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가락하는 정부정책과 역대 최대 규모의 대출사기 후폭풍에 금융권이 된서리를 맞고 있다.
전 금융사들의 텔레마케팅(TM) 영업을 금지시킨 정부가 대책 시행 열흘 만에 관련조치를 취소시키며 시장 혼란을 부추겼고, 2800억원 규모의 대출사기사건이 발생하면서 금융권의 여신심사과정에 문제가 있다는 여론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더불어 주요 금융지주들의 참담한 실적이 공개되는 가운데, 아직 관련 공시를 하지 않은 지주사들도 그다지 밝은 전망을 가지고 있지 않아 주목을 받고 있다.
■ 손바닥 뒤집은 금융위…"TM영업 다시 허용" = 금융권의 논란거리가 된 TM 영업중단 조치가 시행 열흘 만에 철회됐다.
지난 4일 금융위원회는 금융사들의 TM 영업을 이르면 다음 주부터 다시 허용키로 결정했다. TM 영업에 활용하는 고객정보의 적법성을 자체 점검해 금융사 CEO가 그 정당성을 확약하면 영업을 재개해도 좋다는 방침이다.
다만 문자메시지와 이메일을 이용한 모집행위는 내달 즈음에야 허용될 전망이다.
현재 진행중인 금융회사별 정보현황 자체점검이 종료되고, 금융감독원의 확인 등을 통해 적법성이 확인된 이후 관련 가이드라인 시행과 함께 허용한다는 것이 금융위의 계획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이로써 최근 제기된 금융회사 TM종사자들의 고용불안 문제도 상당 부문 해소될 전망"이라고 기대했다.
이번 조치로 인해 텔레마케터들의 고용보장 문제는 일단락되겠지만 조변석개(아침에 바꾸고 저녁에 고침)식 정책으로 인해 시장혼란을 부추겼다는 비난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위 직원들이 여론 무마용으로 급히 대책을 내놓으면서 빚어진 일"이라며 "정책발표가 가지는 영향력을 깊이 여러 번 생각한 뒤 방침을 내놓는 것이 순서 아니냐"고 힐난했다.
■ 역대 최대 대출사기에 금융권 '멘붕' = KT 자회사의 직원이 2800억원의 대출 잔액을 횡령한 역대 최대 규모의 사기대출사건이 발생하면서 은행권의 부실여신심사가 도마 위에 올랐다.
금감원은 지난 6일 긴급 설명회를 열고 하나·국민·농협은행과 저축은행 10곳이 KT ENS 직원으로부터 2800억원 규모의 대출사기를 당했다고 밝혔다.
KT ENS의 김모 부장이 하청업체인 N사 대표 등과 공모해 거짓 매출채권을 만들어 이를 담보로 수 년 간에 걸쳐 대출을 받아 온 것이다.
금융당국은 이 과정에서 은행들이 단지 대기업의 자회사라는 이유만으로 대출심사를 꼼꼼히 하지 않았다는 정황을 포착, 관련 검사에 착수했다.
N사는 총자산이 100억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중소기업임에도 금융사들은 대출심사 과정에서 KT ENS와의 거래가 실제로 계속되는지에 대한 확인을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금감원 고위 관계자는 "KT ENS가 KT의 자회사이기 때문에 대출금 회수에 문제가 없으리라고 금융사들이 생각했을 것"이라며 "여신심사과정에 문제가 없었는지 알아보겠다"고 밝혔다.
■ 찬바람 부는 금융권…주요 지주사 실적 '급감' = 주요 금융사들이 실적발표 시즌을 맞아 잔뜩 울상이다. 이미 지난해의 성적을 발표한 우리·하나금융지주가 초라한 성적표를 내보인데 이어 국민·신한금융지주도 그다지 밝지 않은 실적이 나올 것으로 전망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6일 우리금융지주는 2013년 2892억원의 순익을 거뒀다고 발표했다. 전년도에 비해 82.2% 급감한 수치다.
더불어 주력 계열사인 우리은행의 이익은 5760억원으로 1년 새 62% 줄어들었다.
우리금융 관계자는 "기업회계기준에 따라 장부금액보다 낮은 가격으로 매각될 예정인 증권계열 자회사들에 대한 손실반영과 기업구조조정 지원 및 경기 회복에 대한 불확실성에 대비한 적극적인 충당금 적립 등에 기인한 것으로 풀이된다"고 해명했다.
같은 날 발표된 하나금융의 지난해 순이익은 1조200억원으로 전년보다 37% 감소했다.
이에 대해 최진석 우리투자증권 연구원은 "국민행복기금 및 쌍용건설 감액손 617억원 등 비이자이익이 다소 부진하고 판관비 증가요인 1200억원과 일회성 대손비용 352억원 등 비용 증가에 기인했다"고 분석했다.
이 밖에 KB금융지주와 신한금융지주는 이달 7일과 11일 실적발표를 앞두고 있지만 실적전망은 그다지 밝지 않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저성장·저금리 기조가 길어지면서 금융권에 찬바람이 불고 있다"면서 "그에 따른 이자이익과 유가증권 매각이익 감소도 크게 작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