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투자업 '규제 완화' 제보 속출
일부 규제 다시 강화, 정책 딜레마
2008년 금융 위기를 계기로 한층 강화된 규제의 칼들이 다시 거둬들여질 지 금융권의 기대가 고조되고 있다.
금융업이 유례없는 침체에 빠진 지금, 업계는 정부의 규제 완화 정책에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 그렇지만 국제적 흐름과 반대되는 규제 개선이 과연 바람직한가에 대한 논란도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은행, 보험, 회계, 자본시장 등 금융권에서는 규제 개선에 대한 기대감으로 시끄러운 가운데 정부는 세계와 거꾸로 가는 규제 완화에 대한 정책 딜레마에 빠져 수위조절을 고심하는 모습이다.
□문 닫는 증권사 속출, '금융 투자' 규제 완화가 관건= 금융위원회는 지난 29일 규제 완화를 위한 현장 간담회를 종료했다. 무엇보다 주안점을 두고 있는 분야는 침체된 자본시장을 살릴 수 있는 규제 개선. 규제 완화 중 상당수가 자본시장에 집중돼 있는 점이 확인됐다.
금융 위기 당시 미국의 투자은행(IB)들이 줄줄이 무너지며 세계 각국에서는 금융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논의가 이어졌다.
금융 위기에 직접적 타격을 미친 것이 대형 IB들이었고, 이때 우리 정부도 금융투자회사의 신용공여 및 융자 한도를 규제하면서 파생 상품 옵션(option) 승수, 개인 투자자 예탁금 규정을 강화해 위험 투자를 막아 왔다.
하지만 자본시장 위축으로 대형 증권사들이 경영난에 봉착하면서 이는 기업의 자금 통로를 막는다는 지적도 꾸준하게 제기돼 왔다.
정부는 규제를 줄이고 자본시장이 기업의 경영을 지원하도록 하겠다는 방침.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지난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금융투자회사 관계자들을 만나 규제와 관련한 건의 사항을 듣고 이를 정책에 적극 반영키로 했다.
이어 29일에는 사모펀드 및 자산운용사를 만나며 지난 2달 동안 진행된 12차례의 간담회를 마쳤다. 이날 신 위원장은 기자들을 만나 "가장 중점적으로 보고 있는 부분은 자산운용업이다"고 말했다.
이 같은 분위기 때문에 자본시장 상당수의 규제들이 완화될 것으로 보여진다.
한 대형 증권사 관계자는 "투자자를 보호하는 목적에서 신용공여 한도를 줄이거나 예탁금 제한을 늘리는 것은 이해하지만 시장이 침체된 상황이라 이상 과열 종목 등 일부로 한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파생 상품 옵션 승수와 같이 정부의 문턱을 넘지 못하는 규제도 있을 전망이다.
선물회사 관계자는 "지난 2012년 정부가 옵션거래 시장에서 개인 투자자 비중이 높다는 이유로 코스피200 옵션 승수를 올렸는데, 이 때문에 시장이 위축됐다. 특히 개인 투자자들 타격이 컸다"고 밝혔다.
또 그는 "금융위에 이를 다시 완화해 줄 것을 건의했으나 개인 투자자 피해가 크다는 이유에서 보류된 것으로 안다"며 "코스피 변동성에 투자하는 파생 선물 등 신상품을 출시해 시장을 살린다는 것이 정부 방침"이라고 전했다.
옵션거래는 일정 기간 안에 상품을 사거나 되팔수 있는 매매권에 투자하는 것을 말한다. 이때 옵션 승수란 거래 단위를 말하는데, 예컨대 승수를 5배 인상하면 5배의 거래금이 더 필요하다.
이와 함께 퇴직연금 운용 규제, 펀드 자문업자 도입 등 규제의 개선에 대한 필요성도 언급되고 있다. 현행 퇴직연금 운용업자들은 자산의 40% 이상을 주식에 투자할 수 없으나 최근 들어 안정성뿐 아니라 수익률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이를 확대해야 한다는 논리도 힘을 얻고 있다.
증권사 관계자는 "오래전부터 논의돼온 사안이나 정부 입장에서 주식 투자 비중 자체를 높이는 정책은 매우 부담스러울 것이라 판단돼 크게 기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편, 최근에는 금융투자협회가 오랜 시간 추진해온 영업용 순자본 비율(NCR)과 사모펀드의 운용 규제 완화가 추진됐다. NCR은 기관투자자 등이 투자를 결정할 때 증권사의 재무 건전성에 대한 지표가 되기 때문에 그동안 과도하게 높은 기준이 투자를 저해한다는 지적이 있어 왔다.
앞으로는 NCR 산정 방식 및 적기시정조치(영업정지) NCR 기준이 변경되고, 한국 국제회계기준(K-IFRS) 연결재무제표상 자회사를 보유한 증권사에는 연결NCR을 적용하되 부분적으로 예외를 인정할 방침이다. 또한 사모펀드는 위험 투자의 한도를 확대하고 의결권 주식을 5년 이상 보유할 수 있게 됐으며 금융지주의 사모펀드 운영이 허용됐다.
□은행·회계 등 난관, 오히려 '규제 강화' 흐름 보여져= 금융업은 살얼음판을 걷는 것과 같이 위태로운 상황에 놓여 있다.
그렇지만 금융의 주력 산업이라 할 수 있는 은행의 경우 저금리, 저성장 위기를 극복할 혁신적인 규제 완화 정책이 많지 않다는 부정적 견해들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은행자본 규제 등 세계적인 규제 강화의 흐름으로 인해 정부가 어느 선까지 칼을 휘두를 지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서병호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규제는 시장 실패를 보완하는 것이기 때문에 은행의 건전성 및 소비자 보호 관련 규제는 글로벌스탠더드에 맞춰 강화하는 게 맞다. 다만 우리나라는 진입 및 영업 행위의 규제가 너무 강해 경쟁과 혁신을 저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 정부 관계자는 "현재 국회에서는 회계법인이 동시에 외부감사와 컨설팅 계약을 맺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이 논의 중인데, 이는 규제를 강화하는 것이다. 규제 개선 정책과 맞지 않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은행 규제 완화는 해외 진출에 초점이 맞춰질 전망이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지난 29일 은행 국제화를 주제로 한 토론회에서 "은행 규제의 경우 소매 금융보다 도매 금융이 규제 완화와 연관돼 있다.
예컨대 해외에 진출한 은행들이 국내법과 해외법을 둘 다 지켜야 하는 문제가 있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 금융 외교를 적극적으로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음 달 신 위원장은 미얀마에 방문할 예정이다.
앞서 한 벤처기업 간담회에서 이종갑 한국벤처캐피탈협회 회장은 "은행이 벤처기업이나 벤처캐피털에 투자해 달라"며 "벤처기업이 성장한 이후엔 미래의 고객이 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이 회장은 "국제회계기준(IFRS) 도입 이후 벤처 투자를 하면 손실로 인식돼 은행 입장에서는 투자를 주저하더라.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는 예외로 인정해달라"고 제안하기도 했다.
그러나 신 위원장은 이에 대해 "은행 임원이 규정을 지켜 투자했을 경우 문책 당하지 않도록 규정을 바꿀 계획이다"고 말하며 "그렇지만 IFRS의 경우 국제 기준이기 때문에 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