례책임제로 변경된다.
현재는 분식회계 및 허위 감사보고서 작성에 있어 감사인이 회사의 임원 등과 연대해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지만, 앞으로는 귀책비율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 일부만을 지게 되는 것이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그동안 연대책임제도가 회계법인 등에 과도한 부담을 지우고, 해외사례와도 맞지 않는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최근 '빅4' 회계법인 중 하나인 삼일PWC는 포휴먼이 저지른 분식회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 해 투자자들에게 140억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은 바 있다.
잘못된 감사로 인해 회계부정을 잡아내지 못했고, 그로인해 발생한 투자자 피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해석이다.
이 같은 판결에 대해 업계의 한 관계자는 "도둑을 못 막았다고 경찰관이 그 도둑이랑 똑같은 취급을 받아서야 되겠느냐"며 "원칙적으로 비례책임제 도입이 옳다"고 항변했다.
앞서 한국공인회계사회를 비롯한 회계업계는 비례책임제의 도입을 지속적으로 주장해 왔다. 회계부정에 대한 연대책임을 회계법인에까지 지우는 것은 해외에도 사례를 찾기 힘들뿐더러, 형평성 원칙에 어긋난다는 논리다.
회계법인의 한 관계자는 "아직까지 연대책임제를 시행하고 있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우리가 유일하다"면서 "재무제표 작성의무를 지닌 기업의 분식을 감사인이 져야 하는 것은 부당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개정법안을 발의한 김관영 민주당 의원은 "법상 모든 경우에 연대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은 형평의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문제점이 제기되고 있다"고 언급했다.
회사 재무제표 작성의 직접 당사자인 회사의 이사와, 전수조사가 아닌 일정한 감사절차에 따라 감사하는 외부감사인은 그 책임의 정도가 다른 경우가 발생한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김 의원은 "현행 연대책임제도 하에서는 손해배상청구소송 제기 시점에서 피고의 과실정도를 불문하고 회계법인 등 변제력이 있는 특정피고를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하는 사례가 증가하는 등 각종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실정"이라고 꼬집었다.
이 같은 입장과는 달리, 일각에서는 완화된 법률에 따라 부실감사를 차단하기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려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감사인의 책임이 줄어든 만큼 자연스럽게 감사도 느슨해 질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감독당국의 관계자는 "지금까지 나온 회계 관련 판례를 살펴보면 사실상 판결에는 비례책임제가 꾸준히 적용돼 왔다"고 반박했다.
법률에서 감사인의 연대책임을 규정하고는 있어도 실제 판결에서는 사실상 비례책임제가 적용돼 왔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법안이 개정된다고 해서 회계법인들의 책임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실제로 포휴먼 사건 판결문에 따르면 재판부는 "(삼일회계법인이) 외부감사인으로서 최소한의 의무를 다하지 못한 책임이 인정된다"면서도 "다만 회사(포휴먼) 쪽의 조직적인 공모가 있었던 점을 고려해 책임을 손해액의 30%로 제한한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감독당국 관계자는 "그동안의 판례를 보면 대부분 손해배상 청구액의 30% 정도를 감사인이 지도록 판결이 나왔다"면서 "때문에 실제 판결에서 크게 바뀌는 것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법률이 개정된 것은 상징적인 입장에서 상당히 큰 의미를 지니는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