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자격을 지닌 '노동자'들은 전국공무원노동조합 국회본부 소속의 조합원들이었다. 1일 오후 3시 본회의장 입구 로텐더홀. 통상 국회의원들이 본회의나 의원총회 참석을 위해 오가는 곳에서 250명 가량의 국회 노조원이 "주5일 근무제 실시" "휴일근무 폐지"라는 구호를 외치며 집회를 가졌다.
이들은 7월 1일부터 시작된 주 5일제 실시에 맞춰 "주5일 근무제는 공무원 노동자에게도 예외는 아니"라며 "국회 경내의 휴일참관을 폐지하고 국회도서관의 일요개관을 폐지하라"고 주장했다.
집회에 참석한 200명이 넘는 국회노조원들은 머리에는 단결투쟁이라 적힌 붉은띠를 두르고, 감색 노조조끼를 입고 있어 여느 노동자들과 다르지 않았다. 행사순서도 민중의례, 투쟁경과보고, 투쟁발언, 결의문 낭독 순으로 짜여져 있었다.
국회노조 "우리의 사용주는 국회의장...교섭에 응하시오"
반면 국회노조원들은 아직 '투쟁가'가 입에 붙지 않은 듯 인쇄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보면서 노래를 불렀다. 가사가 적혀 있지 않은 '단결투쟁가'는 부르다가 맥없이 끝나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의 투쟁의지는 강경했다. 주 5일근무제 완전 쟁취와 도서관장의 즉각 퇴진을 결의사항으로 채택한 뒤, 노조위원장인 김용성 본부장의 "공무원, 노동자 맞습니까"라는 말에 노조원들은 "맞습니다, 투쟁!"이라며 결의를 다졌다.
이후 이들은 전국공무원노조 국회본부라고 적힌 깃발을 앞세워 국회의장에게 교섭을 요구하며 의장실로 몰려갔고 국회 본청의 복도는 이들의 노랫소리와 구호로 쩌렁쩌렁 울렸다.
하경래 대외협력국장은 "박관용 의장 시절, 박 의장의 도서관도 휴일근무를 해야 한다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법적 근거도 없는 휴일근무가 시작되어 2년째 지속되고 있다"며 "도서관장이 교섭에 성실히 임하지 않아 의장을 찾아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회 안에서 집회가 가능하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우리의 사업장이 국회인데 별도의 집회신고가 뭐 필요하겠냐"며 개의치 않았다. 복도 곳곳의 경비를 서는 국회 방호원들도 이들을 제지하지 않았다.
국회의장과의 면담을 요구하기 위해 대표단이 의장 비서진과 협상을 벌이는 동안 이들은 의장실 앞 복도를 가득 메운 채 노래를 부르고 구호를 외쳤다. 소형앰프에서는 민중가요가 흘러나왔다. 의장실 직원들은 당혹스러워했다.
한 의장 비서관은 "75년(여의도국회 개원) 이후 처음 있는 일"이라며 "청와대 안에서도 대통령을 상대로 이럴 수 있겠냐"고 불쾌감을 드러냈다. 이어 "의장의 직무실 앞을 이렇게 점거하는 것이 과연 온당하냐"며 "대통령 다음으로 나라의 얼굴이 바로 국회의장"이라고 따지며 얼굴을 붉혔다.
국회노조가 본청 지하식당이나 도서관 건물 주변에서 집회를 연 적은 있지만, 본회의장 앞에서 집회를 갖고 의장실을 항의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같은 집단행동에 대해 국회노조원들은 "공무원 노조가 합법화되지는 않았지만 정부도 실체는 인정하지 않냐"며 "노동자 주체로서 성실히 교섭에 임하는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또한 "공무원의 경우 기관의 장을 사용주로 볼 수 있다"며 국회의장에게 교섭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입장이었다.
의장 비서관 "청와대 안에서 대통령을 상대로 이럴 수 있나" 불쾌감
긴장감은 늦춰지지 않았다. 20여분만에 협상단은 밖으로 나왔고 조합원들 앞에서 결과를 보고했다. 그러나 조합원들은 김용성 본부장이 의장 비서실장과의 합의 내용을 공지하며 "내일 오전으로 협상이 미뤄졌다"고 보고하자 돌아갈 태세가 아니었다.
그간 지리하게 반복된 국회 도서관장과 사무처장과의 교섭에 실망, 더 물러설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차라리 여기서 밤을 새자"는 말들이 쏟아졌다. 본부장은 이같은 조합원들의 투쟁의지에 다시 의장 비서실장 방으로 들어갔다.
그 사이 의장의 업무는 계속되었다. 열린우리당의 신기남 의장과 천정배 원내대표는 의장실에 들어서며 이 같은 풍경에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며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 뒤를 이어 김덕룡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들어가면서 역시 의아한 듯 바라봤다.
집회를 연 지 1시간 30분만에 이들은 철수했다. 이날 교섭 대상이었던 김덕배 비서실장은 "2일 오전 의장에게 보고하고 면담 여부를 알려주겠다"고 지도부에 입장을 전달했다. 면담 결과에 따라 이들의 투쟁수위로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한편, 국회도서관 휴일개관 여부와 관련 '일반인 이용을 위해 휴일개관이 필요하다'는 상당수 여론에 대해 국회노조측은 "국회도서관은 입법지원을 위한 의회도서관"이라며 "국민에 대한 봉사 기능도 있지만 의정 지원을 위한 목적이 일차적"이라고 정체성을 분명히 했다.
휴일 도서관 이용자수는 300여명 남짓. 논문을 준비하는 대학생, 대학원생이 80% 이상을 차지한다. 이에 대해 국회노조는 "열람실 3곳(석박사학위논문실, 제1 정기간행물실, 신문열람실)만 개관하는 등 휴일개관은 형식적"이라며 "차라리 전국 공공도서관과 정보협정 체결을 늘리고, 전자도서관사업을 확대하는 것이 실질적"이라고 주장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