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논의하기 위한 새누리당과 유족들 간 3차면담이 파행으로 끝났다. 1,2차면담에서는 비공개대화 기회도 마련돼 양측이 추석 전에 타결점을 찾지 않을까하는 기대도 낳았다.
하지만 3차면담은 다음 면담 일정도 잡지 못한 채 유족측이 회의장을 박차고 나감으로써 끝났다.
유족측은 세월호참사의 근본적인 원인규명을 위해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해야한다고 거듭 주장한 반면 새누리당은 헌법과 사법체계를 흔들 우려가 있다고 맞서 지금까지의 논의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했다.
이견이 좁혀지기는커녕 여당 지도부에서 ‘배후세력 조종설’을 공개적으로 언급하고, ‘배후는 살려달라고 애원한 우리 아들딸들’이라고 유족들이 맞받아치면서 각자 갈 길로 가는 분위기다. 추석 전에 이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면 이로 인해 빚어질 정국 파행과 국민 실망은 정치권 모두에게 엄청난 부담이다.
세월호 참사는 3일로 141일, 그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제정을 놓고 대한민국은 다시 두 동강이 나고 있다. 처음에는 슬픔과 분노로 대한민국이 모처럼 하나가 됐지만 특별법제정 문제가 정치쟁점화하면서 정파와 이념, 진영대결로 다시 갈라서고 있다.
세월호 특별법과 관련한 각종 여론조사는 찬반이 오차 범위 안에서 팽팽해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 ‘여야가 재합의한 대로 해야 한다’는 의견과 ‘다시 협상해야 한다’는 의견, 또 진상조사위의 수사권·기소권 부여에 대해 ‘필요하지 않다’는 답변과 ‘필요하다’는 답변이 백중세다. 보수와 진보, 20·30세대와 50·60세대 간에 찬반이 극명하게 갈린다.
지난달 30일 KBS조사에서는 ‘다시 협상해야 한다’는 의견이 53.7%로 ‘재합의안대로 통과시켜야 한다’(41.6%)는 의견을 크게 앞질렀다. 또 진상조사위에 수사권·기소권을 부여하는 방안에 ‘동의한다’는 응답이 58.3%로, ‘동의하지 않는다’는 38.6%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세월호 피로감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흐를수록 유가족 요구를 지지하는 여론이 늘어나는 추세다.
세월호 참사는 힘들다고 외면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다. 무엇이 잘못됐는지 철저하게 묻고 따져 제도적으로 재발을 방지하고 이를 계기로 대한민국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다.
세월호 이전과 이후가 완전히 다른 나라를 만들겠다는 대통령과 정치인들의 약속이 쏟아졌다. 국민들이 하나가 되면서 안전의식이 전에 없이 고취됐고, 적폐근절과 ‘관료 마피아’척결 등 변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집단에너지를 사회발전의 동력으로 이끌어 낼 리더십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정부와 정치권이 유가족들 행보를 정치영역으로 끌어 올려 정쟁화하면서 세월호 이슈는 보수·진보의 프레임에 갇혀 버렸다. 언론들도 편을 갈라 갈등을 부추겨왔다.
정치권은 해법보다는 정치적 득실계산만 분주했다. 대통령은 모든 해법을 국회로 돌린 채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대통령과 정부를 궁지로 몰아붙이려는 야당의 정략, ‘눈물의 담화’, ‘특별법 제정’ 약속으로 위기를 모면한 뒤 7·30 재보선 압승이후 슬며시 입장을 바꾼 여권의 정략 등 ‘세월호의 정치’가 이 모든 화근이다. 세월호를 정쟁과 분열에서 건져내지 않는다면 세월호 참사 이전과 이후의 대한민국은 달라질 수가 없다.
정부 여당은 ‘세월호 국면’의 교착을 경제살리기로 돌파키로 하고 잇단 ‘경제민생행보’로 야당을 압박하며 여론전을 펼치고 있다. “세월호 때문에 경제가 어렵고 장사가 안된다” “이만 했으면 할 만큼 하지않았느냐. 이젠 정상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느냐”는 ‘세월호 피로감’은 현실적으로 무시할 수 없다.
세월호 애도 분위기속에 소비지출이 줄어 내수경기침체를 가속화한 측면은 분명히 있다. 하지만 한국의 내수부진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부동산거품이 꺼지고, 과다부채와 가계빈곤화, 고용악화와 실질소득감소 노후불안 등이 겹치면서 한국의 내수는 “밑바닥을 뚫고 지하실까지 내려갔다”는 자조가 나돌 정도로 우리경제의 고질병이 된지 오래다.
여기에다 글로벌 경기회복 지연과 불안정한 환율 상황, 중국 기업의 공세 등이 우리 기업들의 경쟁력을 갉아먹으면서 삼성전자와 현대차에 의한 ‘경제 착시현상’마저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다.
한국경제가 무역은 물론 내수시장과 금융·부동산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중국에 예속되는 현상도 가속화되고 있다. 한편으로 중국의 성장둔화에 대비해야하고, 중국기업들의 추격도 빨라지고 있어 한국기업들로서는 그야말로 이중고다.
우리경제가 구조적 저성장에 빠져들면서 이러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닮아갈 수 있다는 경고들이 우리내부에서 스스럼없이 나오고 있다. 최경환 경제팀이 경제활성화 법안처리를 촉구하면서 국회와 여론을 압박하는 논리로 이를 내세우고 있다.
정작 주목을 끄는 것은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의 한국경제 진단이다. 이 신문은 ‘변조한국 (変調韓國) 잃어버린 20년의 공포’ 특집에서 “일본이 늘 부러워하는 한국의 활력이 사그러지면서 일본 장기불황 초입의 혼란과 무기력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 장기불황은 정치의 마비가 큰 원인이었다며 한국특유의 활력이 사라지는 근본이유 역시 리더십부재에서 찾고 있다. 어떤 주장이 제기되면 그 정치적 의도를 분석하고 이념적 입장에 따라 논지를 펴 모든 논의가 정치투쟁, 정치갈등으로 이어지고 정치적 리더십이 이런 갈등을 전혀 해소하지 못하는 상황이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초입과 닮아있다는 진단이다. 경제지표의 악화보다 깊어가는 보혁갈등, 정치실종 그리고 이를 해소할 리더십 부재가 한국의 이상기류를 심화시키고 있다는 분석이다.
경제체질을 바꾸는 획기적 전략과 갈등을 해소하는 정치 및 리더십의 복원이 무엇보다 절실하다는 훈수다. 세월호 특별법이 극적으로 합의되더라도 여야는 또다시 민생법안을 놓고 충돌할 태세다. 정부가 올인한 서비스업 활성화는 이해관계자들은 물론 야당과 시민사회단체들의 반발이 워낙 거세 입법 및 시행까지는 험난한 여정이 예상된다. 법률 제정 및 개정 사항이 16건(과제 숫자 23개)에 달해 입법 과정도 난관이다. 이런 이해관계의 상충과 반발을 조율하려면 설득의 리더십이 더없이 중요하다.
세월호 국면에서 보인 대통령의 무대응과 ‘마이웨이’는 곧 리더십부재다. 여당대표는 “경제는 심리인데 정치가 다시 경제의 발목을 잡으면 20년 전 나왔던 ‘정치는 4류’라는 비난이 다시 우리 정치권을 강타할 것”이라고 남의 말처럼 말했다. 정치마비가 국가경제를 장기불황에 빠뜨린다면 ‘4류정치’는 정치권의 문제를 넘어 나라경제에 절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