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만 하면 한 번씩 터지는 연예계의 탈세 문제는 대중들에게 던져주는 충격파가 상당하다.
연예인들을 '공인(公人)'의 범주에 포함시키는 이유도 대중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기 때문이다.
특정 연예인이 입고 먹는 옷과 음식이 불티나게 팔려나가고 연예인 지망생들이 '사기'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시장에 넘쳐나는 것이 오늘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연예인들의 탈세에 대해 보다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현재의 대한민국 상황을 감안할 때 너무도 당연한 처사다.
일반인들은 평생 가도 만지기 힘든 어마어마한 소득을 벌어들이면서 세금은 제대로 내지 않고 있다면 '유리지갑' 인생을 살고 있는 대부분의 국민들이 느끼는 박탈감은 클 수밖에 없다.
과거 '연예기획사' 개념이 정립되지 않은 시기, 탈세의 주체는 연예인 개인이었다면 대형 연예기획사들이 확고한 자리를 잡고 영향력을 발휘하는 현재에는 연예기획사들도 탈세의 주체 중 하나로 부각되고 있다.
실제로 최근 국내 최대 기획사 중 하나인 SM엔터테인먼트가 국세청 세무조사를 받고 102억원의 법인세를 추징당한 바 있다.
또한 티아라, 씨야, 다비치, SG워너비 등을 발굴한 김광수 코어콘텐츠미디어 대표도 최근 김광진 전 현대스위스저축은행 회장이 아들인 김종욱의 가수 데뷔와 활동자금으로 써달라며 건넨 40억원 중 20억원을 유용해 검찰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탈세 의혹이 불거지기도 했다.
국세청 분석자료에 따르면 스포트라이트를 독점하는 스타급 연예인들과 이들을 매개로 수익을 내는 연예기획사들은 서로 다른 탈세수법을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어떤 측면에서 보면 매우 단순하고, 또 어떤 측면에서 보면 지능적인 방법이 동원되는 연예계 탈세수법을 파헤쳐 봤다.
◆…연예기획사의 탈세 유형은 크게 ▲해외현지법인 등 국외거래를 통한 탈세 ▲자본거래를 통한 탈세 ▲수입금액을 고의로 누락시키거나 비용을 과다 계상하는 등의 방법으로 나눌 수 있다. 연예인은 법인이 아니라 개인사업자 형태로 소득을 신고하기 때문에 탈세 유형이 단순하다. 수입금액의 가공경비를 부풀리는 방법이 가장 흔한 수법이며, 기준경비율 제도를 악용해 소득을 탈루하거나 공연한 출연료 등을 신고하지 않거나 사업소득을 과소 신고하는 경우도 있다.
□ 과세당국의 '눈' 쉼없이 돌아간다 = SM엔터테인먼트, YG, JYP 등 대형 기획사들이 주도하고 있는 연예시장은 양극화 현상이 심한 업종으로 분류된다. 개별 연예인들도 인기도에 따라 급이 다르고, 수입도 천차만별이다.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가 조사한 '연예기획사(음반기획·제작업 중심) 전수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2011년 기준 SM엔터테인먼트, YG, 로엔 등 9개 상장(코스닥) 연예기획사 매출 총액은 3787억원(1개사 평균 420억원)이었다.
이들 9개 기획사를 제외한 기획사의 매출액 평균은 21억여원에 불과하다. 특히 조사대상에 포함됐던 355개 기획사 중 절반 가까이는 연간 수익이 5000만원도 되지 않았으며 19.4%는 매출이 '0원'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양극화가 심하다보니 당연히 과세당국이 주목하는 것은 몸집이 큰 대형 기획사들이다.
과세당국은 코스닥 등록법인의 지분변동, 타법인 지분투자내역, 사업보고서, 감사보고서 등 재무관련 정보를 상시적으로 수집정보를 수집·관리하고 있으며 일반기업들과 마찬가지로 주기적으로 세무조사를 진행해 투명성을 검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올해 초 역외탈세 의혹까지 불거진 바 있는 SM엔터테인먼트에 대한 세무조사를 비롯해 지난 2007년과 2012년 연예기획사들에 대한 대대적인 세무조사를 진행한 바 있다.
특히 최근에는 연예기획사들이 '한류' 마케팅으로 해외진출을 하고 있다는 점에 착안, 연예기획사들의 역외탈세 여부에 대한 감시 강도를 높이고 있는 행보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개별 연예인의 경우에도 일반 근로자들보다 못한 수입을 올리는 비인기 연예인들보다는 연간 수 십억원의 수입을 올리는 톱스타급 연예인들을 주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는 '효율성'을 중시하는 국세청의 세무조사 행정의 오랜 관행에서 비롯된 측면도 크다.
□ 연예기획사 탈세 수법 '가지각색' = 국세청 내부 분석자료에 따르면 연예기획사의 탈세 유형은 크게 3가지로 나뉜다. 해외현지법인 등 국외거래를 통한 탈세와 자본거래를 통한 탈세, 수입금액을 고의로 누락시키거나 비용을 과다 계상하는 등의 방법이다.
단순한 방법과 지능적 방법이 혼용되어 있는 셈이다.
해외현지법인을 통한 국외거래 탈세는 쉽게 말해 '역외탈세'로 연예기획사가 해외현지법인을 설립해 지분 투자, 대여금 지급, 용역비 등을 과다 청구해 자금을 해외로 고의로 유출시킨 후 다시 국내로 들여와 국내 사업확장이나 부동산 취득 등에 사용하는 것이다.
소위 '돈세탁'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해외에서 벌어들인 수입액을 국내로 송금할 때 개인간 외환거래로 신고해 세금을 내지 않는 이전거래나 해외 공연과 관련한 경비를 높게 잡아 수입액이 없는 것처럼 거짓 신고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자본거래는 다른 기업을 합병·인수하는 과정에서 비자금을 조성하는 탈세 유형이. 직원명의로 인수대상 법인의 주식을 매입한 후, 기획사는 이 직원에게 주식을 고가로 취득한다. 이 때 주식을 매입하기 위한 자금은 계열사를 유상증자하는 방법이 사용된다는 것이 국세청의 분석결과다.
수입금액을 누락시키거나 비용을 과다 계상하는 방법은 가장 단순하면서도 제일 선호되는 방법.
스포츠 시장의 선수거래 과정에서 오고가는 '이적료'와 같은 개념인 보상금을 매개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분석이다. 유명 연예인이 다른 기획사로 이적할 때 스타를 영입하려는 기획사는 스타를 데리고 있는 기획사에 보상금을 지급하는데 이를 수입금액에서 누락시키는 것이다.
잘 알려지지만 않았을 뿐 이는 이미 업계에서 널리 사용되는 수법이다.
이와 함께 광고 캐스팅이나 계약을 연장할 때 기획사는 관행적으로 연예인으로부터 '리베이트'를 수수하는데 이를 누락시키는 경우도 있으며 대학 축제 행사 시 계약서 등의 증빙서류를 보관하지 않아 소득을 원천적으로 누락시키기도 한다.
연예인들이 지방 행사나 유흥업소 행사를 뛸 때는 출연료 등을 기획사의 차명계좌로 받기도 하며 기획사가 있는 건물의 임대료를 부풀리는 수법도 쓰이는 것으로 분석됐다.
최근에는 방송사들이 외주제작사가 제작한 프로그램을 일정 부분 편성해야 하는 점을 악용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 국세청의 분석이다.
외주 제작 프로그램을 수주한 기획사는 다른 외주 제작사에게 하청을 주거나 타 기획사의 연예인을 출연시키는 조건으로 리베이트를 받는 것이 관행처럼 여겨지고 있지만 이에 대한 소득은 신고하는 경우가 거의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 연예인 탈세, 경비 부풀리기가 '최고' = 통상 연예인은 기획사(법인)에 소속되어 있더라도 개인사업자 형태로 소득을 신고하기 때문에 탈세 유형이 기획사만큼 복잡하지는 않다.
역외탈세와 경비 과다 계상 등 탈세 유형의 큰 줄기는 기획사와 비슷하지만 세부적인 내용으로 들어가면 기획사보다는 탈세유형이 극히 단순하다.
역외탈세의 경우에는 대개 4가지 방법이 이용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해외 부동산을 취득하거나 지분 투자 목적으로 해외로 돈을 송금했지만 이 돈이 실제 부동산 취득이나 지분 투자에 사용됐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어 연예인들의 탈세 방법으로 활용되는 것으로 국세청은 보고 있다.
사업상 오고가는 외환거래를 개인의 단순한 송금, 입금 내역으로 둔갑하는 경우도 있으며 해외에서 개인이 사용한 신용카드 사용액도 모두 경비 처리하는 경우, 출연료 외에 드라마 판권 등을 통해 받는 해외 런닝 개런티의 수입을 신고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가공경비를 부풀리는 경우도 흔한 수법이다.
일반적으로 연예인은 활동과 관련된 모든 비용을 기획사의 경비로 처리하고 있기 때문에 개인 소득세를 신고할 때는 가공경비를 만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송혜교 탈세가 바로 이 유형.
공연 출연료 등 사업소득을 과소 신고하는 경우도 있다. 연예인은 연예활동 외에도 개인사업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때 타인 명의로 사업체를 운영해 소득을 분산시키는 경우도 있다.
문제는 이런 행위들이 분명히 탈세를 저지르는 불법이고 적격증빙(필요경비를 인정받기 위한 자료, 현금영수증·신용카드 등)을 하면 탈루 사실이 금방 드러나는 위험성이 있지만 세무대리인은 의뢰인의 요구대로 해줄 수밖에 없는 '을'의 위치에 있다는 것이다.
한 세무대리인은 "매출액이 크고 위험성이 높으면 세무대리인이 납세자에게 '우리는 책임없다. 납세자가 이대로 신고해달라고 해서 한 것 뿐'이라는 확인서를 받는 등 탈세를 요구하는 의뢰인들이 많다"며 "세무대리인 입장에서 거래처를 잃는 행동은 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B 세무사는 "연예인 뿐만 아니라 납세자들을 현장에서 만나다보면 말이 통하지 않는 이들이 있다. 세법상 위험하다고 설명해도 들으려 하지않고 이해 자체를 하지 않으려 한다"며 "'다른데는 이렇게 해준다는데'라는 식으로 말하고 못 해주겠다면 다른 곳을 알아본다. 세무대리인 입장에서도 의뢰인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