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도중 그녀에게 울린 전화만 십여통. 눈코뜰새 없이 바쁜 인천항의 거친 보따리장사꾼들을 상대하랴, 지능적인 밀반입을 단속하랴, 수백개의 창고를 5명의 직원이 관리하랴 몸이 여러 개여도 모자를 지경이다.
쏟아지는 업무량에 인터뷰도 제대로 못하게 한다고 짜증이라도 낼 법하지만 그녀는 자신만의 특유의 웃음소리로 스트레스를 날려버린다.
'관세청 왕언니'로 통하는 인천세관 서옥봉 관세행정관(사진)은 30여년의 기나긴 세관 업무에도 눈가에 주름살 하나 없는 탱탱한 피부를 가지고 있어 '관세청 최고의 피부미인'으로 손꼽히고 있다.
관세청에서 20년 넘게 근무하면 눈이든 허리든 어디 하나 성한데 없다고 하지만 서 행정관의 피부를 보노라면 이런 말이 무색할 정도이다.
누가 보면 고생 하나 하지 않고 맨날 노느라 피부가 좋아졌다고 할 수 있겠지만 서 행정관은 200개에 이르는 보세창고에 있는 수백개의 화물을 관리하는 등 남자도 하기 힘들다는 일을 하고 있다.
숫자만 들어도 '헉'하고 소리가 나올 정도로 많은 보세창고를 관리하지만 관리하는데 그치지 않고 CCTV를 분석하는 등 선제적으로 치고 나가 활수산물 밀반입을 적발해 '4월의 관세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서 행정관은 지난 8일 조세일보(www.joseilbo.com)와의 인터뷰에서 " 스트레스를 마음에 담아두지 않으려고 한다. 웃음소리가 특이한 편인데 그 웃음으로 스트레스를 날려버린다. 동료 직원들은 내 웃음소리를 들으면 스트레스가 날아간다고 한다"며 다시 한번 호탕하게 웃었다.
□ "꾸준한 정보분석, 밀반출 단속의 핵심" = 200 vs 5. 무엇이든간에 200 대 5의 대결이라면 5가 절대적으로 약세의 위치에 놓인다. 이길래야 이길 수 없다. 5가 200을 이기려면 '전략'을 세워서 상대방의 허점을 공격해야만 하는데 허점을 알기 위해선 치밀한 분석이 필요하다.
서 행정관도 마찬가지였다. 직원 5명이 200개나 되는 보세창고를 관리하기에는 인력도 시간도 턱없이 부족했다. 숨기려는 자와 쫓아가려는 자의 싸움에서 쫓아가는 자는 항상 뒤쳐지기 마련인데, 그것도 인원이 5명밖에 되질 않으니 세관 직원들은 밀수업자들을 쫓아가기에도 버거운 실정이었다.
이런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서 행정관은 밀반입 가능성이 큰 활수산물 보세창고를 집중적으로 들여다보기로 했다. '선택과 집중'이라는 방법을 쓴 것이다.
활수산물은 신선도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기 때문에 통관시 초단위, 분단위로 시간을 다투게 되고 그만큼 밀반출, 초과반입의 위험이 많다. 밀수업자들도 이 부분을 노렸다.
서 행정관은 사전정보 없이 활수산물의 초과반입이 많은 점을 고려해 지난 2월 조개류를 대상으로 재고를 재조사하기로 하고, 조개류의 화물정보를 추적하던 도중 검역신고가 안 된 화물이 발견했다.
바쁜 시간대에는 조개류를 보세창고에서 빼내 화물트럭에 미리 실어놓고 세관 직원들이 통관 검사를 하기도 하는데 그 과정에서 화주가 검역신고를 하지 않은 조개를 몰래 빼내 차에 실어놓은 것이다.
활수산물인 털게 역시 물갈이를 한다는 이유로 차가 와서 털게를 몰래 빼가는 경우도 발견됐다. 활수산물은 물이 오래되면 상품이 죽거나 부패할 수 있어 물을 자주 갈아주는데 이 과정에서 상품을 몰래 빼돌리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서 행정관은 며칠 동안 CCTV에 녹화된 영상을 확인한 결과 새벽에 털게를 몰래 빼돌리는 장면을 확인했고 활수산물 5톤을 밀반출하는 것을 적발하게 됐다.
서 행정관은 "창고가 200개나 되다보니 그걸 일일이 다 들여다 볼 수는 없다. 선택과 집중을 해서 봐야 한다"며 "정보수집 및 분석은 단시간에 가능하지 않다. 과거부터 축적된 자료를 바탕으로 국내가격동향, 수입물동량 등을 분석해 수시로 점검해야 한다"고 말했다.
□ "이제는 '여성 리더십'이 필요한 때" = 수백개의 화물이 쌓여있는 보세창고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박스를 칼로 뜯고 살펴보고 하는 작업은 왠만한 남자도 하기 힘들다.
하지만 관세청의 여성 직원이 40%에 육박하는 현 상황에서 여성이라고 편한 사무직만을 주기에도 녹록치 않다. 여성 직원들도 무거운 화물을 들거나 뜯거나 하는 작업들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다.
서 행정관은 1978년 관세청에 입사해 관세청의 변화하는 과정을 모두 지켜봤다. 입사 초기에는 여직원에게는 서무 업무를 주는 등 소위 관세청 핵심업무에서 여성들이 제외됐지만 이제는 일선 세관의 중요한 일에는 여성이 빠지지 않는다.
관세청의 여직원들은 남자들이 하는 힘든 일을 하면서도 여성만의 부드럽고 섬세한 기질을 발휘해 어떤 때는 뛰어난 기량을 발휘하기도 한다.
14년 전 서 행정관이 김포공항세관에 근무할 당시 있었던 일도 '엄마의 따뜻함'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당시에는 인천공항 개항하기 전이라 김포공항에서 국제선이 다녔고 밤 12시 이전에는 모든 사람이 공항에서 빠져나와야 했다.
마감시간이 다 돼 가던 시각에 한국여성과 혼혈의 딸이 어떻게 할지를 몰라 발을 동동 굴렀다. 그 여성은 30년 전에 독일에 간호원으로 파병갔다가 거기서 독일인과 결혼해 딸을 낳고 살던 중 30년 만에 모국을 방문했다.
하지만 은행잔고가 바닥이 난 줄 모르고 여행을 계속하다가 돈이 떨어졌고 독일로 가려고 항공권을 구매하려다가 돈이 떨어져 어디도 가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독일에도 전화를 걸 수가 없는 상황에서 이들은 당황해 어쩔 줄을 몰랐다.
이를 본 서 행정관은 엄마의 나라에 방문한 딸에게 한국이 좋은 이미지로 남았으면 싶어 자신의 집으로 데려와 재우고 다음날 항공사에 부탁해서 항공권을 끊을 수 있도록 도와줬다.
낯선 이를 그것도 외국인을 자신의 집에서 재운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 일이었지만 서 행정관은 '1인 외교관'이란 관세청의 별칭답게 따뜻한 한국의 이미지를 그들에게 심어줬다.
서 행정관은 이런 '엄마 같은 리더십'을 여직원들과 널리 공유하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다.
서 행정관은 "30년을 일해왔지만 상사에게 작은 일들이라도 마음을 터놓고 얘기하기가 쉽지 않다"며 "관세청에 30년 넘게 근무하면서 쌓은 노하우들을 후배들과 공유하고 싶다. 엄마처럼 친구처럼 다가갈 수 있는 그런 선배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인천세관 여직원회의 회장을 맡고 있는 서 행정관은 세관에 있는 목욕봉사 동아리에서 목욕봉사를 하며 세관 이미지 제고에 상당 부분 기여하고 있다. 가족이라도 쉽지 않은 어르신들의 목욕을 해드릴 수 있는 것도 '아줌마의 힘'이라는 것이 서 행정관의 얘기다.
서 행정관은 "관세청은 여직원이 40%를 차지하지만 관리자는 대부분이 남성이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벽'이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여직원들에게도 공평한 기회를 줘야 한다. 그런 기회를 많이 줄 수 있도록 퇴직하기 전까지 열심히 노력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